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이 계절에 딱, <만추>

낯설고 닮은 사람

by 랄라

"낯선 사람이 종종 친근한 사람보다 더 큰 위로나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오랫동안 곁에 머무른 사람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나와 닮은 어떤 낯선 이는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냥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 '만추'는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는데

어느 추적추적 비내리던 늦은 가을-겸 겨울 초입- 일요일 밤 EBS1에서 해주기에

(EBS 영화 담당자는 정말 상 줘야 한다. 여러번 그렇게 생각했다. 계절과 사회 이슈, 어느 배우의 기일 등에 맞춰서 기가 막히게 영화를 선정함은 물론, 고르는 영화들도 어쩜 그렇게 다 좋은 영화들인지)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점차 눈도 못 떼고 빠져들었다.

나는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봤을까 싶었을 정도.


FFGS.jpg?type=w2



[스포 함유]


폭력남편을 정당방위로 살해한(것으로 추정되는 혹은 오해로 죄를 뒤집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죄로 수감된 탕웨이. 모범수로 복역 중이던 탕웨이(극중 이름이 기억나지 않음)는 모친상으로 하루의 외출을 허가받는다.



FFFFFFFFFFFF.jpg?type=w2



그리고, 돈을 받고 애인대행을 해주며 밑바닥 인생을 사는 현빈(역시 극중 이름 기억 안 남)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하루만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스토리라인만 보면 정말 진부하고 우울할 것 같은데다가, 노랗고 버건디이고 세피아스러운 가을 색상톤 자체도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썩 찾아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보다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

스산하고 차가운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뒤, 따뜻하게 위로 받은 기분이었다.

감정선도 치밀하고, 탕웨이의 연기도 정말 정말 좋았고,

영어대사 발음 논란이 있던 현빈의 연기도 나는 정말 좋았다.

영어발음도 대사전달에 전혀 문제 없었고 감정 흐름에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쌈마이 인생을 살아 온 현빈 캐릭터에 진정성을 더하는데 훌륭한 설정이 될 정도.


영화 속 수많은 생략된 서술들 또한 먹먹함을 더했다.


나대지 않는 느낌의 두 배우 특유의 분위기가 신의 한수였기도 했던 듯.


영문 포스터 카피에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었는데,

국문 카피보다 영문 카피가 영화의 핵심을 더 효과적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True love knows no stranger"


진정한 사랑, 교감에 있어서,

물리적 익숙함이 없다고 해서 낯선 느낌 따위는 없다는 것이겠지.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교감이 있다면

바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DA.jpg?type=w2

물리적인 익숙함은 사랑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았을 때 아무 동질감도 느껴지지 않던 사람을

나중에 익숙해지고 친해지면서 사랑하게 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익숙함과 동질감은 내 기준에선 너무 다른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무수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내리는 사랑에 대한 정의 또한 무수하지만

그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정의는

"내가 인식하는 나 그대로 나를 인식하는 사람과 나누는 교감"

이다.


사람들은 말로 전하는 나의 진심을 종종 왜곡하고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예단하곤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 속에서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타인의 행동이나 삶을 너무 쉽게 왜곡하고,

우리는 남의 기억과 판단 속에서 힘없이 우리 자신의 근본과 너무 다른 존재가 되어 남아 버린다.

가까운 사람들의 이런 선입견은 의외로 외롭고 괴롭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위로받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종종 있다.

물리적으로 지낸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자아와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고 저절로 동질감을 느끼는 일.

movie_image.jpg?type=w2


낯선 사람이 종종 친근한 사람보다 더 큰 위로나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때로는 어떤 낯선 사람이 내가 말한 것들을 듣고

마음아파하지 않고 금세 기억에서 휘발시켜버려서 부담이 없어서일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곁에 머무른 사람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나와 닮은 어떤 낯선 이는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냥 알기 때문이다.


딱히 외로운줄 모르겠는 세상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기쁨, 이 서운함이

오직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고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는 것은, 기쁜 일이다.


FFFFFFF.jpg?type=w2

덧.


최후의 승자는 김태용 감독이다.

왜 이 사진 속에서 역광 낭낭하게 받고있는 현빈보다

구석에 있는 감독님이 더 승자처럼 느껴지는가


aFGGGG.jpg?type=w2


덧 2.


[강력 스포]

-나는 옥자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무서운 개 끌고 다니는 남편이 죽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빈은 안 죽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콩밥 먹는 중이었다고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