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히스레저다
아이 엠 히스레저(I am Heath Ledger)
1979. 4. 4 ~ 2008. 1. 22
싱그러운 미소가 화면 가득.
10things의 운동장 노래 장면이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차창으로 비 맞는 장면처럼 인물 하나가 한 영화 전체를 압도하는 경우는 드문데, 출연 영화의 가장 강하게 기억나는 모든 장면마다 히스레저가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매력의 사람이었구나 싶다.
히스레저는 어마어마한 흥행배우는 아니었다. 하이틴 스타로 시작해 기사 윌리엄, 브로크백 마운틴 등의 좋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고 마니아층도 쌓고,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조커 역으로 강렬한 각인을 남기며 연기파 배우로 뜨려는 순간, 2008년 뉴욕 소재 자신의 아파트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한다. 자살설이 떠돌아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명백히 자살이 아닌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사고사라고 밝혀졌다.
영화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배우를 거물급 배우로 과대포장하여 미화하거나 자살설 등의 루머에 초점을 맞춰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대신 한 젊은 배우가 생존에 가득 안고 있던 삶과 일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에 초점을 맞춘다. 자극적이지 않아 불쾌하지 않은 대신 너무 피로하던 차에 잠시 졸 수도 있을 정도로 단조롭기는 했지만, 간헐적으로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영화관에는 생전 그를 사랑했던 팬들이 가득했고, 팬들에게는 선물같을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대림미술관스러운 감성으로 마케팅하고 있는 것 같다. '히스레저가 청춘에게......' 이런 식으로, 홍보에 사용한 사진들도 다 그렇다. 아래가 홍보문구. 나쁘진 않다......아니 좋다. 근데 대림미술관 사진전 홍보문구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전하는 처음이자 다시 없을 청춘레터
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도전과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제가 남긴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당신과 질문하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히스 레저가 청춘에게
히스 레저가 세상의 모든 히스 레저에게"
국내 포스터는 딱 요즘 국내 관객들이 좋아할 느낌의 사진들을 활용한 예쁜 포스터로 제작되었고, 현지 포스터는 색감도 고른 사진도 딱 현지 감성이다.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호주 퍼스 출신의 배우 히스레저, 히스라는 이름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에서 따왔다. 스무 살에 헐리우드로 떠나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의 첫 주연을 따내면서 헐리우드의 빛나는 별이 된다.
정말로
‘Can’t take my eyes off you’
삐진(?) 캣을 달래기 위해 운동장에서 'Can't take my eyes off you' 를 부르는 히스레저는 청춘 그 자체이다. 이 장면만 봐도 이 영화는 다 봤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면이다. 히스레저의 생전 모습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장면.
실제로도 고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영화도 약간 고전급의 하이틴 로맨스인데, 갓 스무살 히스레저의 싱그러운 젊음이 가득한 영화.
심지어 찐따로 나오는 조셉 고든 레빗은 이 당시 틴에이저.
어쨌든 내가 생각하던 히스레저의 이미지와 실제의 히스레저는 조금 달랐다. 나는 히스레저가 굉장히 조용한 성품에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파티와 명성을 즐기고 주변에 사람도 굉장히 많은,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순간을 열정적으로 기록하던 사람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은 배우에게 연기 중에 모니터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모니터를 보는 순간 카메라를 더 의식하게 되고, 그것은 감독이나 관객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신이 끝나자 성큼성큼 다가와 스스럼 없이 자신을 찍은 영상을 모니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안 감독에 따르면, 히스 레저는 오히려 모니터를 할수록 연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던 배우.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잠시 졸고 나니,
커다란 영화관 화면에 가득하던 싱그러운 미소와 특유의 멍뭉미는 간데 없고
히스레저 인생의 질풍노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미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이혼, 약물, 등등.
어쨌든 영화는 끝까지 그 일생의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고, 강박적으로 기록하던 그의 인생 순간순간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핸디캠을 셀피 모드로 두고 빙글빙글 도는 영화 마지막 영상 속 히스레저는 행복하고 호기심 가득해보인다. 노출계 없이도 빛을 계산해 순간을 기록할 줄 알았던 사진작가로서의 히스레저, 뛰어난 센스와 감각을 지닌 감독으로서의 히스레저, 사랑받는 아들로서의 히스레저, 사랑받고 사랑하는 연인으로서의 히스레저, 명성과 인기를 즐기면서도 싫어했던 히스레저. 불의의 사고로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그가 강박적으로 기록해두던 순간들처럼 영원히 작품으로 박제되어 우리 곁에 남고 오래도록 회자될 매력적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