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계의 배드보이, 세르게이 폴루닌_'댄서'개봉을 기다리며
가장 좋아하는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
세르게이 폴루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댄서(Dancer)'가 2017년 4월에 한국에서 개봉한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거의 전무한 댄서이다보니 그의 영화가 개봉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마 '발레계의 반항아', '발레계의 제임스딘'과 같은 수식어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 그 이미지가 연유한 까닭인 그의 자유분방(?)한 성품은 이 댄서를 모르더라도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가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사실 영화 소재로 더없이 좋은 요건들을 그는 다 갖췄다. 천재적인 실력과 빼어난 외모, 최고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반항심, 온몸에 가득한 문신, 공연을 펑크내고 자취를 감추는 돌발 행동,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계정에서 엿보이는 약간의 나르시즘 등.
(모든 사진은 '세르게이 폴루닌'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공식 인스타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계폭!)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은 2009년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됐으나 배우의 길을 가겠다며 발레단을 박차고 나왔으며, 각종 잔잔한 비행으로 한때 러시아 발레계의 '배드보이'라 불렸다.
2014년 노보시비리스크 발레단 백조의 호수 내한 공연 당시 지그프리트 역으로 돌아왔었는데, '중력이 뭐임? 먹는 거임?'하며 허공을 가르고 날아다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공연 실황'을 보면 한니발의 노예 감독 역할을 맡은 세르게이 폴루닌을 볼 수 있다. 거기서도 잘 날아다님.
정말 놀라웠던 건, 그 때는 그게 세르게이 폴루닌인 줄도 모르고 그저 춤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해두었는데, 백조의 호수 내한 공연을 보고 하도 그 점프와 몸짓들이 낯이 익어서 찾아보니 역시나 '갸가 갸인' 상황이었던 것.
정말 놀라웠다. 몸짓만으로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세르게이 폴루닌의 영화가 나오다니!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짐승'으로 불릴 만큼, 그리고 나 따위(...)가 점프 하나만 보고도 뇌리에 각인할 수 있을만큼, 세르게이 폴루닌의 점프는 인상적이다. 그 시그니처 급 점프의 화룡정점은 체공 시의 우아함이다. 세르게이 폴루닌이 땅을 딛고 도약해 허공에 머무르는 동안, 1, 2초 가량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마무시한 근력을 바탕으로 매우 멀리, 높게, 과감하게 날고, 도약해 있는 동안 자세가 매우 안정적이고 우아해 심지어 나른한 느낌마저 들며, 체공시간이 매우 길다. 착지할 때는 고양이가 바닥에 뛰어내리듯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다리의 흐트러짐이 없다.
로얄 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발레리노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세계 최고의 명예이다. 그것도 19세에, 역대 최연소로 발탁되었으니, 타고난 천재성에 대해서는 굳이 논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2014년 백조의 호수 내한공연, 세르게이 폴루닌은 이 공연에서 남성 댄서에 대한 내 편견을 산산조각내버렸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점프와 도약은 정말 인상적인데 매우 높이, 가볍게 뛸 뿐 아니라 체공 시 자세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다. 마치 정말 저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완벽한 도약. 남성 댄서의 발레는 간혹 흰 타이즈를 신고 중심부를 가린 개그맨들에 의해 희화화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세르게이 폴루닌과 같은 일류 남성 발레댄서의 춤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나면 남성 발레가 결코 여성적이거나 희화화해 놀릴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1초만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자 댄서들은 엄청난 근력을 바탕으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허공을 가르고, 허공에서도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면서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한다.
1989년 11월 20일생(만 27세), 우크라이나 헤르손 출신의 세르게이 폴루닌.
영국 로얄 발레 스쿨을 졸업하고 19세에 바로 발레단 역대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되었다.
유순한 노력파 남성 댄서들 중에도 엄청난 역량의 댄서들이 분명 많지만, 세르게이 폴루닌은 전설의 댄서이자 안무가인 루돌프 누레예프와도 감히 비견되는 본투비 천재 댄서이다. 축복받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반항과 방황을 거듭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세르게이 폴루닌. (아직도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한 청년이지만) 벌써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그의 영화 같은 인생 스토리가 정말 영화로 제작되어, 발레나 이 댄서에 대해 관심 없던 관객의 눈을사로잡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
나탈리아 오시포바와의 '지젤' 공연 모습.
요즘 댄서들은 은퇴연령도 늦어지고 전성기도 굉장히 길어지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댄서로서 적지 않은 나이 27세. 선택받은 인생을 살 것만 같았던 이 청년이 하늘이 준 선물같은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고 반항하며 지내온 영화같은 27년 인생도 궁금하고, 앞으로 보여줄 도약과 행보도 정말 궁금하다. 어린 나이에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서 보장된 꽃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쌀 한 톨만큼의 미련도 없어보이게 단숨에 박차고 나와 보여준 행보가 그냥 그 자체로 영화 같으니. 그에게 로얄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라는 타이틀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뭐라고 부르든, 소속이 어디든 그냥 그는 그 자체로 넘사벽 세계 톱클래스인데. 허름한 연습실, 연습복 속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춤을 추어도 어느 유명 무용단의 어느 무대 위, 어느 수석 무용수보다 빛나는 세르게이 폴루닌인데 말이다. 세르게이 폴루닌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훗날 그 반항기조차 하나의 예술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 똑같은 삶, 다 똑같은 재능은 재미 없으니까 말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가 로얄 발레단 시절에 촬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를 리뷰해볼 예정이다. 정말 아끼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