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일상성
하도 남발해서 이제는 센 수위를 와 닿게 표현해줄 수도 없는 신조 단어 '역대급'등의 수식과(유사한 지위의 어휘로: '국민000' 등이 있음) '썩은 토마토' 같은 '힙한' 예찬으로 가득한 마케팅이 본질을 흐리기 전에 서둘러 <겟 아웃>을 보았다.
듣던대로 신선한 영화였다. 짱 잘 만들어야지! 하고 힘준 티도 안 나고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새로운 영화.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결말에 드러날 진실이 예측이 되고, 전개도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데도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어마어마한 새로운 얘기보다 있는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새롭게 하는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역시 모든 영화는 예고편도 보지 않고, 장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볼수록 더 재미있다.
<겟 아웃>은 인종차별을 소재로 삼고 있는 스릴러이다. 도입 장면에서 백인 여자 친구 집에 이사 가기로 한 흑인 남자친구 집에 백인 여자친구가 찾아가는데, 이 장면이 눈에 낯선 것부터가 새로움의 시작이다. "실제로 저런 조합의 커플이 많을까?"라고 생각하는 부분부터가 이 영화의 주제에 다가가 영화 속 사건에 가담하게 되는 대목이다.
주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을 봐도 반응이 한결같은 것이, 이 영화가 얼마나 실감나게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차별 소재를 다루었는 지 깨닫게 한다. "앗, 흑인 남친과 백인 여친의 조합이네. 실제로도 많을까?" "여자가 아깝다(초반까지는)"
영화는 그렇게 차별의 '일상성'을 다룬다. 일상의 공간이고 일상의 소재이기에 몰입이 쉽다. 일단 이렇게 바짝 관객을 다가와 앉힌 뒤에는 희한하고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을 벌이면서 남자 주인공의 처지에 몰입하여 같이 분노하게 만든다.
[스포일러 있어요]
아무튼 크리스(흑인 남자친구)와 로즈(백인 여자친구)는 로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로즈네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사슴을 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부른 백인 경찰은 운전을 하지 않은 크리스에게도 면허증 제시를 요구한다. 사실 크리스가 백인이었다면 조사 절차 상 오히려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대목에서 로즈는 왜 경찰에게 인종차별을 하느냐며 화를 크게 낸다. 이렇게 되려 사람 무안하게 만들고 역차별하는 'racial flow'는 로즈와 로즈 엄마에 의해, 그들이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수 차례 시전된다.
로즈의 아빠는 그들이 오면서 친 사슴에 대해 '다 쓸어버려야 한다, 쓸데없는 것들이 여기저기 다 살아서 돌아다닌다'며 마치 흑인들을 향해 던지는 듯한 뉘앙스의 격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에 대해 로즈의 엄마는 이이의 이상한 행동을 사과한다는 건지, 흑인들에게 하는 이야기라 미안하다는 건지 알 수 없이 크리스에게 사과를 한다.
로즈의 집 가정부와 정원사는 흑인이고, 로즈 부모님이 연 파티에 나타난 백인 부부들은 바보 노리개처럼 보이는 얼빠진 흑인 남자아이를 데려오기도 한다. 가족은 마치 남북전쟁 시대에 집에서 흑인노예를 부리는 백인 귀족처럼 행세 한다. 아이스티 얼음이 유리잔에 부딪는 소리나 휴대폰 카메라 셔터음 등에 레드썬. 깨몽. 을 경험하는 이들은 심리학자인 로즈 엄마의 최면에 걸려있다. 최면에 걸려 충성하고 노예로 살고 있는 것. 게다가 이들은 로즈가 데려온 남자친구 크리스에게 희미한 적개심을 보인다. 크리스는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이 걸어다니는 좀비들이 모두 자기처럼 과거에 로즈의 남자친구 혹은 심지어 여자친구였음을 우연히 발견한 사진들에서 보고 만다. 아니 뭐 이런 문란한 여자가 다 있어......신념을 위해 몸을 내던져도 유분수지
영화는 개그 캐릭터인 크리스 친구가 등장하면서 선혈낭자한 시원한 복수극(?)으로 B급 면모를 드러내며 끝난다. 큰 줄기들은 다 예측이 가능한데, 소소한 추리를 하면서 보는 것이 재미있다. 로즈의 동생이 혹시 인종차별주의자 들 속에서 혼자 정상인인가, 가정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나, 등등. 초반에 떡밥을 너무 던져대서, 아, 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떡밥만 겁나 던지네, 지루해 할 무렵무터 다행히 전개가 빠르게 시작되고, 그래서 팽팽함을 잃지 않는 영화였던 것 같다. 이 길고 무수한 떡밥 속에서 사소한 추리를 해 보는 과정 때문에 미국판 '곡성'이라고들 하며 많이 비교를 하는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론 두 영화가 구도나 분위기 면에서 크게 비슷하다고 와닿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곡성보다는, 단순하게 나이트 샤말란의 <비지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담고 있는 주제나 긴장감의 정도는 매우 다르지만.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전개와 스토리임에도 긴장감이 팽팽하고, 볼 때는 안 무서웠는데 집에 가서 밤에 불 끄고 누우면 살짝 한 번쯤 생각나기도 하는 기묘한 스릴러. 정말 신박했던 건 크리스가 결박을 풀고 나온 경로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를 계속 직면하며 소파를 계속 뜯어대던 크리스의 손. 소파에서 솜을 뜯어내 귀를 틀어막았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사진작가인 크리스의 독특한 시선을 이식받고 싶어하는 시각장애인, 흑인들의 뛰어난 근력 등 신체적 능력을 희롱하며 부러워하는 백인들의 모습은 차별과 역차별, 미묘한 질투와 견제를 잘 보여준다. 이미 짜여있는 구조에 새로운 집단이 편입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인간사회의 관성이고, 현상유지를 위해 테두리 안으로 이미 편입된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어내 왔었다. 이미 유리천장 위에 있는 사람들은 꼭대기층의 포화를 막기 위해 '흑인은 노벨경제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잖아?' '흑인은 신체적으로는 가장 생존에 최적화된, 동물에 가까운 상태이지만 두뇌는 어떨까?' 등등, 요즘 시대에 어디 가서 입에 담았다가는 총 맞을 소리들, 무식함을 인증하는 소리들을 음성적으로 양산해왔다.
이런 문제들이 사실 인종 문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만, 이 영화가 거창하게 그 모든 사회차별을 담으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고, 그런 힘준 영화였다면 되려 재미없었을 것 같다. 별 노력도 없이, 실제로 가진 것도 없이 특권의식을 누리고 우아한 척 가장하면서 무의식중에 타 집단을 배척, 경멸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판. 가볍고 산뜻하게 중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준 그야말로 신선한 영화였던 것 같다. 딱히 인생에서 중요한 영화에 랭크되지는 않겠지만 오랜만에 본 흠 잡을 데 없이 신선한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