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모든 것이 변했어, 네 감정만 빼고 전부

by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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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빗 로워리(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 <미스터 스마일>을 연출했다)

출연: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이 일차원적인 유령의 모습은 무엇인가. 눈구멍이 뚫린 흰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 실사 유령이라니. 이 영화는 대체 뭘까? 공포 영화인가 코미디 영화인가 하다 보니 로맨스 영화이고, 로맨스 영화인가 하다 보니 개인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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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출처: 다음 영화)

사랑을 잃다

교외의 작고 낡은 집 -

작곡가인 C와 그의 연인 M은 조용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M은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사랑을 기억하다

창백한 조명의 병원 영안실 -

고스트가 되어 깨어난 C는 마치 홀린 듯 M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녀와 고스트는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사랑을 잊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집 -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며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M은 결국 집을 떠난다

남겨진 고스트는 영원히 그녀를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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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기억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혼자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유령처럼 배회하는 미련. 모든 것이 변했어, 네 감정만 빼고 전부 다.


함께 의미 부여하고 기억하는 사람 없이는 혼자 남은 빈집처럼 이제 의미 없을, 죽어 버린 추억. 더 이상 그 사람이 들어와 함께 하지 않을 공허한 기억 속(집)에 감정 없이 남아 있는 빛바랜 쪽지.


이 영화는 사랑했던 추억이 남아있는 ‘기억의 방'에 대한 이야기다. M(루니 마라)은 집을 떠날 때마다, 돌아와서 볼 수 있게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고 했다. 그렇지만 돌아와서 그 쪽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이미 받았지만, '절실함'은 희미한 믿음의 끈을 끝내 붙잡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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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안녕).”

“무엇을 기다리고 있어요?”

“기억이 안 나요.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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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집 지박령의 슬픈 이야기처럼, 기억조차 다 지켜내기 어려웠던 C(케이시 애플렉)의 공간도 텅 비어간다. 필사적으로 문 위에 덧칠된 페인트를 긁고 문틈에서 꺼낸 쪽지를 읽는 순간, C는 사라진다. 그렇게 아파할 만큼 사랑했던 기억과 미련도 영원할 순 없었는가 보다. 무얼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잊을 만큼. 마치 흔히 인용되는,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시절 사랑에 빠졌던 내 모습이 그리운 것이다" 라는 말처럼, '기다림'에 매몰되어 정작 대상의 본질을 잊은 맞은편 집 지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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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찾아온 건 물리적 이별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지만 결코 예전처럼 닿지 못한다. M은 C를 볼 수 없다. M에게 C는 소멸한 존재이다. 급작스럽게 타의(죽음)로 단절되어 황망하지만 M은 차츰 더 이상 곁에 없는 C를 지워간다. 공유하는 추억이 남아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은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C의 시간은 계속 머물러 있다. 그래서 C의 기억은 새로 쌓이는 다른 기억으로 덮이지 않아 좀 더 오래 지속된다. 시간과 기억 속에 갇힌 C는 자신이 살아 있던 과거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연속되지 않고 단절된 추억은 언젠가 잊힌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고 해도 무한하지는 않다. 제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나고 마음에 깊이 새겼어도 그렇다. 시골 농가의 주인이 몇 번씩 바뀌었다가 허물어지고 마천루가 들어서기까지 그곳에 오래오래 머물렀어도, 언제까지고 기억의 방에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져가버리고, 그 자리에 이해만을 채워 넣는다. 시간은 기계이다. 시간은 고통을 경험으로 바꾸어놓는다. 순수한 정보를 가져다 편집하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놓는다. 우리 삶의 사건들은 기억이라 불리는 다른 물질로 변형되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들은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편집되지 않은, 가공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서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의 저자 찰스 유는 개개인이 그 자체로 살아있는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누구든 기억 속의 시간을 꺼내 회상하기만 하면,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가장 완벽한 고객 맞춤 설비를 갖추고 제작된 전천후 타임머신이라고. 전천후 타임머신인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시절을 되짚어 돌아갈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시절로 돌아가 회상에 잠길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은.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무한히 보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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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일차원적인 유령의 표현 때문에 놀라기도 했고, 웃겼다. 유령이 하얀 천을 쓰고 눈 구멍도 뚫었는데, 모두가 유령을 의도적으로 못 본 척한다. 영안실에서 바로 그 시트를 뒤집어쓴 채 일어나서, 눈에 구멍도 동그랗게 뚫고 있는 유령이라니 귀엽기까지 하다. 천으로 가린 얼굴과 뚫린 구멍에 검게 보일 뿐인 눈은 사실 계속 같은 모습이지만, 영화에서 연출되는 상황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이 투영되어 마치 감정과 표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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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못 보던 형식의 영화여서 좋았는데, 옛날을 회상하고 있거나 어딘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화면비, 어마어마한 롱테이크씬들(M-루니 마라-이 배우자를 잃은 슬픔으로 황망한 상태에서, 이웃이 걱정하여 가져다준 파이를 정신없이 먹다가 결국 게워내는 4분 길이의 훌륭한 롱테이크 신이 대표적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는 신선했다.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 때문에 행복했는데, 마지막 40분 정도는 슬펐다. 귀여운 앞부분이 좀 더 좋았다.


다른 가족의 이사로 기억의 방을 침범 당한 C가 접시를 던지며 폭주하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영화의 온도가 슬픈 톤으로 바뀐 것 같다. 분명 똑같이 흰 천 뒤집어쓰고 눈만 검은 동그라미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동공 지진과 혼란, 슬픔,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보다 감정이 더 잘 전해지는 것도 같다.


영화 속에서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것을 추상적인 '기억'에 대해 현물화하며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 이사온 사람에 대한 격렬한 유령의 저항은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다른 사람의 추억이 덮어 희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볼 수도 있겠다.

"왜 이렇게 이집을 좋아하는 거야?"

"이집에는 (우리의) History가 있잖아."

C는 생전에도 지속적으로 추억에 집착한다. 어쩌면 이 기억의 방과 주변 이야기들은 사랑하다 이별하여 버려진 C의 추억을 비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계가 단절된 직후 기억의 방에서 우리를 아프게 잡고 있는 추억이건만, 잊고 잊혀서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 누군가에게 무겁지 않은 존재나 사라진 존재가 되는 것 또한 인간에게는 두려운 일인가보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사는 존재라고 믿고 싶으므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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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 M을 위해 만든 음악을 듣는 과거 회상 신과 현재의 신이 엇갈리는 장면을 비롯해서, 대사를 대체하는 음악이나 소리가 굉장히 가슴에 많은 울림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사운드가 좋은 환경에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노래 제목은 I get overwhelmed(Daniel 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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