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2대 임금 인종은 25년 간 세자로 있다가 나이 서른에 임금이 되었다. 천성이 착하고 효심이 지극했던 인종은 아버지 중종이 죽고 삼 년 상을 치르지 않았다며 입 안에 음식을 들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할 정도였다.
이토록 효심이 깊었던 인종은 비록 계모였지만 어머니 문정왕후에게 문안 인사도 자주 드리곤 했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자신이 배 아파 나은 자식인 경원대군을 임금으로 만드려고 온갖 궁리를 다 내고 있었고 임금이 된 인종을 못 괴롭혀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오죽하면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온 인종에게 이렇게 말하며 패악질을 부리곤 하였다.
"주상, 주상은 언제 우리 모자를 죽일 생각이요? 내 주상이 우리 모자를 죽일 궁리를 할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소. 우리를 죽일 거면 빨리 죽이든지.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소."
어머니의 이런 모욕에도 인종은 그저 효도를 다 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참고 견뎠고, 그저 어머니의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한다는 것에 죄의식마저 느끼고 있었다.
임금이 되고 해가 바뀌었다. 인종은 평소 열심이던 도학과 유학을 정치에 실현시키고자 힘썼다. 기묘사화에서 피해를 입은 조광조를 신원시켰다. 수많은 유학자와 사람들을 정계 진출을 돕기도 하였다. 인자한 임금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인종의 시대, 태평성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종은 왕비와 함께 어머니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대비전을 방문하였다. 오늘은 또 어떻게 화를 표출할까, 걱정이 되었다. 인종의 걱정은 야단을 들을 것이라기보다는 화를 냄으로써 어머니의 건강이 해칠까 저어하였던 걱정이었다. 인종은 그저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대비전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의 얼굴에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가 실려 있었다.
"어마마마,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습니까? 안색이 좋아 보여 소자 너무 기쁘옵니다."
"오늘만 좋은 날이겠습니까? 이 어미는 우리 주상이 이리 어미를 생각하여 주니 늘 좋은 날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자고 일어나니 몸이 더 개운한 것이 백 년 된 산삼을 달여 먹은 듯 하오."
"어마마마가 이리도 강건해 보이시니 소자는 천년 된 산삼을 먹은 것 같사옵니다. 늘 이리 평안하소서."
모자간에 이리도 화목한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중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중전은 생각했다. 대비가 또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이리도 임금을 환대하는 것일까. 반갑기는커녕 불안하기만 한 중전이었다. 임금은 중전의 이런 속내도 모르고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이어서 대비의 말을 순전히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친정에서 아주 좋은 쌀로 떡을 만들어 갖고 왔지 뭡니까. 이것을 몇 점 먹어보았는데 아주 맛이 좋습니다. 궁에서 만든 것과 견줄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너무도 좋은 쌀과 떡이 별미이기에 주상에게도 한번 권해 보고 싶어요. 자, 드셔 보세요, 주상."
문정대비는 인종에게 놋그릇에 참하게 담긴 떡을 내어 놓았다. 하얀 떡 겉면에 까슬까슬한 가루들이 묻어있었다. 콩인 듯도 하고 팥인 듯도 했다. 인종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떡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고 감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어마마마, 이리 소자를 생각하여 주시니 소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인종은 대비가 내어놓는 떡을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떡을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실제 떡 맛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 인종에게는 무지개보다 떡이 더 영롱한 것처럼 느껴졌다.
인종이 떡을 먹는 것을 지켜본 중전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것을 기미도 없이 그대로 먹어도 되는 것일까? 대비가 순순히 이렇게 우리를 환대할 이유가 없는데. 하지만 그 자리에서 중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인종과 중전은 문안을 마치고 대비전을 물러났다.
며칠이 지났다. 인종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원래도 몸이 허약한 인종이었다. 게다가 중종이 죽고 아직 상중이어서 곡기를 거의 끊다시피 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 와중에 갑자기 몸에 탈이 생겼다. 의원이 들어오고 허약한 몸을 보할 요량으로 고기를 권하기도 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래도 인종의 몸 상태는 전혀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전은 대비가 떡을 준 그 순간부터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 임금에게 무슨 탈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인데, 기어코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임금이 저리 갑자기 아픈 것이 대비가 준 떡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 중전은 혼자만 속을 끓이고 삭일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조정은 대비의 오빠들을 비롯하여 대비전의 사람들로 구석구석까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전은 인종을 대비와 멀리 떨어져 지내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인종이 빨리 쾌차할 것만 같았다. 병의 치료를 위해 경복궁 자경전에 있는 청연루로 옮기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청연루는 원래 여름을 나기가 좋은 누각으로 인종의 병에 더위라도 가시게 하면 더 좋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인종은 음력 6월 말, 청연루로 거쳐를 옮겨 치료를 받았다.
청연루로 옮기고 나서 약방제조들이 하는 말이, 상의 몸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역시 청연루로 옮기길 잘했다, 고 중전은 생각했다.
청연루로 옮기고 사흘이 지났다. 호전되는 듯했던 인종의 상태는 다시 악화되었다. 원래가 워낙 허약했던 몸이었고 효를 위해 곡기를 끊다시피 했으며, 어미니에게 효도를 위하여 스스로를 다그치고 원망하는 세월을 견뎠으니 몸이 남아날 리 만무하였다. 인종은 스스로를 너무 혹독히 다그쳤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인종은 대신들에게 동생인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전언을 남겼다. 대신들은 임금의 전언을 듣고 모두가 통곡하였다. 중전은 모질지 못한 임금이 한편으론 원망스럽기도 했다. 더 자신만을 돌보았더라면, 효도는 자신부터 돌본 후에 했더라면. 중전은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청연루로 옮기고 나흘이 되던 날, 인종은 시원한 누각 청연루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날을 본 후 눈을 감았다.
인종의 치세 불과 8개월뿐이었다. 조선에서 가장 짧은 치세였다.
성군이 될 뻔했던 인종이 죽고, 12살의 경원대군이 임금이 되었다. 그를 후에 역사는 명종이라고 하였다. 어린 명종을 대신해 그의 어머니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명종의 어머니는 인종의 어머니이기도 한 문정왕후였다. 문정왕후 섭정 시기와 명종의 시대는 문정왕후 가족과 정난정에 의한 여인천하와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던 그래서 이름 떨치는 의적도 나왔던 혼돈의 시대였다.
명종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여러 명의 종친 중에서 시험을 거쳐 중종의 아들 덕흥군,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을 후계자로 선정하였다. 하성군은 훗날 선조가 되었다. 선조는 조선을 망가뜨리는 숱한 일을 한 임금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인종이 조금만 덜 착하고 조금만 덜 효도를 했더라면. 조금만 더 건강해서 자식을 낳았더라면. 부정과 부패의 역사와 전쟁과 반란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개인이나 국가에나, 착한 것이 죄가 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