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이 나네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2017
/드니 빌뇌브
/해리슨 포드, 라이언 고슬링, 자레드 레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이 나네.
심긴 기억마저 진짜로 만들어버리는 절실한 감정. 어차피 현재 시점에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과 기억이란 건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데, 원래 누구 것이 진짜인지는 무슨 의미일지. 모두가 같은 기억을 가졌어도 그 기억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는데.
More human than human.
모두가 같은 것을 가졌어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부른 대상은 단 하나.
모든 것을 다 잃고 삶의 목적마저 흔들린 상황에서, 단 하나의 그 사랑마저 잃고 돌아오는 길에 똑같은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또 만나는 기분은 어떨지.
이것이 레플리컨트의 비극이다. 삶의 의지를 갖고 희망을 품게 해주는 따뜻한 옛 기억은 다 남의 것이며, 심지어 모두가 같은 가짜 기억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진짜 기억의 주인보다 더 이 기억을 진심으로, 애틋하게 직면하는 쪽은 조이다.
블레이드 러너 속 레플리컨트의 자유의지는 의외로 주어진 삶의 한계성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일반적인 SF 영화 속 안드로이드와 달리 태생적이든 타의로 제거될 운명이든 주어진 생명의 한계가 있는 삶. 삶의 한계성은 인간이 신적 존재나 기계 같은 것과 차별화되는 가장 결정적 요소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 완성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함과 삶의 한계. 흐릿하게 뒤죽박죽인 진짜 기억처럼, 우리는 똑 부러지게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름답다. 여기서 여기까지가 너의 행동 패턴이고 이것까지가 네가 할 수 있는 능력치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인간은 허를 찌르고 그 정의를 깨버린다. 불완전함은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고 기적을 기대하게 한다. 그 희망을 바라보며 자유의지로 주어진 틀을 깨뜨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인간으로 태어난 태생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인간성에서 주어진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던 ‘조’처럼.
레플리컨트를 만든 인간이 레플리컨트 통제에 있어서 사실 진짜 걱정해야 할 부분은 레플리컨트가 자체 재생산, 번식이 가능하다는 점이 아니라 바로 인간처럼 사고한다는 점, 인간성을 지녔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자신과 유사하게 만든 창조물을 멸시하면서 두려워한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 일부러 수명을 짧게 만든 창조물이 자신들의 계산 밖으로 나가고, 통제 영역을 벗어나 보다 진화한 존재가 되어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할까봐 두려워한다.
인간처럼 켜켜이 시간의 무게를 쌓을 수 없는 슬픈 숙명. 내 것 아닌 시간의 무게와 힘, 애틋함. 가질 수 없는 것을 영원히 갈망하며 짝사랑해야 하는 기분은 무엇일까.
눈 덮여가는 차가운 돌계단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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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는 1편처럼 필요보다 약간 그 이상으로 잔인하고 야하지만 1편보다는 순하며, 1편의 시점인 서기 2019년에서 30년 이후를 다룬다. 레플리컨트와 함께 자녀를 출산한 데커드. 당시 레플리컨트 수명이 4년이었으므로 이로써 데커드 레플리컨트설은 깨어졌다.
80년대에 막연히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만 같은 디스토피아적 2000년대 느낌은 그대로다. 80년대 사람들에게 새 세기란 그렇게 두려운 존재였나. 그리고 왜 우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루지 못했나. ㅋㅋㅋㅋ 언젠가 폐허가 된 서울 디스토피아의 모습도 한국SF영화에서 볼 수 있으려나. ㅋㅋㅋ
목각 나무 인형 아래 새겨진 의문의 숫자는 딱 봐도 생년월일이다. 1편의 배경이 2019년이었고 데커드가 레이첼과 자녀를 둔다면 대략 2021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긴 쉽다. 게다가 새 주인공이 데커드의 아들이라니, 너무 뭔가 쉽다 했는데 굉장히 슬프게 흘러간다. 어쩐지 데커드가 자신을 찾아온 조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총을 쏘지 않았던가? 데커드는 딸을 낳았으므로.
"그 아들이 너인 줄 안거야? 저런, 그랬구나. 우리 모두가 그랬지."
우리는 혹성탈출에서 이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인원을 목격하며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고찰한 바 있다. 몰입하던 주인공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보통 레플리컨트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특별함이 평범함이 되는 체험을 하고 나면, 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근원적 질문(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심도 있는 몰입이 가능하다.
돌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운 조의 눈에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은 전편에서 최후를 맞은 로이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있다. 눈물을 흘릴 수 없게 설계된 모델인 로이의 눈에 눈물 대신 빗물이 흘러내린다.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홀로 아버지의 기억을 간직한 조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차가운 돌바닥 위에 기대어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조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들도 눈발 속에서,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심긴 가짜 기억임에도 출생의 기원을 찾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기억 속 애틋함의 대상을 지켜낸 레플리컨트는 하루하루를 스스로 지옥으로 칠하며 똑같이 명령대로만 사는 인간보다 무엇이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