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Detroit)

차별의 어제와 오늘

by 랄라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존 보예가, 안소니 마키(팔콘), 윌 폴터, 존 크래신스키(에밀리 블런트 남편,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감독이자 주연. 잘 모르지만 존 크래신스키는 마이클 베이의 '13시간'에도 나오고, 마이클 베이 부부의 이혼 전에 친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피스'를 즐겨보았던 사람이라면 오피스의 짐을 알 것이다. )


공격성의 근원은 공포이다
사람은 두려운 것에 대해 공격의 발톱을 세우고 폭력적이 된다. 문명을 다 걷어내고 자외선과 추위와 더위 앞에 무장해제 상태의 맨몸으로 섰을 때 대체로 가장 생존하기 취약할 것 같은 인종이 뭘까 떠올려본다. 그 가장 취약한 집단의 몇몇이 가장 먼저 무장하고 지배자의 위치를 선점하려 했다. 이것도 다른 유형의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이나 궤변이 될 수 있겠지만 농담과 과장 좀 섞으면 그렇다.


보여주지만 말하지 않고, 말하지만 판단하지 않고, 판단하지만 '이렇다'라고 입 밖으로 정의하지 않는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 등을 연출한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들은 “보여주지만 말하지 않고”, 말하지만 판단하지 않는다. 인종갈등을 보여주지만 언제나 집단 문제 속에서도 사람 바이 사람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끌어갈 힘도 주고 싶은 메시지도 없어 늘 지나치게 극적으로 끌고가는 전남편(...!) 마형(마이클 베이)과 달리, 유독 한 개인에게 비장미 넘치는 운명을 선사하며 포악하게 굴거나 영웅의 총대를 지게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건조한 팩트같은 씬만 나열하는데도 지루하기는 커녕 똥줄타서 눈도 못 떼고 손톱 물어뜯게 만드는 슈퍼파워도 가졌다.



이 영화에 대해 결말에서 힘이 빠진다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여지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은 현실 그대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앞전의 잔인함들이 더 피부에 와닿는다.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충분히 몰입했다면, 재능과 한 때의 부푼 꿈에도 불구하고 왜 래리가 작은 교회에 숨어서 '쓸고퀄' 인력이 되어 노래하고 있는지 크게 씁쓸함을 느낄 것이다.
폭력을 전시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 폭력의 전시에는 판단하지 않는 척 하며 팩트의 탈을 쓰고 있는 어마어마한 판단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증언들은 가치가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에 대해 '서서 볼일 볼 것 같다(이것도 순화한 것이다)'라는 저속한 농담을 하는 사람도 보았는데, 사실 '허트 로커'를 보고 너무 잘 만들어서 충격을 받았었는데 감독이 여자인 걸 알고 또 한 번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번역: 황석희
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아주 잘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후엔 한계가 있다. 나는 국어도 영어도 못하지만 최근 몇 영화의 오역 논란이 생기면서 괜히 하는 예찬이 아니라 정말 이 영화 보는 내내 언어가 매끄럽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번역: 황석희” 라고 뜨는 것을 보고 아 또......라고 생각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때도 그랬다.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도 아름답다. 좀 오바같지만 사소하게는, 익스큐즈미를 “지나갈게요” 라고 번역할 수 있는 번역가는 또 없는 것 같다. 게임이론 같은 취조용어나 법률용어도 잘못 전달될 수 있을 부분이 많았는데 너무 다 좋았다. 번역한 후의 문장도 예쁘게 윤문하는 느낌. 제한된 글자수 내에서 최대한 원래 의미와 느낌을 한국어로 재현하려고 고민한 흔적이 역략한, 쉽게 읽히는 문장들. 글자쓸 자리 좁아서 어색하게 조사만 날려버린 문장이나, 옛날 학습서에 나올법한 옛스러운 문어체 번역은 없다.
'초월 번역'이라고들 요즘 많이 하던데, 디트로이트를 보고 바로 본 영화가 '유전'이었는데 유전을 보는 동안에도 와, 번역가 누구지? 요즘 황석희 번역가가 뜨니까 다들 번역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영화가 끝나자 '번역" 황석희' 라는 자막이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역가가 영화를 고르는지, 영화사가 번역가를 고르는지 시스템은 알 수 없지만 좋은 영화를 많이 맡아주시고 계셔서 그것이 더 감사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황선생님(?).

배우
이 영화는 보다보며 너무 화가 나서, 안소니 마키('어벤저스'의 팔콘)가 갑자기 팔콘으로 변해서 윌 폴터를 때려주었으면 싶어진다만, 너무 사실적인 영화라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역대 악역 톱10 안에 들 것만 같은 윌 폴터와, 수염 싹 깎고 얄미운 변호사로 나온 존 크래신스키만 좀 극적이었다. 윌 폴터는 정말 적당히 찐따같은데 못돼쳐먹은 역할에 적격인 것 같다. 메이즈 러너에서도 그렇지 않았던가...... 그리고 존 크래신스키가 연기한 변호사는 심문 중에 증인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감정변화나, 숨겨진 약점 등을 기가 막히게 캐치하고 폐부를 찌르고 역린을 긁어대는, 유능하고도 비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역할을 영화에서 볼 때마다, 머리 좋은 사람이 그 머리를 옳지 않은 데다가 쓰면 재앙이 닥쳐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네가 제일 나뻐. 이 나쁜 ㅅㅋ야.


어제와 오늘: 차별은 50년 후에도 존재한다
아프리카 출장 중에사진작가가 “백인이 만든 카메라를 p(자동)로 놓고 흑인을 찍으면, 대부분의 경우 사람 이목구비가 보이게 보정할 경우 파란 하늘이 희게 날아간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내내 상아색 계열이나 흰색을 섞은 오렌지색 같은 밝은 크레파스를 살색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영화 속에서 유색인종 남성이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보기 시작한 것은 채 20년이 안 된다. 흑형 유머 속에 과연 동경만 섞여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1967년과 2017년은 이상하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고 명대사
친구를 잃은 래리가 증인석에 앉아서 비열한 존 크래신스키 변호사의 심문에 비꼬면서 답하는 내용.
“머리를 벽에 대고 있지 않았나요?”
“손을 벽에 대고 돌아서 있었어요. 그게 팩트입니다.”
“뒤돌아 있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지 않았나요?”
“내 머리는 목에 붙어 있어서, 이쪽도, 저쪽도 볼 수 있죠.”
영화에서 가장 사이다처럼 속시원하고 유일하게 웃음이 터졌던 대사.

진중권이 씨네토크를 했었나보다. 오. 재미있었겠다. 얼마나 신랄했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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