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낯설고 닮은 사람

by 랄라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 기예르모 델 토로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더그 존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 탐험에 대한 미/소 경쟁이 극에 달했으며, 성층권 아래에는 미/소 양 깡패만 존재하는 양하였던 1960년대의 미국. 미 항공 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저는 농아이다. 어느 날 실험실에 아마존에서 잡혔다는 괴생물체가 들어온다. 엘라이저는 이 생물체와 교감을 나누게 되고, 이 생물체는 실험실 내에서 또 미/소의 우주 탐사 경쟁에 이용되며 학대 당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하루 종일 당신 생각뿐, 내 주위 어디든 당신이 물처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어 당신의 모양이 어떤지 나는 알 수 없네”
이렇게 아름답게 사랑의 본질을 노래하는 영화가 있을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주변 공기와 머릿속, 빈 공간을 모두 물처럼 빈틈없이 메우는 당신의 본질. 어디를 보아도 가득한.
왜 인어 인간이었을까, 왜 물속이었을까 했는데, 그런 이유였던 것이다. 물처럼 형태 없이 그저 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당신의 존재, 당신의 사랑.




낯설지만 닮은 사람
몇 년을 함께 한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그저 한 번에 알 수 있는, 낯설고 닮은 사람.
간혹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보이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오래 봤다고 첫눈에 안 좋던 사람이 좋아졌던 기억이 없고 대부분 처음부터 보자마자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구도 알아듣지 못 하는 내 진심을, 나와 닮은 어떤 사람은 눈빛 하나만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더구나 말 못하는, 목에 흉터를 가진 고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불편함에 익숙한 엘라이저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I am incomplete. He sees me, for what I am, as I am.(나는 불완전해요. 그는 나를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봐요.)”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조건은 아니다. 엘라이저와 함께 일하는 젤다는 남편과 오래 살았지만, 남편은 젤다와 전혀 닮지 않은 사람이다.

아가미를 닮은 엘라이저의 흉터와 물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그녀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 역시 물속에서 뭍으로 올라온 존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인 일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농아다. 그녀를 농아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말은 때때로 오해를 낳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말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일라이자라는 인물을 통해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사랑을 다뤄보고 싶었다. 본질과 본질이 연결되는 사랑 말이다.
-출처: 씨네 21,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인터뷰 중



현실보다 실화 같은 판타지
전작 <판의 미로>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전쟁의 참혹함을 어린아이의 환상과 같은 판타지로 그려낸다. 판타지로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던 슬픈 현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리처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미국의 1960년대는 경제 부흥기이고, 무엇이든 노력하면 쟁취할 수 있고, 백인 남성이 중심인 사회이다. 스트릭랜드가 말한다.
"아마존에서는 저걸 신으로 추앙하는 모양이야. 그런데 저게 신의 형상은 아니지 않아? 신의 형상은 우리 같은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아, 정확히 말하면 당신(젤다: 흑인, 여성)보다는 나(스트릭랜드: 백인, 남성)의 모습에 가깝겠지만 말이야......"

영화는 괴생물체라는 판타지와 붉고 푸른 색깔들, “물”과 같은 메타포들로 시대의 폭력과 인물들이 처한 고통을 이야기한다.
자일스는 맛없는 파이를 만드는데도 자주 가던 파이 가게에서 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자마자 '나가주시죠, 올드맨'이라는 냉대를 받는다. 이 파이 가게 주인은 자리가 텅텅 빈 가게에 흑인 부부가 들어오자 좌석이 없다며 나가라고 내쫓는다(그러나 게이인 자일스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의 머리를 뜯어먹기까지 했는데도 이질적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야생이니까". 게다가 자일스는 매우 진보적이고 세련된 가치관을 가졌다. "노인으로서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단 두 가지, 치아 관리 잘하고 보다 더 즐겨라: I would say: Take better care of your teeth and fuck, a lot more."). 젤다의 남편은 집에서 손님이 와도 문을 열어주는 일 조차 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두 사람의 저녁 준비를 하는 젤다를 입으로만 부려먹는다.
괴생물체는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사회에서 차별받는 유색인종, 게이(자일스: 리처드 젠킨스), 장애인.
신이 정말 백인 남성인 스트릭랜드의 형상에 가까울까? 당신과 당신의 사랑이 물처럼 형태 없이 주변을 가득 메우는 것이듯, 신과 신의 사랑 역시 백인 남성의 형상이 아니라 물처럼 정해진 모양이 없는 형태일 것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1960년대와 같은)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고 말할 때, 그 말이 결코 구체화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이 앵글로 색슨의 혈통을 지닌 청교도였다면, 1960년대는 좋은 시절이었을 거다. 당신은 제트 카를 가졌을 것이고, 모든 것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부엌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0년대가 모두에게 그렇게 좋은 시절이었던 건 아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



메타포: 물
모든 장면을 연결하고 은유하는 물, 물방울, 비.
두 개였다가 하나가 되는 물, 계란을 삶는 물, 그를 살게 하는 물, 스트릭랜드가 마시는 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주변을 빈틈없이 채우는 '사랑의 모양'으로서의 물,
영화는 그 외에도 너무 노골적이지만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에 흥미로운 메타포들로 가득하다.
사랑에 빠진 뒤 엘라이저의 구두부터 시작하여 입술, 옷, 머리띠를 물들이는 선명한 붉은빛,
차별의 대상(블루 컬러 종사자, 흑인, 장애인, 게이)을 한 범주로 묶는 초록색,
남성을 상징하는 스틱 등(엘라이저와 젤다가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며 변기 주변에 튀는 오줌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스트릭랜드가 들어와 세면대에 탁 올려두는 길쭉하고 피 묻은 스틱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은유와 판타지로 아픈 현실을 담담하게(잔인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기인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의 미로>의 로맨스 버전 같은 영화다. 두 영화가 상당히 비슷한 구도를 띠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를 먼저 봤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판의 미로>는 워낙 임팩트가 컸던 작품이어서, 아직 기예르모의 영화 중에 <판의 미로>를 뛰어넘는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없다고 느낀다.


덧. 아니 호환이 된단 말이야?; 비유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까닭에 비슷한 상황에 대해 <스플라이스>에서 느꼈던 불쾌감은 전혀 없고 오히려 영화의 빛나는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주어가 없음)
이 영화에 한해서는 이종 간의 사랑이라고 해서 사랑을 플라토닉 한 사랑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 더 마음에 든다. 원초적이고 본능에 가까워 보이는 그 이끌림이 영화의 사랑을 더 본질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해 준다.






-180221, <씨네큐브>에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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