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Coco/2018)]"My Coco"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by 랄라

"나의 코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누군가의 기억 속이라고 했던가요.
그러니 함께 하던 사람에게서 잊히는 것이 진짜 그 사람의 죽음이고,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잊히는 날이 정말로 그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날이겠지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픽사-디즈니 영화의 패턴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코코>는 초반부터 이미 나름의 반전(?)까지 예측 가능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기인 딸을 안아 올리며 다정하게 노래 불러주는 아빠의 눈빛을 보고 울지 않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져 무표정하던 코코 할머니의 얼굴이, 꿈에도 그립던 노래를 듣자 그제서야 활짝 피어나는 모습에서도 눈물을 참을 방법은 없었답니다.

픽사-디즈니의 패턴을 너무 잘 알아서 사실 치매 할머니가 이름이 너무 귀여울 때부터 슬펐어요. 누군가 귀여워하며 붙여 준 귀여운 이름의 늙은 할머니가 치매로 어떤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겠지. 어느 한순간 어떤 매개로 인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겠지, 싶어서였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그랬지만, 디즈니가 그리는 '어린 시절', '가족'의 기억들은 실제 어린 시절 기억의 따뜻한 느낌과 너무 똑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지요.
다양한 인종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할머니의 주름지고 그을린 얼굴이나 끝없이 움직이는 아기들의 통통한 발과 다리에 터칭 포인트를 잘 담아내는 픽사의 심미안에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코코>는 여러모로 영리한 영화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소재가 이젠 거의 없는데, 어차피 뻔한 소재와 스토리인데다 애니메이션이라면 그 제약도 더 심합니다. 그 제약 속에서 얼마나 신선한 디테일을 살리느냐가 보통 요즘의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관건인데, <코코>는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사후세계' 소재에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구현해낸 그 모습도 신선하고 볼만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속속들이 익숙해 하지 않는, 시각적 이미지만 어렴풋이 갖고 있는 낯선 문화권을 주배경으로 녹여낸 것도 재미있었어요. 미디어에서 접해 낯익으면서도 낯선 이국적 풍경 속을, 역시 미디어에서 어렴풋이 본 것 같은 차림새(흰 러닝셔츠에 후디 차림)로 구두 통을 메고 뛰어다니는 아동의 모습. 유럽 중세동화나 동물 세계로 가득하던 픽사-디즈니의 그림체로 이국의 현대를 보고 있자니 더욱 신선합니다. 행복하고 흥 많고 뜨거운 멕시코 사람들, 멕시코계 배우들의 발음과 노래, 금빛과 주홍빛으로 빛나는 메리골드 꽃잎들.
우리 정서와 매우 닮아있는 멕시코의 오랜 전통 축제 '죽은 자의 날'도 신선한 듯 낯익어서 우리 문화권에 잘 먹힐 듯하더군요. 1년에 한 번 죽은이들이 이승으로 찾아오는 날이 돌아 오는데, 사진을 올려놓으면 찾아올 수 있다는 설정은 제사 문화권에서 갖고 있는 정서와도 매우 비슷한 데다가, 그 문화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이라는 철학을 연결한 것도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살아 있으면 영원히 살아있고, 살아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낸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사후세계에서마저 사라진다는 설정.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기억과 추억을 나눈 가족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대대손손 그 기억을 전해 간다는 것.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은 미구엘이 첫 무대에서 긴장해서 실패했다가 점차 발전한다든가, 점차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싹 생략하고 처음부터 기타와 무대매너, 노래 모두 잘하게 한 점도 지루함을 상당히 덜게 한 신의 한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영화를 지겨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 이 과정을 뻔하지 않게, 의미있고 재미있게 그리는 영화는 의외로 별로 없는 거 같습니다. 음악영화라고 이런 것 까지 넣었으면 너무 중구난방이었을텐데 아예 생략해버리고 처음부터 꽤 천재적이었던 게 좋았던 듯(나름 방안에서 몰래 비디오 봐가면서 매일 연습한 결과지만, 이 과정을 아주 잠깐만 보여준게 좋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혀 세속적 기준으로 성공한 스타가 실제 아빠가 아니고, 실제로는 성공할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친구에게 독살 당해, 살아있는 동안 인정 받지 못하고 사후세계에서도 아무 명예 없이 떠돌이로 사는 사람이 아빠인 것도 늘 그래오던 픽사답게 뻔했지만 좋았고요.



사람은 유일하게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고하며, 말과 글로 그 기억을 체험하지 않은 타인에게도 그 기억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물론 물리적 육체 안에 살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 마음 속에 영원히 살며 세대를 거듭해 소환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진짜 사는 곳은 누군가의 기억 속, 마음 속입니다. 그러니 함께 한 사람에게서 잊히는 것이 진짜 그 사람의 죽음이고, 반대로 누군가 그 사람을 잊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전 아직 직계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없고, 자녀도 없어서 완전히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분을 알 수는 없을 테지만, 온전히 저 그대로였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때, 혹은 가깝고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부모님을 잃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아파할 때, 미디어에서 자식을 억울하게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의 모습을 접할 때, '사후세계를 가정하고 믿지 않으면 남아서 살아 가는 것이 너무 힘든 순간들이 있구나,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일이 나 자신의 죽음보다 힘든 순간이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코코>는 그렇게 소중한 누군가와 사별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보았던 사후세계의 가정보다도 즐겁고 화려하고 풍부한 상상으로, 우리를 떠난 그들이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면 행복하게 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고,
죽음이 무섭고 슬픈 '끝'이 아니라, 그저 다리 건너편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일 뿐이라고 위로합니다. 그 곳에서 아끼던 사람들은 우리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위로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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