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이라면 마음들여 깊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책이란, 문학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고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내 안에 지식을 모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필따위, 은행이나 미용실에서 잠깐 짬이 날 때 비치되어 있는 글모음집을 한 두번 쓰윽 훑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수필 몇 편을 공감과 동감없이 밑줄 쫙 그은 텍스트로만 대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작년 지자체에서 운영한 <글쓰기 특강>을 수강한 이후로 나는 일상적 글쓰기-수필의 매력에 빠졌다.
거창한 문학이 아니더라도 방대한 지식이 아니더라도, 장삼이사의 글도 충분히 가슴을 울릴 수 있다.
과거 다른 이의 글과 책을 보고 '이것도 책이라고!' '이런 책을 뭐하러 냈대?' '이정도는 나도 쓰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수차례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이랍시고 몇 줄씩 써보니, 이 세상 모든 글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글 한줄 문장 한 단락 한 편의 글을 써내기 위한 글쓴이의 고뇌는 그 별 것 아닌 글줄, 문단, 한 편의 열 곱접만큼이나 된다는 것을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몇 개 쩌내면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함부로 평할 것이 아니다.
고만재님의 수필 <커피를 쏟다>는 철들고 나서 내가 처음 완독한 개인 수필집이 아닐까 한다.
가까운 지인의 선물로 어쩔 수 없이(!) 한 권을 읽었다. 평소의 나라면 유명한 인사가 쓴 책이라도 수필은 내 돈주고 사지도 않을 뿐더러 완독을 잘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편을 읽을 뿐이다.
고만재님은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다 지금은 운동 강사로서 작가로서 유투버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다. 고만재 작가가 담담히 써내려간 <커피를 쏟다>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일상이고 작가의 개인적 감상이다. 하지만 소소한 개인적 일상과 감상이 그것을 읽는 다른 이에게도 소소한 공감과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만재님의 <커피를 쏟다>는 내게 이런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커피를 쏟다>는 한동안 잠들어있던 내 글쓰기 세포를 툭툭 건들리더니 다 읽은 지금 내 글쓰기 세포는 이제 분열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세포들이 개체수도 늘이고 영역도 늘이게 될지, 분열하다가 또다시 멈추게 될지는 또 해봐야 알 일. 해보기 전에는 써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니 나는 그저 또 이런 저런 부질없는 이야기를 써봐야 하겠다.
<커피를 쏟다>에는 메모해놓아야 할 화려한 문구도 없다. 문장이 유려하거나 심장을 부여잡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담백하게 깔끔하게 이웃을 관찰하고 묘사하고 생각을 책 속에 펼쳐놓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색깔이 알록달록하지는 않지만 고소하고 쫀득한 감자전같다.
책 속 34개의 에피소드 중 "사이좋음"이라는 노부부를 바라보면서 쓴 글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나도 나이를 들어가는걸까?
두 분을 떠올리며 멋진 노인이 되는 법을 정리해본다.
1.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는다 2. 계단을 이용한다 3. 미소를 잃지 않는다 4. 아랫사람을 존중한다 5.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