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나 저러나 목적은 단 하나
이러나 저러나 (해원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의) 목적은 단 하나.
핑계와 수식과 접근방식은 제각각이어도.
어쩌면 자기 마음 속에서조차 그 목적은 상당히 낭만적인 감정으로 미화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실 마음 속에서 미화하려는 그 경지와 지금 실제 감정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제도권에 얽매이기 위해 인간이 강제로 만든 순수성은 사실 판타지일 수도.
해원(정은채)은 이혼한 엄마를 캐나다로 떠나 보내고 울적한 마음에 예전에 만나던 교수(이선균/유부남)를 불러낸다. 그러다 함께 있는 모습이 발각되어 학생들과 합석을 하였다가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난다.
영화 속 해원은 모두가 사냥감(?)으로 노리는 존재.
유부남인 영화과의 영화감독 외래교수도, 지나가던 골초 총각도, 지나가던 돌싱남도,
모두 한 마음으로 접근하는데 목적은 단 하나.
'집에서 와이프랑 싸웠다, 너무 힘들다, 지금 꼭 보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라고 뻔한 말을 지껄이는 교수나, '잠깐 차 한 잔 하자'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돌싱남이나 모두 동일한 기대감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혹시 오늘 혹은 곧 어떻게 좀 잘해봐서 해원을 어떻게 좀 해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하긴, 사랑에 진짜 가짜가 어디 있겠는가. 오래 지속된다고 진짜인 것도 아니고, 플라토닉한 정신적 사랑만이 진짜인 것도 아니고.
만나서 밤에 술을 함께 마시고 "넌 정말 예쁘다"라는 말을 하고(표현을 참을 수 없어서 나오든 꼬시려고 하는 말이든),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고 본인이 사랑이라고 믿으면 그것도 사랑이겠지.
해원을 어떻게 좀 해보려는 감정이 꼭 진심, 사랑, 이런 진득한 단어들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는 감정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동물이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을 담는 유물론적 존재이고, 호르몬 분비에 따라 널을 뛰는 감정을 들고 살아간다.
(아니라고? 오 대단해요 열반에 이르셨습니다. 부럽.ㅜ)
(가장 좋았던 장면. 학생들 만나서 다 같이 술 먹으며 점차 갈등이 고조되고, 째려보고 ㅋㅋ)
학생들과의 합석 후 교수는 해원이 다른 학생과 잠시 사귀었다는 걸 알게 된다. 교수는 자기도 유부남인 주제에 잠시 자신이 만끽하고 있던 먹잇감에 남이 손을 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투에 불타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데, 이 때 이선균의 지질한 욕설 연기가 일품이다. 목소리, 말투, 표정, 서 있는 자세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찌질남의 그것이다. 밀회를 즐기며 길에서 애정행각을 하고, 바로 주변을 살피며 자리를 피하는 찌질한 연기도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완벽. 이렇게 홍상수 영화 속 남자 캐릭터에 최적화된 남자였나! 하긴 요즘 나오는 드라마에서 바람피운 와이프 추궁하는 장면의 대사도 정말 잘 소화하고 있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개봉했을 때도 제목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 정은채가 나오기도 하고,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어머니인 제인 버킨도 까메오로 나오고!
정은채 배우를 볼 때마다 참 동양적인 선인데도 묘하게 프랑스 여자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화 속에서 제인 버킨이 "내 딸이랑 참 닮았다"고 말한다.
보고나면 아재력이 +10씩 상승하는 상수홍 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