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킹과 우디 앨런-인간은 소문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스티븐 킹은 ‘별도 없는 한밤에’의 닫는 말에서, 글쓰기에서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작가를 참을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불륜과 치정을 다루는 우디 앨런의 영화는 부도덕한 소재에 대한 비난과 자가복제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실제 수준보다 많이 저평가 될 수도 있지만, 마치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꼼꼼하게 인물과 주변 배경을 설정하고 매끄럽게 플롯을 풀어가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쉽게 써 내려간 듯하지만 보는 사람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잡아두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요즘 세상에 쉽지 않다. 요즘 세상엔 너무 뭣도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1935년생 할아버지로선 더 하다.
코니 아일랜드라는 가상의 유원지에서 일하는 험튼을 남편으로 두고, 유원지 내에서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지니(케이트 윈즐릿). 전직 여배우였지만 지금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고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며 삶은 퍽퍽하다. 어린 아들은 주 양육자의 부재를 겪으며 자라 방화를 일삼으며 심리치료를 나가야 하고, 유일한 삶의 활력소가 된 건 유원지 내 해수욕장 안전요원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러나 믹키는 마피아와 이혼하고 돌아와 쫓기는, 험튼의 젊고 아름다운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를 보자 동공 지진을 일으킨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사건은 적나라하게 태양이 내리쬐는 낮 시간을 배경으로 일어난다. 강렬하게 주연들의 피부 구석구석과 머리카락에 부서지는 햇빛은 삶에 찌든 얼굴의 근심과 바래어 푸석한 머릿결의 노후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파국에 몰려 상처받은 눈동자에 정통으로 내리쬐기도 한다.
하늘 높이 중력을 거스르며 치솟았다가 결국은 땅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숙명을 가진 관람차처럼 지니는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 있는 동안 발 디딘 땅의 현실이 연극이고 이상이 현실인 양 착각하지만 결국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할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영화마다 다른 설정과 캐릭터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배를 더 자주, 자극적 사생활 기사 말고 여전히 독할 수 있는 그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얼핏 나이 들어 유해졌나 했는데 최근 ‘별도 없는 한밤에’로 독자의 멱살을 질질 잡아끌며 독한 걸 안 쓴 거지 못 쓴 게 아님을 입증하고 여전한 독함을 자랑한 열 세 살 동생 스티븐 킹처럼!
플롯이 두드러지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즐겁다. 인간은 소문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이나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인간이 왜 진짜 삶이 아닌데 진짜 삶만큼이나 진짜 같은 이야기를 자꾸 창조하고, 듣고 싶어 하고, 시공을 넘도록 실어 나르며 그 과정에서 계속 재창조를 하는지, 그런 인간의 본능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