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미노년의 ASMR

by 랄라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Ryuichi Sakamoto: Coda, 2017)






비 오는 날 봐서 정말 어울렸던 미노년의 ASMR.

용일 오빠(류: 용, 이치: 1을 뜻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부르는 애칭),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옛날부터 이분이 미모로 뜬 것도 아주 약간은 있지 않을까 늘 의심했었는데 심지어 자신이 ost 작업한 영화에 배우로도 출연하셨던 것은 알지 못했다.


2011년 내한공연 갔던 날에도 가장 좋았던 곡은 오늘과 마찬가지로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서 사카모토 류이치 옹과 너무 어려 놀라울 뿐인 데이빗 보위)



2011년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류이치 사카모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것. 샤프하고 예민해보이는 예술가. 음악가라기보다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사실 YMO를 결성하여 미국진출하였던 당시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잘 모르고 있었구나. 게다가 그 80년대 특유의 뿅뿅거리는 느낌과 뽕삘나는 일본 노래 특유의 느낌이 짬뽕된 그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코다(말하자면 '에필로그’ 와 같은 의미,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뜻함)'라는 제목답게 화려하게 세계적 거장의 삶을 다루기보다는 최근의 일상을 덤덤하게 다룬다. 인후암 3기를 진단 받았을 당시의 소회를 상냥하고 덤덤하게 인터뷰하거나, 식사를 하고 10알도 넘는 알약을 한 알씩 삼키는 모습처럼 투병의 일상적인 모습부터 과거의 모습들, 최근 심취하고 있는 음악, 사회적 운동 등을 찬찬히 다양하게 다룬다. 팬이어도 졸릴 수 있을 요소는 좀 있고 좀 인위적으로 과하게 덤덤하게 굴면서 세련됨을 연기하는 영화가 아닌가도 싶었지만 그냥 실존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인물이 다 살린 영화. 영화적 완성도를 판단할 필요는 없었다.


투병 중에도 자연의 소리들을 정성껏 채집하고, 존경하는 감독이라는 이유로 ost작업을 수락하고 8시간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며 창작의 고통을 겪고, 많이 굳어버린 손가락을 까닥이며 ‘매일 조금씩이라도 피아노를 꾸준히 치겠다’고 웃는, 이제는 기억 속 모습보다 나이 든 거장의 모습. 투병 중에도 정갈히 깎은 연필이나, 텀블러나 잔에 곱게 담겨 있는 물 같은 것을 보면서 참 정갈하신 분이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에 이미 미국 진출을 할 정도로 진취적 성격이었으며 오랜 해외생활로 너무 당연히 영어도 잘 하시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보지 않고 자신감있게 영어로 잘 표현하는 일본인을 나는 잘 본 적 없어서 더 멋있었다. 자신의 작업물이 마음에 들어 아이처럼 웃고 만족해하는 모습처럼 자신에 대한 신뢰가 확실한 모습들 속에서도 보이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 정말 좋았는데 예전에는 이분이 이렇게 유하고 상냥하신 분인 줄 몰랐어서 더 좋았다.

타고난 직관이나 대범함 등 타고난 예술가의 자질에 일본인 특유의 정갈함, 성실함을 동시에 겸비하였으며 패션 센스와 짜치고 귀여운 아재 유머까지 겸비한 사기 캐릭터.

친친 감은 머플러나 마르지엘라 가디건, 성성한 백발과 다양한 안경들, 과하지 않지만 신경쓰신 모습이 너무 멋졌는데 사실 그냥 패완얼일 뿐일지도 모르지.




“예술가들은 직감이 발달해서 평화가 깨질 조짐을 잘 눈치챌 수 있는데”,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특별한 재능을 통해 효과적으로 사회에 전하는 용기있는 메시지들도 존경스러웠다.

#only love can conquer hate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이길 수 있다)

911테러 사건 발생 당시에도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테러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후쿠시마 원전사고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남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인류의 환경파괴 행위에 경종을 울리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올해 용산에서 진행되는 전시 때문에 내한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태도”



(이상한 얘긴데 귀가 참 잘생기셨다.)



사람이 젊어 멜로디의 마스터피스를 몇 번이고 써낸 뒤에는 결국 가장 아름다운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인가 해보았다. 빗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흙을 밟는 자연의 소리를 채취해 그 위에 켜켜이 얹고 얹은 세심한 다른 소리들의 모음. 그리고 이미 80년대부터 ‘손가락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작업은 컴퓨터로 하면 된다’는 세련된 관점을 갖고 계시던 것도 멋지다.

최근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음악들도 참 좋았는데!



#엔니오_모리꼬네는_해주던데

#엔니오_모리꼬네는_해주던데

#엔니오_모리꼬네는_해주던데

#아_엔니오_모리꼬네는_그렇구나




거장의 탄생과정은 의외롭다. 새로운 장르를 파격적으로 개척하며 YMO(옐로우 뮤직 오케스트라) 미국 진출 - 당시로서 음악도 신선했지만 잘생기고 신비한 마스크로 배우로 활동 - 출연한 영화의 영화 음악 -한국에서는 2000년대 뉴에이지 열풍과 함께 가장 인기를 얻었음 - 현재까지 자연과 일상의 소리들을 결합한 새로운 현대음악을 시도 중

그리고 '엔니오 모리꼬네는 해주던데?' 라는 도발에 도발 당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나이에 언어적 장벽도 있었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지휘하는 영상 속 20대 류이치 사카모토 모습은 신태용의 유행어를 인용하여 '난놈'이었다. 이미 정해진 될성부른 잎.


예전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몹시 좋아해오기는 했지만, 나처럼 음알못이 최근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업물과 같은 전위적인 현대음악을 들으면, 솔직히 이것이 거장의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으면 내가 듣고 좋다고 할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빗소리에 전자소음이 가미된 ASMR 같은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현대 설치미술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뭐야? 그냥 설명만 그럴 듯 하게 하면(나는 '이빨 깐다'는 표현을 쓴다) 다 예술이야?'라고 자주 생각하는 것처럼

'앤디 워홀이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네가 똥을 싸도 대중이 좋아할 것이다, 라고 했다더니 유명인들은 나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서 좋겠네' 라는 꼬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음악이 만들어진 경위와 함께, 영상과 함께 보고 듣는 최근의 작업물들은 그런 생각들을 당연히 바꿔주었다. 참 전인적인 사람이구나, 인문학적 사회학적으로 관심이 폭 넓고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사람이구나, 용기있으면서도 겸손한 사람이구나, 대범하고 맑은 사람이구나, 그런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인물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적이 많았던가?


영화의 완성도는 아무 상관없다. 거장의 노오오오력이나 과거의 화려한 이력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건 말 안해도 여기서도 이미 다 보여. 영화가 담아 준 아티스트의 모습. 소리를 채취하기 위해 열정적인 모습과 원하는 소리를 담았을 때 기뻐하는 순수한 모습. 비오는 날 테라스에 나가 빗소리를 마음에 들도록 담기 위해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소리를 듣는 모습, 극지방에서 악기를 부딪고는 그 소리에 감격하여 씨익 미소 짓는 모습.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속속들이 사랑할 줄 아는 거장과 동시대를 살며 음악을 듣고, 생전의 모습을 이만큼 밀착되어 오래 볼 수 있는 2시간은 과분하게 드물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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