복수란 불행할 때 먹어야 제 맛
녹터널 애니멀스(2016)
연출: 톰 포드
출연: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마이클 섀넌
원수든 연인이든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최고의 복수는 잊고 행복하게 보란 듯 잘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가네시로 가즈키도 소설 "레볼루션 No.3"에서 가장 통쾌한 복수란 '옛 적의 귓가에 나의 현재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고,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가 나왔을 때 이거야말로 누군가 미운 사람이 있다면 깐죽대기에 가장 적절하고 통쾌한 한 마디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과거에 누군가에게 입힌 가해, 무의식적으로 묻어둔 그 깊은 죄책감이 고스란히 비슷한 무게의 고통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 것에 더해, 그 곱절의 고통으로 증폭된 것은 수잔이 일상이 지금 불행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잔에게 상처 입은 전남편 에드워드는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수잔의 불행 한가운데 정통으로 침투한다.
예술가로서 탄탄한 커리어, 조각처럼 잘생기고 부유한 남편,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보이는 수잔의 삶. 사실 수잔은 불행하다. 직장에서 건조하게 부하직원들을 대하고, 부하직원들도 상사를 썩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주말에 수트를 입고 출장을 가겠다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고, 독립한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다. 목적도 없이 공허한 삶을 이어가던 와중에 전남편에게서 우편물이 도착한다. 내용물은 직접 쓴 소설 한 권,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책 맨 앞 내지에는 '수잔에게'라고 쓰여있다. 동봉된 쪽지에는 '이번 소설은 달라, 전처럼 그런 글이 아니야' 라며 읽어봐줄 것을 부탁하는 에드워드의 메시지가 있다.
소설은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으로 구성돼 있다. 액자 구조로 된 영화 속에서 현실과 소설은 명확히 다른 장르와 다른 스토리로 진행되지만 자주 오버랩된다. 에드워드는 소설 속에서 수잔이 결혼생활 중 에드워드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암시하는 장치를 심어놓는다. 소설 속에서 현실을 비유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현실과 소설은 오버랩된다. 여기에 현실에서 수잔이 전남편과의 지난 일을 회상하는 씬까지 더해지면, 한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세 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 된다. 달콤하게 미래를 꿈꾸던 어린 연인이 점차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파국으로 가는 과거의 이야기와, 가족이 길에서 뜻하지 않게 비극을 맞이하고 홀로 남은 가장 에드워드가 고통 속에서 복수를 감행하다 파국을 맞는 소설 속 이야기, 공허하게 불행한 하루를 사는 수잔의 현재의 이야기. 세 가지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띠지만 묘하게 연결고리를 갖고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전개된다.
(뉴욕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는 '첫 만남' 장면에서 수잔은 정말 예쁘고, 에드워드는 멋있었다. 톰 포드(그렇다, 그 톰 포드 맞단다)는 영화에 몰입이 깨지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영화 속에 톰 포드 제품을 단 하나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수잔의 뿔테안경은 '셀린느' 제품이라고 한다.)
수잔과 에드워드의 과거 회상에서, 수잔은 아름답고 에드워드는 멋지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 나누는 장면들은 유난히 로맨틱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가난(현실)이 행복한 신혼집 대문을 두드리면 행복은 깜짝 놀라 창문 밖으로 달아나버린다'고 했던가. 두 연인은 달콤하게 미래를 꿈꾸며 시작하지만 결국 수잔의 엄마가 예지했듯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두사람이 뉴욕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 겨울임에도 따뜻하고 몽환적으로 보이던 화면은, 이내 차가운 질감의 붉은 소파에 앉아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잔의 모습으로 바뀐다. 수잔은 뚜렷한 직업도 가까운 미래의 구체적 계획도 없는 작가 에드워드에게 '나약하다'며 뭐라도 좀 해볼 것을 청유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고 내심 한심해하는 수잔의 눈빛과 말들에 상처를 받는다. 켜켜이 쌓여가는 갈등 속에서 수잔은 자신의 불만을 채워줄만한 새로운 사람(지금의 남편)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새 사람에게서 현재 불만의 해소책을 찾아가던 와중, 에드워드가 결정적인 배반의 순간을 목격하고 만다.
강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와 달리 사랑을 배반하여 타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긴 가해자는 처벌할 수 없다. 변심은 가해자의 죄라고 볼 수도 없다. 어디에도 고통의 원인을 돌릴 표적이 없다. 피해자 본인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복수를 모색할 수 밖에 없지만 가해자의 마음이 돌아섰다면 피해자가 취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가해자에게 의미없는 것들이 돼 버린다.
수잔의 현재 삶이 보여지는 겉모습과 달리 불행했기 때문에 에드워드의 복수는 제대로 수잔의 심장을 관통했다. 과거의 원죄라는 괴물은 야금야금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 밖으로 벗어나고 있던 수잔의 일상에 효과적으로 침투했다. '후회'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만약 수잔이 지금 행복했다면,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에 고통스러워 하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남편이 보낸 소설책 따위는 읽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한 복수는, '어쩌면 이 지긋지긋하고 공허한 내 현실을 탈피할 희망이 있을 지도 몰라,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이 후회를 씻어낼거야, 그럼 내 삶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지도 몰라' 라는 희망을 주었다가 빼앗았기에 더 잔인하다.
복수라는 음식은 차가울 때 먹어야 제 맛이라고도 하지만, 불행할 때 먹이는 복수야말로 단연코 복수의 으뜸이다. '별일 없이 산다, 하루 하루 즐거웁다'는 장기하에게 원수나 전애인의 행동은 어떤 것이든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이 과거를 소환하고 곱씹으며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은 대부분 현실이 불행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에드워드가 수잔의 배반을 단죄하기 전부터, 수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떠난 대가를 단단히 치르는 중이었다. 무엇이 진짜 자신의 행복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선택해버린 답안의 결과가 이렇게 처참할 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