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최후의 미개척지. 그리고 인류의 첫 도달
연출: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흔히들 '데미안'이라고 음독하는데 자세히 보면 A와 E가 자주 보는 그 배열과 반대인 것 같다.
데미안 허스트와 비슷하다. 데미안 허스트도 실은 데이미언 허스트인 것이다. 뭐 이름 따위가 뭔 상관있으랴. 데미안이든 데이미언이든.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제이슨 클락(존 코너), 카일 챈들러
지구상의 영화인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85년생 신예 슈퍼스타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 퐈이널리, 드디어 개봉하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좀 들려오지만 나는 꼭 기대한 만큼 만족하였다. 기대가 워낙 컸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 일은 인류가 달에 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기대와 예상 이상 이상의 한 방은 없었지만 내가 보고 싶고 원하던 감정은 모두 다 얻어 간다.
영화가 인물을 바라보는 담백한 시선이 정말 좋았는데 닐의 나사 면접 장면이 그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인류가 천문학적 비용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달에 가야 했던 당위성이 닐(라이언 고슬링)의 입을 통해 가장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된 순간이기도 하다.
우왕좌왕하고 직접적인 설명 없이 인물에 대한 몰입감과 집중도를 높이며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웠다.
그렇다. 어떤 사물에 대한 견해나 진실은 바라보는 관점과 시기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이 100%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하여 세상 모든 사물에 호기심을 갖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는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 사실이니.
내가 뭘 알겠냐만, 감독의 나이도 비교적 어린 편이지만,
달에 가기 전 땅에서 닐의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나무 사이 한 조각 달의 다양한 모습들,
닐이 만지작거리는 딸의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 감촉을 떠올리며 기절했다 깨어나는 닐의 모습 등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는 연출들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한 시간 이상 바라보며 사색해본 일이 드문, 24시간 1인 1미디어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만들어내기 어려운 작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장면에선 지나치게 세련된 연출을 하고 싶어 하는 신예 슈퍼스타 감독의 욕심도 살짝 드러났고 그게 되려 뻔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그 또한 너무 인간계 이상의 기대심이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다른 더 나은 대안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앞세운 딸 이야기 한 번을 하지 않던 닐이 존 코너에게 딸 이야기를 하는 순간 존 코너가 곧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존 코너는 정작 존 코너일 때는 에드워드 펄롱에게 무슨 일이 생겨 저렇게 자란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며 내 몰입을 깨더니 이번엔 내내 존 코너로 보여 내 몰입을 깼다. 시간 여행도 하는 사람이 왜 달 여행은 힘들어하는 것이여. 시간 여행이 달 여행보다 쉬운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엔딩 스태프롤에 실존 인물의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것이 끝까지 클리셰를 벗어난 이 사람의 스타일이구나 싶어 더 좋았다. 스태프롤 롤링되는 말미에 희미하게 들리던 교신음만이 실제였을지, 모르겠다.
이 실제 프로젝트 자체에 국뽕의 기운이 강같이 넘치지만 나는 사실 플로리다 여행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가 나사 케네디 센터일 정도로 이 실화 자체가 좋다.
케네디 대통령은 인류의 달 착륙 계획을 발표하던 1961년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We choose to go to the moon!)”라고 되풀이하여 공언하며,
“달에 가는 것이 쉽기 때문에 달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루지 않고 달성하기 원하는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라고 부언했다.
그리고 그는 닐의 이 첫 발자국을 보지 못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첫 발걸음이었지만 구소련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와 천조국의 자부심이 동시에 내내 느껴지는 프로젝트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뭐 기실 천조국이 최후의 승리자인 것이 사실이긴 하니 굳이 짜치게 궁시렁거릴 수는 없지만 예술가한테 성조기 꽂는 장면 없다고 정치적 견해를 되묻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이 실제 국뽕 충만한 프로젝트의 가장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남았던 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까운 이의 희생과 뜻하지 않은 사고와 실수에 슬픔과 답답함이 가중되며, 이 얹힌 심경은 닐이 달에 착륙하는 순간에야 해소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것 봐라, 이 프로젝트가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오오오오오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도 노오오오오력하면 인류가 지금껏 하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다. 피땀 어린 노력과 희생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자.라는 메시지를 절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달에 가기로 결정한 이후,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고 초조하게 남편의 생사에 귀를 기울이는 아내의 모습이나, 아빠를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식탁에서 듣는 아이들의 모습. 위대한 한 발자국을 내딛는 과정에서 한 개인과 가족이 받아야 했을 상처와 견뎌야 했을 불안, 등을 담담하게 조명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 메시지는 영화에 삽입된 이 노래에서 더 확신할 수 있다.
Whities on the moon.The man jus' upped my rent las' night.
('cause Whitey's on the moon)
No hot water, no toilets, no lights.
(but Whitey's on the moon)
백인들은 달에 가지.
간밤에 집주인이 내 월세를 또 올렸어.
백인들이 달에 가기 때문이지.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지.
그러나 백인들은 달에 가지.
(번역: 나)
질 스콧 헤론, 1970년, 'Whitey on the moon' 중에서
워낙 조용한 영화이기 때문에 닐이 홀로 우주선에서 느끼는 굉음과 선체의 흔들림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데, 신체적 피로도는 이 때문에 좀 가중된다. (아맥2D로 관람하였는데 4D로 보면 어떨지 살짝 궁금해졌다.)
큰 슬픔이나 불안, 비극이 절제 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보는 내내 감정적 피곤함과 오그라드는 부산스러움이 없지만, 절제된 감정이 마침내 그나마 폭발했을 때는 등장인물이 느끼고 있을 공포와 불안,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닐이 어떤 결정을 해도 덤덤한 얼굴로 지지해주던 닐의 아내가
NASA로 찾아와 "당신들 못 믿겠다, 다 아마추어다"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남편 거스를 잃고 한동안 열린 자동차 트렁크 앞에 서 있던 거스 아내의 모습,
엘리엇을 잃고 거칠게 차를 몰아 홀로 집으로 돌아온 닐의 모습 등에서
더 큰 상실감과 쓸쓸함, 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엘리엇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사람들 중 닐과 마찬가지로 드물게 군인 출신이 아닌 일반인이었으며, 감독은 닐의 나사 면접 장면에서 관객이 엘리엇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설계해놓았다. 그래서 관객도 상실의 슬픔을 함께 느껴야 한다.
논조를 드러내지 않는 영화라서 그렇지, 몇 장면에서는 거대 프로젝트 속 부속 취급되는 외로운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좀 나오긴 나온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음).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는 법. 모두 알고 시작한 일이지만, 개인의 희생과 그 가족의 아픔이 반복되는 동안 별로 미션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던 나사 것들이, 닐이 달 착륙 연습하면서 천문학적으로 비싼 장비 하나 태워 먹고 그 장비와 함께 화형 될 뻔했다가 개인의 뛰어난 순발력으로 목숨은 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자 근원적 질문을 굉장히 뒤늦게 챙겨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너 이렇게 실수가 잦은데 달에 갈 수 있겠냐면서, 비용과 희생이 이렇게 따르는데 우리가 달에 갈 가치가 있을까 하는 근원적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들은 뭐였죠? 닐이 그들에게 일갈한다. "글쎄요,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좀 너무 늦지 않았나요?"
Neil Armstrong: We need to fail. We need to fail down here so we don’t fail up there.
우리는 실패해야 해요. 여기서 실패해야 거기 가서 실패가 없죠.
Gene Kranz: At what cost?
비용이 얼마가 들든? 어떤 희생이 있든?
Neil Armstrong: Well, it’s a little bit late for that question, isn’t it, sir?
글쎄요,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요, 안 그래요?
가까운 주변에서 지구 평평설을 믿으며 인류 달 착륙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았는데 달 착륙 음모론을 말하는 사람들의 단골 주장 근거가 “그리고서 다시 못 갔잖아”이다. 이 영화를 보면 다시 못 간 게 아니라, 왜 다시 ‘안’ 가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 사람은 못 알아듣겠지만 그 사람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볼까.
바로 이래서 다시 '안' 가는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니까.
Whities on the moon.The man jus' upped my rent las' night.
('cause Whitey's on the moon)
No hot water, no toilets, no lights.
(but Whitey's on the moon)
백인들은 달에 가지.
간밤에 집주인이 내 월세를 또 올렸어.
백인들이 달에 가기 때문이지.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지.
그러나 백인들은 달에 가지.
참고로 이 영화 속에서 아폴로 11호를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탄 것으로 나오는 인물 버즈 올드린은 면전에서 달 착륙 음모설을 제기하는 사람 얼굴에 죽빵을 날렸는데, 정당방위 판결을 받았다고 하니 평평한 지구 학회는 참고 바란다.
그리고 한 개그맨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쳤는데, 이는 달 착륙에서도 적용되어서, 아니 어쩌면 달 표면을 밟은 인류 이름 중 지구인들이 기억하는 이름이 거의 닐 암스트롱뿐이어서 생긴 말이라고 해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세상 이치인데, 닐 암스트롱 이후 달을 밟은 우주 비행사는 열 명이 넘는다. 평평한 지구 학회는 참고 바란다. 닐 암스트롱만 달 안 밟았다고 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다 달에 안 갔다는 것을 입증해라.
(이 장면은 보면서 카메라 각도를 빗겨서 촬영했는지, 아니면 따로 찍어서 헬멧에 합성했는지 궁금했다.)
"This i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인간(나)에게는 작은 한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다.
닐 암스트롱(1930~2012)은 달에 첫 발자국을 딛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처음 달을 보고 내리기 전에는 "여긴 '고요의 바다'다"라고 이 인류가 처음 가닿은 미지의 미개척지를 묘사했다.
->영화를 보고 각종 다큐나 드라마를 보니, 나사에서 달의 구역을 부르던 여러 명칭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폴로12호가 착륙한 곳은 폭풍의 바다.
이제는 좀 뻔한 앵글일 수 있지만, 우주선에서 내려 달에 내리기 전까지 1인칭으로 표현되는 묘사는 이 영화가 거대한 프로젝트 속 한 고독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부언한다.
거대한 아이맥스 화면에서 노이즈투성이이던 아날로그적(실제로는 디지털이겠지만) 화면이 인류가 달에 간 이후부터 깨끗한 고화질로 바뀌면서, 실제 우주에 온 것처럼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감독의 전작을 본 관객 대부분은 예상했으리라.
예상했다고 해서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딱 기대한 만큼의 감동을 받았고, 단언컨대 내가 본 인류의 달 착륙 프로젝트 재현 중 최고의 장면이라고 느꼈다.
과도하게 주입하는 메시지나 억지 감동 없이 이렇게 끝나서 좋다. 그냥 이랬다 하고 끝나서 좋다. 언제나 세졜의 영화는 엔딩이 가장 좋다.
영화는 아무 강요하는 메시지 없이 덤덤했지만, 영화를 관람한 개개인은 각자의 체험들을 대입하여 자신의 내면을 만나고 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현실과 일상의 아픔을 마주할 때 떠나고 싶어 할까? 심지어 여기선, 그 행선지가 달이다. 달에 두고 온 딸의 물건. 그 행위의 근원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마음은 거의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삼켜야 했던 상실감. 손에 남아있는, 땀에 젖고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의 감촉.
"아빠, 달에 혼자 가면 외롭지 않을까요?"
얼핏 생각하기에 현실의 아픔을 삼키고 먼 여행을 떠나는 자는 그 아픔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행을 떠나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익명성의 고독과 마주하며 그 아픔을 직면하게 된다. 일상의 처리해야 할 보풀 같은 일들로부터 벗어나 아무도 알아보는 자 없는 거리를 걸으면서, 밤 비행기에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노을과 일출을 보면서, 홀로 낯선 침대 위에서 몸을 뒤채다 잠들면서. 매 순간 그 아픔과 단독으로 마주하게 된다. 닐 역시 최초로 밟은 그 땅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무친 그리움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리라.
마지막으로 가상의 항해일지인데도 인류 달 착륙 프로젝트와 맥이 비슷한 메시지가 물씬 느껴지는 <스타트렉>의 인트로도 곁들여 본다.
Space, the final frontier. These are the voyages of the Starship Enterprise. Its continuing mission, to explore strange new worlds, to seek out new life and new civilization, to boldly go where no one has gone before…
우주, 최후의 미개척지. 이것은 엔터프라이즈 호의 항해(일지)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임무는 새롭고 낯선 세상을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과 문명을 발견하며,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대담히 발을 내딛는 것이다......
(번역:나)
-스타 트렉 5편, 스타트렉 비욘드 중에서-
'우주, 최후의 미개척지.' 이렇게 아름다운 구절을 SF 영화 속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인류의 본질에 대한 애정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문장.
이미 많은 곳을 탐험하고 성공을 거둔 인류가 새롭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발휘하며,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종족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모험을 지속해 나간다는. 지구에는 이제 남은 미개척지가 없다. 인류는 지구 모든 곳을 탐험했고, 이제 남은 곳은 미지의 우주.
Space, the final frontier.
우주, 최후의 미개척지.
그리고 첫 번째 인류.
퍼스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