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의 탄생: 그러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
대체로 B급을 표방하는 괴수영화가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메이저 오락물이 되기 위해서는, 매끈한 CG와 자동차처럼 잘 빠진 괴물 디자인, 실사와 위화감 없는 파괴씬 비주얼 등이 필수적이다.
안노 히데야키의 2016년 '신 고질라'는 조금 안타깝지만, 이런 연유로 아마도 국내 흥행에 참패할 뿐 아니라 욕도 좀 (바가지로) 얻어 먹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사실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란다. '신 고질라'는 엄청난 자본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매끈하게 뽑은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훌륭한 괴수영화다. 괴수영화 마니아에게는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을 성격의 괴수영화가 아닐까 싶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
신 고질라(Godzilla)/2016
연출: 안노 히데아키
출연: 하세가와 히로키, 다케노우치 유타카(쥰세이의 그 유타카), 이시하라 사토미
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가 고질라의 원작을 헐리웃식으로 재해석 했을 때,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개봉 당시 일부 고질라 마니아들은 '고질라를 티라노 사우루스로 만들었다'며 혹평을 했다. 'Size does matter'* 라는 기념비적인 홍보 문구를 남긴 이 영화는, 말그대로 사이즈 자체로 작품성을 만들어냈다. B급 괴물영화를 아주 잘 빠진 메이저 영화로, 모자람 없이 만들어냈던 예.
어찌보면, 괴물영화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은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세상에 나온 일이다. 공룡, 괴수 류가 등장하는 영화는 어찌보면 꽤 이 영화 전후로 나뉜다. 실사처럼 매끈한 고퀄의 CG와, 매력적인 티라노 사우루스, 그리고 그보다 더 매력적인 피의 사냥꾼, 벨로시랩터!
*'Size does matter': '사이즈는 중요하다' 라는 개봉 당시의 홍보 카피, 108m라는 괴수의 역대급 사이즈를 강조하며 괴수 크기 자체에 대한 의미 외에 자본력(물량, CG력)을 강조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성적인 코드도 매우 크게 내포하고 있다. 매우 효과적인 광고문구로 평가함.
2014년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에서는, 좀 더 원작에 가까운 디자인의 고질라가 탄생했지만 역시 섭생이나 정서는 미국스럽고 헐리웃다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속 괴물 디자인들은 썩 인상적이거나 멋지지 않았다.
안노 히데아키의 2017 '신 고질라'는, 쥬라기공원의 후예가 돼 버린 유사 티라노 사우루스, 유사 벨로시랩터의 영향에서 벗어나 좀 더 원작 고질라의 본질에 다가선 작품이다. 그리고 재난이 일어난 장소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기 때문에 흥미로울 차별적 요소들도 잘 살려냈다.
앞서 언급한 헐리웃산 기념비적 괴수영화들로 대표되는, 매끈하게 잘 빠지고 겁나 고져쓰한 비주얼이면서 결코 작품성도 놓치지 않는 영화는 괴수영화 마니아에게도 마니아가 아닌 관객에게도 반가운 영화이겠지만, '신 고질라'처럼 자본력이나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괴수영화는 요즘 세상에 비난의 대상이 되며 작품성을 평가절하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사실 이 영화가 꽤 재미있는 괴수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나홀로 독백들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실사와 괴리감이 전혀 없는 때깔 좋고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서 도시를 멋지게 산산조각내는 신들로 가득찬 영화도 물론 즐겁다. 괴물 자체의 액션이 부내나는 괴물영화도 좋지만, 괴물영화의 진가는 괴물 자체의 비주얼보다는 역시 1. 괴물이 신체의 일부만 조금씩 드러내고 위협을 가해오다가 마침내 온 몸을 풀로 드러내기까지의 긴장감 조성, 2. 괴물의 차별화되고 기발한 섭생에 대한 아이디어(뭘 먹고 괴물이 되었는지, 외계에서 왔다면 지구에 온 목적이 뭔지, 말미에서나 밝혀질 치명적 약점은 무엇인지 등등. 이것은 뭐랄까, 훼이크 동물 다큐를 보는 듯한 쾌감. 어떤 낯선 상상 속 가상의 생물체에 대한 생물학적 흥미이다), 3. 괴물이 나타났을 때 인간의 대처 등에서 발견된다.
괴수영화를 볼 때 괴물 비주얼 퀄리티 자체보다 괴물이 등장하는 신의 긴장감, 괴물의 독창적 디자인, 신선한 괴물 생태의 아이디어 등에 자극을 크게 느끼는 타입이라면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로울 수도 있다. 물론 CG가 지나치게 조악하여 코웃음이 터지는 신도 없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못 참을 정도로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정 반대의 안타까운 괴수영화를 예로 들면, 한편생 한우물 '괴수'만 판 존경스러운 심형래 감독님의 '용가리'를 들 수 있다. 그래픽과 괴물 디자인에서 장족의 발전을 기록한 '용가리'는 제법 몰입을 깨지 않는 CG력을 당당하게 자랑했지만, 괴수가 '나 어때? 실사같지? 잘 만들었지?'하며 백주대낮신에서도 큰 위화감 없는 훌륭한 몸뚱아리를 자랑하느라 일말의 긴장감도 극에 부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괴수영화가 돼 버렸다. 괴수는 발단과 전개에서 아주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공포스럽게 증폭시키면서 등장해야하고, 절정 쯤 가면 손에 땀을 쥐도록 바짝 주인공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쫓아와야 한다. '용가리'의 괴수이무기는 심장을 쫄깃하게 옥죄는 긴장감을 연출하는 데 실패했다. 괴수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혹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멋지게만 만든 영화가 용가리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산행'도 재난영화로서 훌륭했지만 좀비 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좀비라는 가상의 재난을 배경으로 한 훌륭한 한국형 재난영화 정도.
'신 고질라'에는 이 재난이 일본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주는 재미요소가 많다. 가상의 크리처가 도심에 나타났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재미있다.
'이 나라는 붕괴와 재건을 통해 발전해왔어'
지진이나 원자로 사고 등에 대비한 대피 시설이 갖춰진 지하철, 재난이 일어나자 수직구조 의사판단에 의해 진행되는 대처(사실 그럼에도 일본답게 직업 소명의식이나 책임감은 한국에 비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끝없이 시간을 지체하게 만드는 회의, 겪어본 일 없을 재난에 생각보다(?) 익숙하고 덤덤해보이는 사람들.
고질라 자체조차 '이건 일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섭생과 디자인이다' 싶게 뽑았다. 신 고질라 속 고질라의 디자인은 이런 류의 각종 신박한 괴물을 영화에서 익히 봐온 사람으로서도 좀 경악스럽다. 첫 등장부터 흠칫. 초점없는 눈으로 덤덤하게 도시를 부수며 뭍으로 올라온 고질라는, 여러 개로 갈라진 아가미 사이에서 시뻘건 액체를 쏟아낸다. 이런 기괴한 디자인은 사실 영락없는 '사도'다(디자이너가 같아서......).고질라가 물에서부터 육지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올라오는 장면은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가 아직 생생히 남아있음을 상징하는 듯 하다. 각종 재난과 재앙을 하나의 상징적 괴물로 형상화한 느낌이다.
총체적 CG난국이긴 했지만 진주처럼 아까운 명품 씬들이 많이 있었다. 고질라가 처음 방사능 열선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정말 명 장면. 에반게리온의 에바 폭주 장면도 연상케 하는 이 씬은 경악스러우면서 장엄한 장관이다. 고질라는 진화 도중 미사일 세례를 받고나자 흉물스럽도록 크게 입을 벌리며 불을 뿜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가 방사능 열선을 뿜으며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무적의 크리처가 된다. 보라색 열선으로 건물들을 산산조각내며 난도질할때 정말 소름이 돋았다. 이게 일본 괴수영화다! 이게 진짜 고질라다!
'신 고질라' 속 고질라가 수일 내에 진화하는 과정, 최종 완성형으로 갈수록 덜 흉측하고, 조악한 CG도 뒤로 가면 좀 안정감을 찾는다. 색상 톤이 어두워져서 티가 덜 나는 건지......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이라는 선입견을 잔뜩 껴안고 영화를 봐서인지, 아니면 특유의 BGM코드 때문인지 고질라의 디자인, 첫 등장, 행동 패턴 등 모든 면에서, 아닌게 아니라 고질라가 고질라가 아니라 사도 중 하나의 이미지와 겹쳐 보인다. 일본 특유의 반듯하고 빽빽하게 계획된 도시 한 가운데, 급작스레 평화를 깨며 앞뒤전후 설명없이 나타나는 기괴하고 이질적인 생물체. 이런 이질적인 생명체가 뭍에서 기어나온다는 것이, 영락없이 '에반게리온' 속에서 사도가 나타나는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고질라를 잡기 위해 에바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 개인적으로 '에반게리온 극장판: 파'에서 첫 사도가 나타나기까지의 긴장감을 정말 사랑해서 여러 번 돌려보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의 '신 고질라' 속 괴수 등장 신도 좋았다.
괴물영화 중 괴물이 유사 공룡 류나 파충류일 경우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예 외계인인 에일리언같은 괴물의 경우 얼마나 창의적 디자인이느냐, 얼마나 지구 육식동물의 공격 수단의 부분 부분 중 가장 강한 부분만 차용하고 모아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었느냐가 화두이다.
킹콩이나 원숭이, 인류에 다른 동물의 장점을 접목한 스플라이스처럼 '인간 유사 포유류'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인간과 유사하지만 인간보다 좀 못한(못하다고 여겨지는) 생명체가 언젠가 인간을 넘어서서 인간을 위협하리라는 경계가 담겨있다. 지능은 그대로인 채 사이즈가 인간보다 월등히 커져 인간을 위협하기도 하고, 혹은 인간의 진화 전 단계 쯤으로 하등하게 여겨지다가 갑자기 지능이 뛰어나게 발달하기도 하고. 즉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기실 인간보다 훨씬 세며 생활영역도 같은 포유류들이 인간만큼의 지능을 지니게 되면 어떤 재앙이 발생할 지에 대한 가정을 품어보는 것이 화두.
뱀, 공룡, 악어 같은 파충류나 유사 파충류, 공룡이 괴물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 진화하며 품고 쌓아 온 무의식적 보호기제인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인간과 지나치게 다른 생명체이이며, 미약하게나마 희노애락이 파악되고 소통이 가능한 포유류와 달리 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미지의 존재이다. 따뜻한 피를 가진 인간과 달리 차가운 피를 가졌고, 표면은 단단하고 거칠거칠하다. 가장 결정적으로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부분은 눈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그 눈은 눈 앞에 있는 생명체에 대한 무자비의 상징이다. 어떤 타협도, 소통도 불가한 눈이다.
신 고질라 속 고질라가 그동안 본 괴물영화 속 괴물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도 눈이다. 이건 그냥 파충류도 아니고 썩은 동태눈(...). 고질라는 처음으로 전신을 드러내고 시뻘건 피를 대량으로 쏟아내며 인류에 첫 위협을 가하는 장면에서, 초점없이 죽은 눈빛으로 약간 웃는(...?) 입을 하고 사람들을 쫒는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 속 화난 파충류 눈과는 또 다른 눈이다. 파충류의 눈보다 더 불통의 상징같은 눈빛이다.
고질라 시리즈를 보면 늘 슬며시 인간보다 고질라를 응원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신 고질라' 속의 포스터 카피에서도 '고질라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고질라보다 무섭네요'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일본인 특유의 근성이나 일본 관료제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인간의 서툰 대처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최고 결정권자는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알겠다' 라는 말을 반복한다. 어서 결정하라고! 최다 등장 대사가 '알겠다'와 '그(고질라)는 인간을 넘어선 초월적, 완벽한 존재이다' 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 답답하고 길다는 회의와 의사결정 과정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고질라'를 만들면......어떤 현실이 묘사될 지 아, 상상하기도 싫다.
분명 일본은 세계 톱클래스 군사강국인데, 밀리터리적 요소들에 대한 묘사들도 CG가 조악한 나머지 좀 구경거리가 부족해 슬펐던 점도 있다. 더 재미있을 수 있던 요소인데......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이 영화는 제법 미덕이 많은 괴수영화이다. 일본 괴수영화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일본인들은 전 국민이 상상력이 뛰어난 탓인지 부족한 CG는 각자의 상상을 통해 보충하고 쫄깃한 연출과 다양한 인간군상의 묘사에 집중하는 진정한 괴수영화 마니아들인가보다(비꼬는 거 아님).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괴물, 고질라'라는, 실존하는 공포에 대한 상징적 존재로서의 괴물. 고질라의 이러한 본래 의미로 회귀하여 본래 디자인을 충실하게 잘 살린 데 더해, '지진, 쓰나미 등 각종 천재지변'에 대한 일본인의 최신 트라우마까지 업데이트한 훌륭한 토착적 괴물의 탄생.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덧.
이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하기에 위험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1. 90%: 조악한 CG
이건 정말 비주얼적으로 고급스러운 효과에 익숙해 있는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할 때 흥행에 정말 큰 장애물이다.
2. 10%: 글로벌 정서에 맞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폐쇄적 정서
이 영화에서 되려 잘 활용하여 살리고 있는 히키코모리 정서나 지나친 질서의식 등 특수하게 발달된 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정서와 좀 코드가 다른 독특한 감성같은 것. 워낙 다방면에서 이례적 강대국이라 굳이 영어를 매우 잘 해야 하거나 세계에 넓게 진출할 필요가 없는 폐쇄성에서 오는 것 같은데(사실 이 부분은 부럽다. 언어는 물론 자체로도 예술성을 띠기는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언어가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수단일 뿐인데, 세계 속에서 메인 강국이고 그래서 수많은 세계인이 구사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수단 대신 콘텐츠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 부럽다), 미국물 좀 먹은 짱짱걸 커리어 우먼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듯 등장하지만 그녀의 말투와 어깨에 자신감이 들어갈수록 모든 씬이 오글거릴 뿐이다. 안 예뻤으면 정말 슬펐을 뻔. 자국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세계 정서와 조금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본인들끼리는 굉장히 글로벌하고 멋진 인물로 묘사되는 인물이 사실 매우 어색하게 묘사되었고, 이런 코드들이 일반 관객에게는 오그리 토그리 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크게 이 두 가지를 견딜 자신이 있으면 이 영화가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