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Parasite)

그런 날은, 오지 않아요

by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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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날까지 건강히 계세요.”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아버지는, 다시는 계단 위로 올라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우(최우식)가 지하벙커에 갇힌 아버지 기택(송강호)을 위해 그 집을 구매할 수 있는 날은 아마 이번 생 안에 올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숙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생충은 드물고 기우는 그중에서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기생충에 속할 테니까. 기택은 아마도 다른 숙주가 이사 오게 되면 또 그 숙주의 냉장고를 뒤지면서 숨어 지내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발각되지 않고 현상 유지나 하는 것이 최고 행운일 테고 말이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지 않는다. 종종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일상적인 불행을 목도하면서 내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서도 온다. 숙주의 행복 중 최소 1할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내 정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라는 데서 올 수도 있으니까.


가족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다음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계획 없이 지하에 사는 사람(다른 기생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발 상황에서는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라고 되풀이하여 말한다.

"아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계획을 세워 자신의 범주에서 최선을 다하고 바지런을 떨어 봐야 멀리서 보면 유리병 속에 담긴 개미의 움직임처럼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기택이 체육관 바닥에 누워 명대사를 뱉기 전부터 의아했다. 계획, 무슨 계획? 소용이 없다. 어차피 하늘 없는 집에 살며 지하의 교통수단을 타는 자들에게 큰 계획보다는 운명이나 가진 자들의 행보에 따라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더 큰 영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완벽한 계획은 기택이 언급한 대로 무계획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계획이 틀어질 일이 없을 테니까. 경멸의 눈빛을 보내며 뒤돌아서는 자의 뒤에 칼을 꽂는 무계획, 빠르게 지하 벙커로 숨어드는 무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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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드라마 보면, 부자는 못됐고 불행할 것 같죠? 아뇨, 다 행복하시던데요? 험한 일 잘 안 겪고 세상이 자기에게 친절하니 착하고요. 드라마에 묘사되는 부자들은 다 우리의 정신승리예요.”라고 농을 치셔서 웃은 적이 있다. 6,7세 된 아이 하나 즐거우라고 조악한 인디언 의상을 걸친 두 중년 남성이 근원적 기싸움을 하는 모습은 코미디다. (적어도) 앞에서는 내내 깍듯하다가 주말 근무하는 송강호의 떨떠름한 표정과 희미한 조롱에 바로 정색하며 상대의 기를 누르는 이선균의 경멸 어린 표정에서 엄청난 디테일을 느꼈다. “어차피 주말 수당 받고 일하시는 거잖아요? 그냥, 일이다~ 생각하고 하시죠? 웃으면서.”


돈을 잘 번 사람들은 돈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지만 천박해 보이지 않으려고 평소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척하거나, 아니면 돈이 없는 불편함을 자주 느끼지 못해서 실제로 아예 그 중요성을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싸움에 와서는 계급과 돈으로 사람을 누르기 때문에 결국 똑같이 천박해진다.

자본주의는 임상적으로는 가장 성공적이고(다른 체제에 비해서) 적절한 사회제도로 약속된 체제이지만 결국 제도를 만든 사람의 존엄도 돈 아래에서 결정되도록 놔둔다.


봉준호의 비유 세계는 얼핏 일차원적으로 보이지만 날것의 매력이 있다. 체제, 계급, 와닿지 않는 가상의 것들은 반지하 셋방, iptime, 벙커, 짜파구리, 필라이트, 미제 텐트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매우 구체적 사물들의 옷을 입고 미친 존재감과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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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지는 일은 시간이 인간에게 준 진화라는 선물에서 온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위험성을 줄 수 있는 사물이나 음식에서 낯선 향을 느끼고 경계하거나 도망치게 된다. 부패한 음식, 산화된 분비물, 매우 이질적이어서 우선 주의해야 할 어떤 것들에서. 숙주는 자신에게 기생하는 낯선 종(種) 기생충에게서 낯선 잠재적 위험의 향기를 맡는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것을 먹는 섭생 때문에 당연히 체액에서도 다르게 나는 이질적인 냄새.


안전지대에 사는 누군가에게 미세먼지를 걷어줄 고마운 비는, 물에 잠길세라 하수구가 역류할세라 걱정 마를 일 없는 이질적 존재들에게는 생사의 걱정거리다. 덜 마른 지하방의 퀴퀴한 냄새 분자를 뒤집어쓴 무방비 지대의 존재들이 체제를 해치고 뾰족한 불쾌감의 이빨을 드러낼 위협을 동익(이선균)은 역시 진화 본능적으로 코끝에서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찮지만 위험한 존재. 동익은 친절한 얼굴로 그들을 어르고 달래지만 철저히 선을 긋고, 선을 넘는 뒤섞임을 불쾌해한다. 자신이 그은 바운더리 안에 있는 가족들의 크고 작은 손익과 하찮은 존재들의 생사가 엮이는 결정적 순간에는 1%의 여과도 없는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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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같은 기생충끼리 계급을 나눠 군림하고 서로 싸우며 자신이 기생충인 줄 모르게 하는 최면, '나는 제법 성공했다'라는 착각이 숙주와 기생충이 공생하는 사회를 유지하게 만든다.

"오늘도 절 먹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리스펙!"

간혹 숙주를 신격화하는 것도 공생관계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기생충은 서둘러 그렇게 숭고해 보이는 숙주가 되고 싶어하고 자신은 숙주가 될 것이므로 같은 기생충을 경멸한다. 부모가 반지하에서 낳아 키우며 대학교도 보내주지 못한 기우는 간절한 그의 꿈에도 불구하고 숙주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숙주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아마 상당 부분 기생충이 열심히 세우나 마나한 계획을 세워 가며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일 것이다. 오늘도 힘차게 밥벌이하러, 기생충 냄새나는 지하철 안에 발을 들이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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