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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04. 2023

윌리암 셰익스피어 - <햄릿>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에 윤치호라는 이름을 가진 남학생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 전혀 알지 못했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는 "오~ 유명한 독립운동가랑 이름이 똑같구나! 넌 잘해야 한다."라고 늘 치호만 보면 이야기하시곤 했다.

독립운동가 윤치호가 누군진 몰랐지만, 우리 반 치호 덕분에 적어도 '윤치호'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찍 감치부터 알게 되었다.


치호는 참 잘생긴 남학생이었다. 게다가 치도 아주 큰 편이어서 늘 맨 뒷줄에 앉았던 아이였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여학생들이 치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 '많은 여학생'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었다. 숫기도 없고 누군가 앞에 서서 말을 할 때는 얼굴부터 붉히고 입도 벙긋 못하던 숙맥 시절이었던 시절이라, 내가 치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비밀로 간직한 이야기였다. (여기가 최초의 고백이다.)


내가 치호를 좋아한 데는 물론 흔한 레퍼토리인 잘생김과 키 큼도 한몫했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스토리텔링' 실력이었다.

치호는 말을 아주 잘했다. 번지르르하게 잘 한 것이 아니라, 맛깔나고 호기심을 끌만큼 이야기를 아주 잘 했다. 치호는 옛날이야기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타고나기를 발음도 또랑또랑 분명했고 이야기의 고저장단, 밀당을 탁월하게 잘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오락시간이나 자유 시간이 되면, 노래자랑을 주로 하던 다른 반과는 달리, 우리 반은 항상 치호를 맨 먼저 불렀다.


"야, 윤치호. 이야기 하나 해주라~."

그러면 치호는 "자꾸 해서 이제 할 얘기도 없는데." 하면서도 나와서는 배추도사 무도사보다 훨씬 더 재미지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든 아이들이 떠들지도 않고 귀를 쫑긋 세우고 치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 들었던 이야기도 치호가 하면 또 재미있었다. 치호의 이야기 앞에 우리는 피리 부는 아저씨를 따라가는 어린 꼬마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그 옛날 내 친구 윤치호가 생각이 났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희곡만을 두고 본다면, '이게 그렇게 재미있는 작품이고 문학사에 그리 길이 남을 작품인가?'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오히려, 문학작품보다는 그것을 극화한 영화를 볼 때 더 재미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고 <리어 왕>이 그러하며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그랬다. 소설도 씌여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극장에 연극으로 올리려고 쓴 작품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햄릿>도 희곡을 읽을 때는 - 이미 아는 스토리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 표현의 문학성을 제외하면 이렇게까지 칭송될 작품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역자(최종철)의 작품 해설을 읽어보았다.


해설에 따르면, <햄릿>은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그전에 이미 구전되어 오거나 아니면 다른 작품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소재(삭소 그라마티크스의 <<덴마크 역사>>에 실린 암렛의 이야기, 암렛이 햄릿으로 바뀌었다 한다.)를 셰익스피어가 그의 언어로 편집을 새로이 하고 대사를 찰지게 하여 그가 조금 변형한 희곡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나이 30에 이미 로드 챔벌린이라는 극단을 소유한 극단 주로, 자신의 극단에서 연극으로 올린 작품의 대본은 거의 그가 직접 썼고, 연극으로 올린 작품들이 우리가 익히 아는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유명 작품들이라고 한다.


<햄릿>도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미 그전에 떠돌던 이야기들인데, 셰익스피어가 이미 있던 그 이야기들을 다시 쓰기만 하면 그 이야기들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유명하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으며,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는 엔터테이너였다.


장삼이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셰익스피어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p94)



라며, 햄릿이 갈등하는 마음을 천상의 비유와 유려한 언어로 잘 포장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면서 혹은 희곡집을 읽으면서, 극 중 햄릿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햄릿의 입 안과 입술 끝에서 맴도는 아름다운 말을 자신의 입 밖으로 내뱉고 싶어 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 셰익스피어의 타고난 엔터테이너의 기질과 본능적인 사업가 기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러 작품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극단주였던 셰익스피어는 <햄릿>으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연극 <햄릿>이 너무 인기가 있어서 연극을 했던 배우들이 대사를 통째로 외워 출판사와 어둠의 거래를 하는 바람에 <햄릿>의 극본이 세상에 출판이 되었다. 또한 이런 이유로 <햄릿>은 여러 판본이 한때 떠돌았다고 한다.


겨우 208페이지짜리 희곡 <햄릿>을 거의 한 달 정도 붙잡고 있었다. 그동안 읽던 소설들과 흐름이 유사하지 않았고, 그 언어의 표현이 너무 문학적이고 입에 발린 말들이라, 내게 익숙하지 않아서 한 대사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했다. 그래서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그냥 스토리만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해서 어찌어찌해서 마지막 장을 덮기는 하였다.


<햄릿>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기억 창고에서 거의 꺼낸 적이 없던 어린 시절 친구 '윤치호'만 생각이 났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면에서 치호나 셰익스피어나 오십 보 백 보인 것이 아닌가 해서다. 물론 치호는 대본을 쓰지는 않았고 극단도 없었다.

치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오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햄릿>은 희곡만 읽을 것이 아니라, 연극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찾아보니, <햄릿>은 그동안 꾸준히 공연되어 오고 있었다. 단지, 내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23년 2월 26일이 마지막이었다.

분명 조만간 다른 <햄릿>이 또 무대에 올려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는 꼭 찾아가서 무대에서 살아있는 덴마크 왕자 '햄릿'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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