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단점을 터놓고 한 번만 더, 그때 네가 내민 손을 잡았더라면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첫사랑과 후회.
그림과 같이 현재 체실 비치에서 다투는 중인 얘네들은 물론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영화말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사에서는, 비장한 큰 사건보다는 주로 뽀시래기 보풀 같은 치사한 일들이 중요한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상대의 큰 잘못 자체보다는 그 잘못에 수반되는 사소한 무배려가 마음을 홱 돌아서게 만드는 트리거가 된다.
별말 아니지만 화가 나서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던진 말에 상대는 뼈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고, 용기를 내어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농담처럼 던졌을 때 상대가 흘려들어 상처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현재 체실 비치에서 다투는 중인 얘네들 역시, 1960년대처럼 계급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시대에 막상 다른 성장 배경을 반대하는 부모 때문에 헤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신혼 첫날의 사소한 다툼(물론 중요한 주제로 다투지만), 아니 다툼 자체보다 다툼 과정의 디테일에서 어긋났다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성장 배경과 어린 시절 각자의 트라우마가 아니었다면 다투는 도중 서로의 뼈를 때리며 이미 딱지 진 생채기를 긁어댈 일도 없었겠지만.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고 끝없이 따져 물어 원인을 거슬러 찾다 보면, 1960년대에 20대 청년이었던 것이 궁극적으로는 어긋남의 원인이었던 것이겠지.
현대였다면 문제 되지 않을 서로의 다른 배경. 신혼여행을 막 온 부부가 호텔에서 저녁을 먹으며 대화한다. 결혼한 지 여섯 시간 경과. 대화나 눈빛은 묘하게 어긋난다. 어딘가 괴기해 보이는 두 사람의 가식적인 대화와 관계. 왜일까. 두 사람의 만남부터 현재까지의 회상 장면-서로의 성장 배경을 점차 관객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내주는-은 점점 현재 두 사람 대화의 어색함에 인과성을 부여하며, 어찌 보면 약간 스릴러 같은 구도를 띤다. 회상이 진행될수록 궁금증이 점점 풀려가는 느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무 사랑하고 너무 처음이라 터놓고 상처와 단점을 나누지 못하던 부부.
완고한 집안에서 겉으로 보이는 점잖음을 중요시하며 자란 여자는 싸움에도 서툴다. 별것 아닌 의견 차이도 싸움이라고 정의하며, 상대에게 빈틈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너무 어린시절부터 가정 내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를 잃어버린 남자는 트러블이 생겼을 때 분노나 당황을 컨트롤하지 못하며,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만 센 모습을 보인다.
함께하다가 마주친 당황스러운 어긋남 앞에서, 한 번만 더 차분하게 대화하고, 한 번만 더, 한 걸음만 더 나아갔다면.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내 사연 말하기 대회" "억울하게 막판에 거북이한테 역전 당한 토끼(!) 이야기(?)" 같은 것처럼 늘 반상회 아줌마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내려올 것만 같은 치정 이야기를 무슨 대단한 문학인 양 자꾸 비장하게 포장하여 가지고 오는 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데, 이 작가는 누가 누가 더 억울한가 누가 누가 더 후회에 사무치나 누구의 인생이 더 기구한가. 뭐 이런 이야기를 늘 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성격의 소설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 내 취향이 아니기는 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19세 이상만 읽어야 합니다.)
노인 분장을 젊은 배우들이 직접 하고 나온 것이 신선했는데, 토끼는 골룸이 되어 약속한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떨궜다. 왜 굳이 대머리로 분장해야 했죠? 비주얼 때문에 굉장히 개그 콘서트 보는 기분인 한편 이 작가 특유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사무친 회한에 마음이 찡하기도 했는데 그건 전적으로 지질이 배역 전문인 배우의 힘이었던 것 같아. 불화보.
골룸의 모습을 하고 그렇게 슬피 우는데 나는 원래 영화에서 누가 서럽게 울면 따라 우는 이상한 습관이 있어서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따라 울 뻔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비장해서 코믹한 느낌은 또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좀 개그적으로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ㄱㅈ끼리 서로 첫날밤에 소박 맞고, 여자는 자손을 줄줄이 낳으며 삼대가 안ㄱㅈ임을 과시하고, 남자는 친구들에게 남의 얘기인 척 자기 소박맞은 얘기를 하며 십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분노에 차 있으며, 결국 끝까지 자기만 ㄱㅈ로 남은 게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닌가!
어쨌든 농을 안 쳐도 별거 아닌 일들로 스토리가 너무 비장한 비극으로 치달으니 약간 웃긴 것이 사실인데, 인간의 이면이 이렇게 지질하다는 것과 “그 시대는 참 비장하고,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드는 시대였다”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인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 의도라면 좀 더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다.
언급한 대로 여자는 빵꾸똥꾸 닮은 딸을 낳고 또 낳고 또 낳고 손자까지 다섯을 두며 고자가 아님을...... 아니 건재함(?)을 과시했다. 게다가 남주가 더 후회스럽게시리 할머니 분장을 하니 젊을 때보다 예쁘다. 고품격 예쁜 할머니. 아니 게다가 남주가 너무 열받을만한 게, 결혼 직전에 약간 썸 타던 남자(음악하는 냉미남...... 아니 그냥 냉남)에게 다시 갔다. 여주가 혼인 담당해주실 신부님과 티타임을 갖다가 신부님 앞에서 갓과 헬을 번갈아 외치며 당황하던 모습을 보면, 어쩌면 생각보다 썸남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실은 케미는 덜 돋아도 가치관은 더 맞는 짝일 수도 있었다.
억눌려 자라 얼핏 약하고 여성스러워 보이는 여주는 합주단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결단력을 보이는데 그 의외성이 같은 협주 그룹에서 합주를 하는 그 병약한 냉미남......아니 냉남에게 어필한 것이다. 은근 약혼 후에도 양썸을 타고 있었다. 1960년대에. 신여성이었던 것이다.
지난날의 한 조각을 회상하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여자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민 손을 한 번만 더 참고 잡았더라면 현재의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자의 엄마를 진심으로 감싸 안다가 긴장하여 꼭 쥐어지는 여자의 주먹을, 현재가 오버랩 될 때까지 쓰다듬는 남자의 손처럼(이런 과거 회상 장면들이 불행의 전주곡처럼 보이기는 한다.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거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한 번만 더 인내심을 갖고 조금 더 대화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둘은 너무 달랐고, 어리고 서툴던 시절인데 어찌하겠는가. 게다가 시대가 너무 인물을 억압하던 시대였음을(신기하게도, 사실 수십 년의 시대가 지난 뒤 한국에서도 내가 자란 시대는 궁극적으론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는 했다). 1962년에 시작된 남녀의 서사는 2007년에 가서야 마무리된다.
너무 사랑하고 너무 처음이라 터놓고 상처와 단점을 나누지 못하던 연인이 결국 등을 돌려 조금씩 멀어지던 걸음을, 끝까지 애써 한 앵글 범위 내에 담는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 장르가 왜 '로맨스 영화'로 분류되어 있는 거죠?
공포영화로 넣으셨어야죠! ㄱㅈ가 소박 맞는 영화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