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웨스턴 '아내가 결혼했다'
뉴니스(Newness)
제작: 리들리 스콧
연출: 드레이크 도리머스
출연: 니콜라스 홀트, 라이아 코스타
이 영화는 일견 21세기 웨스턴 '아내가 결혼했다'인 듯도 하다. 영화는 '더 이상 신비롭거나 궁금하지 않은 상대방을 관성에 의해 다정하게 바라보며, 전보다 설렘이 덜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랑의 배제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로 엮인 채 제도권 안에서 평생 함께 하며 모든 것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적어도 육체적으로라도)은 과연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일까? 이 의문은 일부일처제 결혼 제도가 정착된 이후 인류의 숙제라도 되는지 자주 로맨스 영화의 소재로 언급되는 듯 하나, 역시 사람 바이 사람인지라 답이 없는 것 같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회성 만남을 즐겨오던 마틴(니콜라스 홀트)과 가비(라이아 코스타)는 데이트 어플로 만난다. 만나기 전에도 각각의 일회성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말세야 말세. 마틴은 클럽에서 만난 여자의 토바라지를 하다가 그날의 기분을 잡치는 중이었고, 가비는 아무리 일회성 만남이라지만 지나치게 사무적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고 가는 상대방을 보며 정서적 외로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쨌든 만족스럽지 못한 그날 밤 두 사람은 또 일회성 만남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사귀게 되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말세야 말세. 요즘 것들은.
최근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 제도 안에 들어갈 의욕이 딱히 없어 보이는 모습과 더불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직업적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도 영화 속에 살짝 비치는 것 같다. 현 20대는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에 속하지만 자아 완성이 유례없이 유예되는 세대이기도 한 것 같다.
어쨌든 마틴과 가비의 사랑은 뻔하고도 특이한 궤도를 그린다. 우린 참 잘 맞아, 뭐 이런 생명체가 다 있지 하고 서로 궁금해하며 호감 갖던 첫 만남을 지나, 서로를 잘 알고 흠뻑 빠져있는 단계를 지나, 점점 상대방이 궁금하지 않게 된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등을 돌리고 누워 휴대전화를 보다가 잠드는 일상이 반복된다. 각자의 허전함을 본능적 탐미적 욕구로 채우면서 첫 단추를 끼운 사이이기 때문에, 다시 그 자리가 점점 비어가자 이들은 또 그렇게 허전함을 채워 줄 상대를 찾게 된다. 기쁨과 환희의 호르몬 샤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줄 낯설고 특별한 상대. 케미스트리가 폭발하는 사이.
결국 이 둘은 각자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이상한 딜(?)을 체결하게 된다. 서로 다른 이성을 만나고 싶으면 만나되, 솔직하게 말하면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 이들은 관음증처럼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상대방을 보며 신선한 흥분을 느끼기도 하고, 변태 성욕자의 길을 걷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다른 이성과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보게 되고, 그래서 낯선 이성에게서 느낄 수 있는 케미를 다시 느끼는 것.
그런데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다. 얘네가 아무리 쿨한 척 해봤자,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자 하는 마음은 인류의 오랜 본능이었던 것이다. 결국 마틴과 가비는 모순적으로 다시 싸우게 된다. 쿨한 척 하다가 쿨몽둥이로 얻어맞는 다는 게 딱 이런 상황인 것이다. 자유로운 만남을 허용했으면서도 가비는 전처의 근황에 집착하는 마틴에게 상처받고, 마틴은 다른 사람을 만나며 행복해하는 가비가 거슬린다. 제삼자를 촉매처럼 쓰면서 식어가는 불을 다시 지펴보려던 두 사람의 노력은 너무 강한 자극들에 내성이 생기며 닳고 닳아서, 되살리기 힘들어 보였다.
[결말에 대한 서술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관계의 역사를 아예 새로 써야 하는 법인가 보다.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것이다. 수채화를 유화로 덧칠하는 것. 결국 두 사람은 떨어져 있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일단 지금은) 서로를 가장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사랑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넌 내가 싫증 날 거야. 지루해질 거야."
"괜찮아.
감당할 가치만 있으면 돼."
우린 다시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게 될 거예요. / 그럴 거예요. 근데 그래서 뭐? 하는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이라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싸움으로 얼룩진 관계라고 해도 무조건 포기하라는 법은 없다. 다만 실수를 관성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육체적으로 시작한 관계라 해도, 정신과 육체의 경계가 그렇게 잘린 무 단면처럼 명확한 건 아니니까 단계의 순서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먹어도 맛있는 스크럼블드 에그를 맛 보여주고 칭찬받고 싶은 감정이 드는 거, 나와 많은 시간과 취향을 공유하며 점점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히 사랑 비슷한 거 아닌가. 한 번도 좋아한 적 없었던 음식이나 영화가 어떤 사람 때문에 좋아지는 그런 신선한 체험. 그리고 또 그 체험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또 다른 에피소드와 추억이 되고.
손예진 혼자 하드 캐리 하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말고, 원작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와 이 영화는 꽤 많은 부분 이슈를 공유하고 있다. 마틴과 절친 친구 둘이 서로의 연애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운동복 차림의 쭉빵 걸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란히 그 뒤를 시선으로 쫓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일부일처 결혼제도와 인간의 본능이 일치하는가에 대한 무한한 의문 제기.
일단 일부일처 결혼제도가 생긴 것은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매우 짧아서 결혼 이후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기간이 아니던 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대안으로는 집단혼이 있는데 실제로 집단혼은 운영이 아주 잘 되고 있는 사례가 있고, 등등. 원작 소설을 처음 읽은 게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세기였고 나는 매우 어렸기 때문에 '뭐 이런 호로새X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어 21세기에 다시 읽어보니 그 의 문 제기들은 꽤 합리적이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내 배우자가 지겨워 죽겠고 바람피우고 싶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함께하는 기간 동안 서로 기만하는 일(정신적 외도도 포함된다) 없이 변함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고민이기 때문이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것이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늘 더 충실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기만하면서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기 싫은 것이다.
세상에는 안정감을 얻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마저 속이며, 자신이 변치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물론 정말로 일생 한 사람만 바라보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만, 외롭기 싫어서,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냥 적당히 싫지 않은 사람과 정을 주고받으며 살면서 나는 행복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 속에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홍상수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가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의 사랑에는 손가락질하고 관심 많다'라고 주야장천 주장하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쨌든 정해진 답은 없다. 영화나 소설은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대안들의 장단점을 보여준다. 마틴의 전처는 '행복하지만 모든 게 뻔하고 재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은 사랑을 해도 설렘이 처음 같지는 않을 것이고, 사람에 따라 여전히 상대를 좋아하더라도 설렘이 빠진 관계를 감당하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남 이사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든, 내 관계부터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홍상수가 영화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냥 '취존'해주면 되는 것이겠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이상한 결론이네.
어쨌든 니콜라스 홀트가 좀비나 이상한 존재로 나오지 않고 인간으로, 평소 모습대로 나오는 보기 드문 영화라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이제야 자기 재능을 제대로 쓰고 있는데, 앞으로도 가진 재능을 적극 살려서 영화에 사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 그래도 화면 때깔 잘 뽑는 연출가의 영화 속에서 니콜라스 홀트의 얼굴은 제 빛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