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천재의 시선을 빌려 바라 본 세상의 아름다움, 그에 대한 헌사

by 랄라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2017



영화 속에서 마르그리트 가셰가 고흐에 대해 '햇살 아래 밝게 빛나는 초록 잔디 결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까지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듯, 똑같은 사물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삶의 고통도 똑같이 그만큼, 남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구석구석 느낀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알고 갈망하는 사람은 아름답지 못한 삶의 요소들과 사람들에 극심히 고통받는다. 신이 내린 능력과 앎과 통찰은 그 축복을 만끽할 환경이 되지 못할 때는 더없는 저주가 된다. 영화 속 고흐의 그림에 담긴 하늘과 나무, 별, 풀들에서 느껴지는 계절과 빛의 순환은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워서 더 슬펐고, 어쩌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이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영화는 요즘 많이 차용하는 '제3의 인물이 주인공의 행적, 미스터리와 남긴 메시지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정신없이 혼을 쏙 빼놓는 유화의 향연이 아니라면 대사나 전개, 영화 내용은 상당히 평범하다. 주인공(빈센트 반 고흐)을 대신하여 화자의 역할을 하는 영화 상의 주인공(아르망 롤랭)이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자신이 추적하는 인물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는 과정도 평범하다. 하지만 화가의 실제 삶과, 그의 죽음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 듣는 고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고흐 하면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치광이 천재 화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살아생전 박복하게 고생하며 살아간 사람,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지,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닭을 그려주던 다정한 사람,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업무하듯 나인 투 파이브로 그림을 그리는 성실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르그리트가 말한다. "왜 타살이라고 밝히고 싶어 하죠? 진실이오? 뭐가 진실이죠? 그가 십대들과 어울리다가 괴롭힘을 당해 죽었다고요? 자살이든 타살이든, 차이는 없어요."
영화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 대사지만 이 말이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얽힌 수많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볼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사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들을 탄생케 한, 그 생전의 삶을 들어보기 위함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복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 르네이든, 가셰이든, 빈센트 반 고흐 자신의 발가락이든, 손가락이든, 고흐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흐가 죽음에 이른 이유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던 불행 탓이다. 스스로 복부에 방아쇠를 겨누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전에 그리 애틋했던 후견인이자 동생 테오와 가족이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슬픈 죽음이 또 있을까 싶다. 죽기 전 테오에게 "난 왜 이렇게 잘 하는 게 없지? 스스로에게 총을 쏘는 것조차 실패하다니."라고 말한 기록이 테오의 일기에 남아있다고 한다.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꿔. 우리는 왜 별에 가까이 가 닿을 수 없을까? 살아서는 별에 갈 수 없으니, 죽음만이 우리가 별에 닿을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인걸까”



영화는 많은 이들이 말하듯 고흐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들과 감독이 고흐에게 전하는 헌사이며, 그 헌사를 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 육십만여 점의 수작업 프레임으로 그려내어 재현한 고흐 말년의 삶.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시선과 재능을 타고난 게 불행의 원인이었을까. 고흐가 눈으로 보고 느껴서 다시 표현한 세상의 풍경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탄하고, 그 세상의 풍경이 또 다른 에피소드를 낳고 있으니, 사람을 좋아했다던 고흐가 이 많은 이들의 찬사와 헌사를 듣고 보았다면 덜 불행할 수 있었을까. 고흐는 능력도 없으면서 이상만 높게 잡고 거기에 미치지 못해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비난하는 수많은 어설픈 천재들과는 구분된다. 그는 사물에서 의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책을 읽으며 세상을 알려고 했고, 동생과 주변의 사람들을 가슴 깊이 사랑하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The way to know life is to love many things."
삶을 이해하는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흐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작은 사물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까지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그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통해 보는 아름다운 세상 때문에, 그 재능에 옵션으로 딸려온 그의 불행에 약간의 부채감을 느끼는 듯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준 고흐에게 지금이라도,
몇년 동안 한 획 한 획 찍어 바른 물감으로 그려낸 이 육십여만 점의 그림에 담긴 마음들이 가서 닿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 엠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