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함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Feb 14. 2024

모든 문과가 다 유시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유시민이 '문과 남자'이듯 나도 '영원한 문과 여자'여서 과학 비스무리한 글자나 내용만 있어도 일생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더 이상 수학과 화학과 생물을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과학 목으로 생물과 화학을 선택당하였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기 전만 해도 나는 과학 지식을 배울 의도는 없었다. 그냥 책의 저자가 '유시민'이었기에, 글을 너무 쉽고 잘 쓰는, 내가 원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이번에도 '믿고 보는 작가'여서 선택했을 뿐이다. 다른 유시민의 책에 비해서 출간일보다 상당히 늦게 읽은 편인데, 그것이 소재가 과학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유명한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일화에서부터 시작한다. 파인만은 어느 한 토론회를 갔는데 그 토론회는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같이 '평등의 윤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토론회였다. 하지만 파인만은 이 토론회에서 인문학자들의 반박만 들었고, 결국 파인만은 인문학자들을 '거만한 바보'라고 불렸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파인만이 말한 거만한 바보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유시민은 자신도 파인만이 이야기하는 '거만한 바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아는 게 별로 없다'라는 걸 인정하고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꾸준히 읽으니 이제 바보는 면한 것 같다고 했다. '운명적 문과'인 유시민은 이 정도만이라도 된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1장에서 밝혔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는 다섯 가지의 과학이 등장한다.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뇌과학이고 그다음이 생물학이다. 세 번째는 화학이며 물리학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마지막은 아주 적은 분량의 수학이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 과학자들의 과학 스토리텔링은 양자역학에서 출발해서 화학과 생물학을 거쳐 뇌과학으로 나아간단다. 그런데 이 방법은 문과에게는 일종의 '학대'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확신했다. 유시민에 따르면, '문과가 과학 책을 읽으려면 방정식이 없어야 하고 인문학과 관련이 있으면 수월하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이 뇌과학이고 분량도 제일 많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시민의 생각대로 뇌과학과 생물학은 적어도 읽는 순간만큼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요즘 뇌과학은 한창 인기여서 여기저기 유튜브 콘텐츠도 많고 TV에서도 자주 다루는 내용이라 많이 생소하지는 않았다.

생물 역시, 우리 몸을 이루는 내용이라 읽는 동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시 '영원한 문과'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글로 설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그저 글로 된 뇌과학과 생물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정도였지만, 유시민은 그것을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납득하여 나 같은 '문과'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뇌과학과 생물학뿐만이 아니다.

화학과 물리학(양자역학)과 수학도 유시민 작가는 스스로 공부하여 '문과'들에게 글로써만 설명을 해주고 있다. 글로 설명을 한다는 것은 그가 적어도 이 책에 써놓은 화학과 물리학을 거의 완벽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환갑이 넘은 아저씨가 웬만한 과학 책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자기 분야의 새로운 지식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나이 든 사람이다. 그 힘든 것을 이겨내고 유시민 작가는 초로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동받은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그 흔한 도표나 사진 한 장 없다. 유시민 작가는 가급적 텍스트로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도표나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텍스트로 설명하지 못하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이 어려운 과학들을 텍스트로만 전달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게끔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과학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비교적 쉬운 언어로 쓸려고 하였을 것인데 나는 그가 쓴 뇌과학과 생물학 일부만 이해하는 수준이다. 나머지 화학이나 물리학은 아무리 읽어도 속칭 '까만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여백'인 수준이었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해서 아무나 다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조금은 서글펐다. 과학을 이해하려는 책이 과학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고 말았다.


책을 덮고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나는 과학 상식은 '엔트로피'이다. 분명 과거 언젠가 듣고 이해했을 법한 용어인데, 지금껏 까만 게 잊고 있다가 이 책에서 다시 알게 되었다. 엔트로피 법칙. 자연은 사람은 사회는 끊임없이 무질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저엔트로피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작가는 엔트로피 법칙에서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엔트로피 때문에 우리 집도 늘 어지러운가 보다.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과학 상식이 일취월장할 리가 없다. 책은 다음 단계로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나한테는 그 몫을 충분히 다 했다.

벌써 내 다음 독서 목록에는 <이기적 유전자>와 <코스모스>가 올라왔다. 올해 안에 이 두 권을 다 읽고야 말리라.


이 책에는 유시민의 과학 공부에 도움을 주고 책에도 인용이 된 많은 과학 서적이 소개되었다. 인용된 과학 서적들은 각주에 아주 친절히 소개되어 있다. 수많은 과학 책 중에서 몇 개만 엄선하여 골라주어서 책 선택의 시간을 줄여준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겠다.

그중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아래의 책들도 목록에 메모해 두었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이언 스튜어트 지음. 사이언스 북스)

-다윈주의 좌파(피터 싱어 지음. 이음)

-엔드 오브 타임(브라이언 그린 지음. 와이즈베리)

-원더풀 사이언스(나탈리 앤지어 지음. 지호)


적어도 한 권이라도 메모로만 그치지 않고 꼭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군처럼 진주해온 안개를 물리칠 아침을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