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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Aladdin)

"지니, 넌 자유야"

by 랄라


‘지니, 넌 자유야’라고 알라딘이 말할 때 실제 원작 배우의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휘트먼의 시를 가르쳐주던 키팅 선생님은 선물 같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줬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반복하여 말하면서 상처 받은 어깨를 두드렸다. 그처럼 큰 사람에게는 답답한 램프 속 같았을 세상을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를. 배우의 죽음이 그렇게 슬펐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mug_obj_140785322912560883.jpg "Genie, you are free."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개봉한 지 2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오리지널 영화 <알라딘>을 다시 보지 않은지 10년이 훨씬 넘은 것 같은데, 실사를 향수에 눈물지으며 정말 행복하게 본 바람에 그 날 귀가하여 바로 다시 봤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정말 센 것이어서, 원작에 매우 충실한 실사를 보고 있자니 그렇게 안 본 지 오래된 원작 내용이 정말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었다. 예전엔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작화도 노래도 스토리 전개도 지금은 약간 색 바랬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따뜻한 지니와 지붕 위 건물 사이를 노래하며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알라딘의 소년미는 아직 감동적이다. 이상하게 가이 리치 감독인데도 의외로 알라딘 도둑질 도망 다니는 장면이 박진감 넘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의 이미지가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이국적인 노래와 풍경, 궁금증을 유발하는 화자의 말로 시작되는 오프닝도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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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의 지니는 정말 좋았다. 깨방정도 까리하게 잘 떠는 건 물론 '지니, 넌 자유야'라고 말한 뒤 자유가 된 윌 스미스의 울컥한 표정 연기를 보면서(정말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절제되었으나 뭉클한 연기였다) 윌 스미스는 너무 잘생기고 다재다능하고 힙했던 바람에 연기는 과소평가당했던 거 아닌지 필모를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윌 스미스가 예전부터 사기 캐릭터이긴 했다. 나는 <맨 인 블랙>1이 사실 2,3을 만들지 말지 생각도 없이 나왔던 것처럼 보이는 그 시절에 윌 스미스를 영화 속에서 처음 보고 약간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90년대는 흑인이 주연을 맡는 것이 대중의 눈에 약간 낯설고 눈에 익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세상에 저렇게 스웨그 넘치게 잘생긴 흑형이 있다니! 게다가 주황 바지에 흰 티 입고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은 한 마리의 블랙 팬서 같았다고!


더불어 ‘지니, 넌 자유야’라고 알라딘이 말할 때 원작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휘트먼의 시 Oh me! oh life! 를 가르쳐주던 키팅 선생님은 선물 같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줬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반복하여 말하면서 상처 받은 어깨를 두드렸다. 그처럼 큰 사람에게는 답답한 램프 속 같았을 세상을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를. 배우의 죽음이 그렇게 슬펐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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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윌 스미스와 재스민 공주의 미모, 원작 팬들의 추억 버프가 하드 캐리 하는 영화가 맞다. 이 영화가 이대로 세상에 처음 나온 단일 콘텐츠라면, 이 시대에 이 플롯이 실사영화에서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뭐 어떤가? 나는 러닝타임 내내 행복했는데.


원작보다 알라딘의 캐릭터가 조금 더 지질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원작에서는 알라딘이 갑작스러운 권력에 취한 장면은 없었다. 그냥 재스민에게 나는 알리 왕자가 아니라고 말할 타이밍을 자꾸 놓쳤을 뿐, 왕자로서의 권위를 누리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없었다. 25년 전의 알라딘이 조금 더 소년답고 순수한 이미지를 주기는 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고 찌들어서 보니 '뭐, 고작 그런 것이 소원이라고?'라는 느낌마저 조금 들었는데, 그런 내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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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이라는 설정은 여러모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누구나 램프의 지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램프의 지니를 갖게 된다면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어린 시절 간절히 바랐던 세 가지 소원과 어른이 되어 바라는 세 가지 소원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그 어떤 소원이든 딱 세 가지만 이루어줄 수 있다고 할 때 우리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마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지금의 행복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단박에 정리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나는 정말 행복해질 텐데 하는 것들. 어쩌면 심지어 소원을 빌지 않더라도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가 있다는 건 마치 소원을 이미 이룬 것 같은 든든함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아끼고 아꼈다가 간절히 바라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90년대의 디즈니는 콘텐츠와 창의성 갑부였다. 그들은 관객의 기대를 부풀렸다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 데에 천재적이었다. 90년대에 에리얼의 해피 엔딩 <인어공주>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후 디즈니는 내놓는 영화마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실패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 작품 한 작품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의 감탄을 샀다. 당시의 디즈니는 정말 꿈의 공장과도 같았다. 새로운 콘텐츠가 풍부했고 소재를 가공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얄미우리만큼 완벽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디즈니는 정말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썼다. 재패니메이션의 예술성에 한참 뒤처져 있던 미국 애니메이션은 그 시대의 역전 이후 기술력의 간극을 있는 힘껏 벌리며 어른들의 대중적 인기마저 독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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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넌 자유야."

뻔한 것 같지만, 뻔한 장면으로 관객을 뭉클하게 하는 디즈니의 따뜻함이 내가 디즈니를 사랑해왔고, 사랑하는 이유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나 추억, 타인과 끈끈하게 유대감을 느꼈던 기억, 계속 간직하고 살아갈 수 없어 어른의 무심함으로 덮어 온 내면의 순수함, 디즈니의 영화들은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환기하게 하고, 창의력과 유머로 영감을 북돋운다. <알라딘>의 플롯은 뻔하다. 25년 전에도 줄거리는 뻔했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입히고 착한 메시지와 유머러스한 연출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유효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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