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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Sep 12. 2020

존 윌리엄스 - <스토너>


얼굴은 아는, 하지만 이름은 모르는, 도서관에서 몇 번 스치다가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진 그냥 아는 사람이 적극 추천하였다.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헌신으로 어렵게 대학을 마쳤습니다. 탁월한 수업태도와 성적으로 석박사를 취득하고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은행장 출신의 아버지를 둔 양가집 규수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어여쁜 딸도 하나 낳았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이라는 불안한 세계정세 속에서도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수많은 논문을 제출하였고 책도 몇 번 출간하였습니다. 동료 교수의 시기와 질투로 강단에 서는 것에 애로가 많았지만 끈기와 인내로 잘 극복하였습니다. 평범한 사람인지라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직을 무사히 마치고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습니다.


줄거리를 쓰고 보니 스토너씨의 삶은 통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전혀 소설 감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가난한 집 아들의 성공기 혹은 일대기 쪽이 더 가까울 수도. 그래서일까? <스토너>는 1965년 존 윌리엄스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의 삶이 가진 평범성과 일반성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토너씨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1965년 즈음 미국을 비롯한 세상의 시대상황은 용광로 속 불꽃이었고 땅 속 마그마를 곧 내뿜으려는 활화산이었다. 스토너씨는 50년 동안 책 속에 잠들어있다가 2015년 어느 날 세상과 다시 조우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씨를 만나고자 한다.



20세기에 왜 스토너씨는 사람들에게 잊혔고 21세기에는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소환되고 기억될까?


- 스토너는 대학에 입학해서 생활비와 숙식비를 버느라 알바와 공부를 병행했다. 부족한 실력에 조바심이 일었지만 공부시간은 늘 모자랐다. 그가 일하는 시간 역시 고용주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만큼 늘어갔기(p17) 때문이었다.


-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앞두고 친구들이 입대를 결정할 때 스토너는 그때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입대를 않고 남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p55)


- 친구가 많지 않았던 스토너의 대학에 로맥스라는 새로운 교수가 부임해왔다. 스토너는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은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p133)


- 영문학과 교수가 되어 강의를 시작한 스토너는 학문에서 느끼는 감정과 강의실에서 전달하는 내용 사이에 커다란 틈이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 그 틈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 때문에 너무 고민한 나머지 이제는 그 고민이 습관이 되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그의 일부가 되었다(p158)


- 교수로서 아버지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인생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스토너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고 알고 있던 것들이 머리에서 싹 비워지는 것을 느꼈으며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한 상태,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p251)


- 스토너는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열정을 주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p353)


- 세월은 흘러 스토너도 은퇴할 때가 되었다. 이른 은퇴를 권유하는 고든에게 스토너는 대답했다.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p355)


- 생의 끄트머리에서 스토너는 남들 눈에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고 사랑을 원했으며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꾸었다.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스토너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p387)



세속에서 말하는 영웅의 삶도 아닌 스토너씨.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교수님일 수도 있으며, 어제 회의실에서 크게 깨지고 저녁에 술 한잔 같이 기울인 상사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스토너씨는 오늘 회사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매 순간순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바로 나 일수도 있다.


책의 초반에는 흔하디 흔한 모습에 '이게 소설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오래동안 꺼내보지 않은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 호기심과 익숙함이 교차되었지만 어느덧 중반을 지나다 보면 호기심은 공감으로, 익숙함은 친근감으로 바뀌어 내처 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있는 나를 별견하게 된다.


스토너씨의 간단하게 요약되는 줄거리는 소설을 읽다보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는 일상에서 현재의 우리가 겪는 숱한 시련과 고뇌에 부딪히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본다. 때로는 관조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종종 그냥 견디고 아주 가끔 부딪힌다. 그러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스토너씨가 겪은 일상, 스토너씨가 품던 고민은 현재 내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던 스토너씨의 인생은 책의 후반을 달려갈수록 별 것이 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스토너씨에게 끌리는 것은 내가 별 것일 수 있다는 위로와 공감 덕분이리라.



생의 끄트머리에서 스토너씨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씨를 보내면서 나도 나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리고 무엇을 기대할 거냐?



해답을 찾으려 독서를 하지만, 독서는 끊임없이 질문만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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