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Hereditary)

날 이렇게 무섭게 한 공포영화는 네가 처음이야

by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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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연출: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밀리 샤피로(두 분의 무서운 외모가 열일하는 공포영화), 가브리엘 번(이 집안의 유일한 정상인), 알렉스 울프(두 번째 정상인, 정상인 2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는 나무위키에 아주 소상히 나와 있다. 영화 배급사 측에서 요청하면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개봉한 지 좀 되었고 개봉관도 적고 해서. 계속 소상히 남아 있을 것 같다.


https://namu.wiki/w/%EC%9C%A0%EC%A0%84(%EC%98%81%ED%99%94)


1. 무서운가?
ㅇㅇ......무섭다.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코드가 다르지만, 공포영화 보고 눈 질끈 감아본 적 없는 나에게도 "날 이렇게 무섭게 한 영화는 네가 첨이야" 심정이다. 무섭다고 아무도 같이 안 봐줘서, 혼자 봤는데 너무 세 번째 줄에서, 큰 화면과 큰 사운드를 견디며 외롭게 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반 미스터리 단계가 길고 떡밥을 많이 뿌리는 편이며, 조용한 집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작은 단서들에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조되는 무서움에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2. 영화관에서 본 적 없는 유형의 공포
오컬트 영화, 오컬트 영화 하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최근 못 보던 유형의 영화이다.


https://namu.wiki/w/%EC%98%A4%EC%BB%AC%ED%8A%B8

그렇구나.

용어 설명대로라면 소재가 오컬트 영화라는 장르를 결정하나 본데 그런 의미라면 못 보던 소재의 영화는 아니긴 한데, 확실히 고전적인 느낌은 강하다. 왜 고전적일까 생각해봤는데, 어렸을 때 공포영화를 보며 느끼던 극심한 공포감의 기억이 소환되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깜짝 놀라게 뭐가 튀어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고 깜짝 놀라게 뭐가 튀어나올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길고 고통스러운 편이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뻔한 클리셰 때문에 공포영화가 웬만하면 무섭지 않아지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이렇게 날 눈 가리게 하고 시선 돌리게 하다니 굉장히 행복한 고통을 선사하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 면역이 누구보다 센 내가 성인이 된 이후 놀라거나 무서운 장면이 나올까 봐 수초에 불과하나마 정면으로 화면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을 돌린 채 흰자로(?) 화면을 쳐다보게 만든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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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우-귀신, 악마보다 네가 더 무서워
일단 배우들의 외모가 호러 영화 속에서 열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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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인공 얼굴이 되게 무섭다(...).
무서운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미 엄마 토니 콜렛이나 딸 찰리의 행동이나 외모, 얼굴, 말투 같은 것이 귀신이나 악마 못지않게 무섭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에도 사실 엄마는 매우 무섭. 광기 어린 얼굴로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대사들이나, 빙의된 이후의 행동들은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초현실적 상황이 발생되기 전에도, 서포트 모임에 나갔을 때 가족력을 이야기하며 피식대다가 울먹이다가 할 때부터도 괴기스럽고, 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르는 비명이 아들 피터의 겁먹은 얼굴에 오버랩될 때에는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도 죽을래"라며 오열할 때도 마찬가지, 밥상머리에서 피터와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꿈 속이지만 피터 방에서 한 마디 마디 아픈 말을 뱉고, 입을 틀어막기를 반복하면서 "난 너를 낳을 생각이 없었어,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낳게 되었어"라고 쏟아붓는 장면도 충격적이다. 영화관 내에서 탄식이 나왔을 정도로, 관객을 심적으로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장면.

4. 서스펜스
무슨 일이 일어날 듯 말 듯 , 일어날까 봐 무서운 장면들이 주를 이루는데, 막상 무슨 일이 일어나는 장면은 비중이 작다. 차곡차곡 쌓이는 긴장에 비해 막상 나쁜 것이 확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긴장이 영화 내내 느껴지는데, 심리적으로 관객에게 기존에 익숙한 클리셰들을 역이용하는 듯도 하다. 우리 모두는 곧 뭐가 나올 때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쯤 되면 여기서 이게 튀어나올 것 같지만 튀어나오지는 않는 상황의 반복. 차라리 튀어나오면 해소가 될 텐데,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하는 긴장감. 그리고 모든 사건이 내 가족에게 일어난다면 끔찍한 일일 것이라서 더 몰입이 된다. 그 가까운 몰입감에서 오는 고통이 상당하다.
동생 찰리가 죽고 난 후 오빠가 느끼는 불안에 대한 묘사도 무서웠다. 특히 자다가 불 꺼진 방에서 찰리의 모습을 보았을 때, 찰리의 목이 또 한 번 뚝 잘려 떨어지는 모습에 기겁했지만 다시 보니 농구공이 떨어지는 것인 장면이라든지. 자다가 깨어 바라본 의자에 걸린 옷이 사람의 형상 같았다든지, 하는 부분은, 감독이 생활 속 밀착 공포가 뭔지 매우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5. 음향효과
사실 초반에는 음향효과가 너무 거슬렸다.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지속적으로 들리는 심장박동 소리 같은 거나, 처음부터 너무 긴장 조성하는 음악을 까는 것 등은 세련된 척하지만 촌스럽다고도 생각했음. 아니면 의도된 복고인가. 음악으로 무섭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별로다. 최대한 소리가 없는데 결정적으로 가끔 나는 게 가장 무서움. 후반으로 갈수록 불필요한 사운드는 없고 오히려 절제미 속에서 아주 무서운 편.
나는 메가박스 음향시설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아, 아주 시끄러웠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6. 최고로 무서운 장면
가. 찰리의 사고 장면
이 장면은 정말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은 장면이다. 있을법한 일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평소 걱정하면서 사는 모든 포비아에 대한 스위치를 다 켜는 것만 같은 장면이다. 사고 내용 자체도 무서운데, 보여주지 않는 연출에서 오는 공포감이 크다. 사고를 당한 후 찰리가 차창 밖의 전봇대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 들려주고, 차를 세운 피터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의 흐름을 한참 보여준다. 피터가 백미러로 뒷좌석 상황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백미러 안의 것은 보여주지 않으며, 당연히 찰리가 사망했을 것 같지만 사망했는지 확언하지 않는다(예고편이 동생 찰리의 죽음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유효한 감정 고조). 집으로 돌아오는 피터의 문소리를 듣고 잠결에 "애들 들어왔네"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잠드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겁먹고 넋이 나간 채로 침대에 눕는 피터의 얼굴을 보여준다. 날이 새서 밝게 무언가를 사러 시내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차 안의 것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 엄마의 음성이 침대 위 피터의 얼굴에 오버랩되는데, 이 음성의 급격한 변화가 이 극도의 공포감을 주며, 그 음성의 앞뒤 감정 온도차가 이 사건 전후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엄마의 비명 후 잘린 머리를 보여주긴 하지만, 머리 자체의 모습이 충격적이진 않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관객의 긴장감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후의 장면이라 심적 충격이 굉장히 크다.

나. 엄마가 천장에 붙어있다가 달려오는 장면, 머리 찧고 목 자르는 장면
이 장면은 (내 기준) 엑소시스트의 스파이더 워크에 비견할만한 장면이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멀쩡하던 아빠가 불에 타 죽은 뒤, 2층에서 깨어 나 아래층으로 내려온 피터의 등 뒤 천장에 붙어 기어 다니는 엄마와, 갑자기 사라졌다가 방구석에서 100미터 달리기하듯 전속력으로 우다다다다다다닼 달려와 피터를 2층까지 전속력으로 쫓아가고 피터가 다락에 숨자 다락 입구에 매달려 빠른 속도로 머리를 쾅쾅 찧어대는 모습이란 와...... 줄톱 같은 것으로 목 자르는 장면도 마찬가지. 너무 고어해서 비주얼적으로는 되려 충격이 덜한데 그 슥삭슥삭 소리란......

-이 영화는 결말 빼고 다 무섭다. 막상 결말을 보고 나면 앞의 무서웠던 것들도 무서워지지 않는다. 현실계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 해서 무서운 사고는, 사실 알고 보면 죽은 조상들의 큰 그림으로 이미 계획된 사고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 수 있다. 그렇게 귀신의 조화라고 생각하고 나니 되려 트라우마가 가라앉았다. 이제야 있을법한 사고에서 영화 속 귀신 얘기로 멀어질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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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론
가끔 영화가 불친절하다는 얘기도 있던데 불친절하다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들지 않았다. 요즘 관객들은 너무 이런 구도에 익숙해서 오히려 복선과 은유가 너무 뻔하거나 설명이 더 들어가면 촌스럽고 사족 많은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반 떡밥이 다소 길고 많아서 '뭐 대단한 얘기를 하려고 그래'라는 생각을 좀 하긴 했는데 그에 비해 대단하지 않은 결말도 좀 그냥 그렇기는 하다. 그렇지만 반전 강박 있어서 반전만 향해 달려가지만 반전도 별거 없는 요즘 흔한 공포영화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고,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그렇게 긴장 돋고 무섭게 만든 능력은 정말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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