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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an 16. 2021

친하게 지내고는 싶지만 다가오는 건 싫습니다.

직장동료 김 00 씨에게

새로운 사무실에 나가게 된 지 3개월이 조금 넘었다. 약 30여 명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규모가 크지가 않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나는 새로이 합류했으므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친한 척을 하고 살갑게 구는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개인적 친분이 아닌 업무적 관계로 엮인 사람들과 억지로 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미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회사를 통해 만난 관계는 더 깊이 친해질 필요도 내 온 마음과 정성을 나눌 필요도 없다는 것을 터득해 버린 탓이다.


새로운 사무실에서도 나는 출퇴근할 때나,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다 만날 때에는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 외에 불필요한 사담과 언행을 자제하였다. 사회, 특히 직장에서 만난 관계란 어차피 일회성일 뿐이고 지속적으로 사귀고 만남을 이어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만난 관계란, 직장을 다닐 때에나 유효하다. 직장을 떠나면 그 이후로 연락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기에 한정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만약 직장을 떠나서도 계속 연락을 한다면 그것은 연락을 할 필요나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나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연락도 하고 해가 바뀔 때마다 덕담도 나누는 관계도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직장 친구는 많지 않다. 극소수 몇 사람들과만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얇지만 넓은 얼음장 같은 인간관계는 내가 추구하는 관계가 아니다. 나는 좁더라도 깊은 두꺼운 빙하 같은 관계가 더 좋다.


20년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회사에서 거리를 두었던 데면데면했던 내 태도 때문인지 퇴사를 하고 지금까지 소식을 전하는 동료들이 많지 않다.  이처럼 협소한 관계를 가졌던 나는 그 때문에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새로운 사무실에 김 00 씨는 내가 출근한 첫날부터 아주 친절하였다.

시외에서 출퇴근을 하는 나에게 몇 번 버스가 가장 편한지 어느 시간대가 가장 교통이 원활한지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나는 내 편리함을 배려해주는 그 모습에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

"어머, 감사해요. 어쩜 이리 친절하세요. 덕분에 편하게 다니겠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내게 그는 직장 동료들끼리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낯선 환경에 그의 친절은 고마운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는 좀 더 내게 다가왔다. 정말 고맙게도 그가 제안했다.

"모르는 것 있으면 부담 없이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릴게요."

나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며 물어볼 일이 있으면 꼭 문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이 또 지나고 그는 또 다가왔다.

"우리 xx님은 처음인데도 다 잘 아시는가 봐. 뭘 묻지를 않으시네? 지금쯤 이것저것 막 물어보고 해야 하는데! 주저 말고 오세요. 괜찮아요."

나는 '아, 네. 그럴게요.'하고 형식적인 답을 하고 말았다. 내가 의문점이 있어야 질문을 할 텐데 질문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하였다.


다음 날 직장 동료 김 00 씨는 점심을 사주겠고 했다. 다른 사람들 여럿과 동태찌개를 먹으러 갔다. 김 00 씨는 점심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대한 경험, 방법, 노하우 등을 이야기하였다. 대학 선배가 후배에게 오리엔테이션 하듯이.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점점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느 저녁에는 술을 한잔 하자고 하였다. 선배가 신입분들에게 술을 사주는 것은 당연하다며 가자고 하였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처음이니 자리를 같이 하였다. 대여섯 명이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업무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김 00 씨는 또 말했다.

"열심히 일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사적인 자리를 종종 가지면서 선배들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엑기스가 많아요. 사무실 밖에서 듣는 이야기, 친분 이런 것들이 중요해요. xx님도 저녁에 시간 되시면 자주 합석하세요."

출처: pixabay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색한 미소로 화답을 했지만 반쯤 술이 취한 김 00 씨는 내 어색한 미소의 뜻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옛 직장을 다닐 때도 업무 외적인 사석의 술자리를 선호하지 않았다. 회사일은 회사 내에서 끝내고 해결해야지, 회사 밖으로 가져가서 술자리 테이블에 안주거리로 업무와 뒷담화를 가져가는 것이  불편하였다. 그런 경험을 이 곳에서 또다시 반복될 것 같은 조짐을 보이자 괜히 따라왔다는 후회와 어떻게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지에 대한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술자리에 합류해서 그와 내가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날 이후로 김 00 씨는 내 자리 근처에 와서 자주 잡담을 시도했고 그의 개인사를 건넸으며 업무 지식을 묻기도 전에 가르쳐주기도 했다. 나는 그의 잡담으로 집중에 방해를 받았으며 원치 않는 그의 가족사를 알게 되었으며 필요했겠지만 그 순간 내게는 방해가 되었던 업무 지식을 전수받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가 거리를 좁혀오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쌍방의 인간관계란, 명확히 선을 긋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양쪽이 보내는 신호가 다르고 서로 받아들이는 시그널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은 '아'하는데 다른 쪽에선 '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한쪽에서 '흥!' 하는데 상대방은 '오~~'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단정 짓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세상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라고들 하는 것일 게다.


한국 사회에서는 친분이 있는 사이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젊은 세대들에 비해 김 00 씨처럼 나이가 있는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김 00 씨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호감의 표시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에 대해 친절함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오가는 길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하면 좋겠고, 식사는 하셨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안부를 확인하면 좋겠다. 작장에서의 친근함은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친근함은 딱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하다.

형도 아니고 언니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아니고 고향 친구도 아닌데 만난 지 두어 달만에 상대의 아이가 몇 명인지 몇 살인지 폰을 내밀어 보여주는 사진 속 아내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왜 사람들은 친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 상대의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서 다가오는 걸까? 조금만 더 상대를 존중하고 생각한다면 한발 더 다가오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접촉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처음의 좋았던 인상이 선을  넘는 다가옴으로 인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면 친분은 유지되기 어렵다. 나는 벌써부터 김 00 씨에게 그가 모르는 선을 그어버렸다. 조금 더 선을 넘어 다가온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김 00 씨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못된 여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능하면 나는 '못된 여자'는 안되고 싶다.


친절한 김 00 씨,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더 이상 다가오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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