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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Feb 04. 2021

우리 집에는 귀신이 산다?

정체모를 소음에 대하여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또 울리는 휴대폰 진동벨 소리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다녀볼까, 하고 앉아있던 의자를 잠시 뒤로 빼고 몸을 옆으로 비틀려던 순간 나는 도로 의자와 의자에 포개진 몸을 식탁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찾으러 다녀봐야 또 허탕이겠지'


이 집으로 이사온지 6개월쯤 되었다. 지은 20년이 다된, 요즘 유행한다는 베란다 없는 타워형 아파트가 아니라 베란다도 있고 남북으로 창을 열면 맞바람도 치는 옛 구조의 아파트이다. 지금은 망한 건설사에서 지은 집이라해도 구조는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요즘의 타워형 아파트보다 쓸모가 있게 빠졌다고 생각했다. 구조가 꽤 잘 빠져 보이던 집은 그러나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주거를 하고 보니 여기저기 허점이 보였다.

바깥 베란다의 샷시도 어긋나 있어 겨울철 칼바람이 베란다로 그대로 치고 들어왔다. 거실에 면해있는 샷시를 꼭 잠가두지 않으면 40여 년 전에 지은 고향집 외벽을 통해 들어오는 외풍처럼 싸늘한 바람이 창을 통해 거실에 들어왔다. 웬만하면 지역난방 보일러가 대세이건만 지은지 오래된 이 집은 가스보일러. 각 방을 위해서 존재하는 가스밸브에는 닳아서인지 원래 표기를 깜빡해서인지 어느 밸브가 어느 방을 위한 것인지 표시가 없어서 지난달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버텨내기 위해 밸브를 다 열어두고 몇 주간을 생활했을 뿐인데, 살면서 가장 많은 금액의 가스 계기판의 숫자가 검침되었다. 그렇지만 다 참을 수 있다. 어차피 2년 간만 살 전셋집. 경기 남부 수도권에서 이만한 평수에 이만한 가격으로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두어 달이 지나지 그럭저럭 새로운 동네와 새 집에 적응이 되었다. 어느 구석 어느 귀퉁이에 뭐가 있는지 그새 다 파악도 하였고 여러 세입자들이 거쳐갔음이 확실한 새 집도 어떻게 사용해야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익숙하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고 진화의 산물인 것을 나는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었다.


에어컨이 없어서 늘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던 여름이 가고 서늘한 바람이 구식의 얇은 창과 벌어진 창틈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올 즈음 나는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사 온 동네에 벌써 친구를 만들었을 리 만무한 나는 거의 집 안에서 지냈다. 방송이든 문자든 '이불 밖은 위험하다'라고 연일 울려대는 경고 때문이기도 했지만 딱히 만날 사람도 나가서 볼 일도 없는 신세였다. 덕분에 나는 TV 다시 보기, 예능 몰아보기를 하면서 한껏 떨어졌던 나의 현대적 트렌드 감각을 예능과 드라마로 재생시키고 있었다. 이 얼마나 내가 그토록 소망하던  한량스런 행복한 삶이냔 말이다!, 라며 소파에 늘어진 나는 쿠션을 끌어안으며 나무늘보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이 소리는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해질 무렵이었다. 내가 처음 집 안에서 지이잉거리는 휴대폰 진동벨 소리를 들은 것은. 집에는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집에 있을 때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지 않는다. 휴대폰을 어디 놓아뒀는지 자꾸 깜빡하기 때문에 쉽게 찾기 위해서 반드시 소리 모드로 변경을 해놓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지이잉거리는 누군가의 휴대폰 진동소리는 내 폰의 소리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갤럭시 S8 모델의 내 휴대폰을 손에 들고 확인했다. 당연히, 내 폰의 진동소리가 아니었다! 내 폰은 진동 모드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아무도 내게 전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전화가 올까  망부석이 되기 전 바다건너 멀리 왜로 떠나간 남편이 돌아올까 먼바다를 바라보던 박제상의 아내처럼 나는 휴대폰을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는 내 폰에 진동이 울리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진동 소리는 도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이지?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온 집을 헤매고 다녔다. 온 집을 헤매고 다녔다고 하니 우리 집이 펜트 하우스나 스카이캐슬인 줄 안다면 큰 오산이다. 성냥갑 안에 선 같은 벽을 세운 흔해빠진 낡은 아파트 이곳저곳을 다녀봐야 5분이면 탐험은 끝난다. 아무리 뒤져봐도 누가 흘리고 간 휴대폰이라고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진동이 좀 심하다 싶은 거실 한 곳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소리가 멈췄다. 나는 무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도 못할 정도의 며칠이 지났다. 해가 빨리 지기 시작했다.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밖은 어두워졌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이놈의 진동 소리는 누가 꼭 진동이 울리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듯이 크게 들린다. 마치 유리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 같고 개그맨 정종철의 휴대폰 진동 소리 모사를 바로 앞에서 직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나 가깝게 들리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누구의 폰인 거지? 나는 그날따라 조바심이 났다. 꼭 찾고야 말리아. 누구의 폰인지, 아니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집에서 내가 내는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 그리고 진동 소리에 집중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대여섯 번만 울리고 그치던 다른 날과 달리 그날은 제법 길게 진동이 울렸다. 나는 소리를 따라갔다. 이번에 부엌 쪽인 것 같다. 아무튼 이 요상한 진동 소리는 거실과 부엌 근처에서 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동안 여러 번의 진동 소음에서 소리를 따라다녔지만 안방과 작은 방은 아니었다. 안방과 작은 방에 들어가면 진동의 가늘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확인된 것이니 진동소리의 발원지는 적어도 거실과 부엌이다.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어차피 전세, 어차피 1년 6개월만 있으면 또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라 최소한의 가구만으로 피난민처럼 생활을 하고 있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라야 냉장고와 책장뿐이다. 나는 책장에 몸을 붙이고 귀를 붙여 진동을 느끼려 했다. 아, 나는 소머즈여야 했다. 공기 중에 울리는 진동은 있건만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한낮에 진동이 울렸다. 밤에 울리는 진동보다 낮에 울리는 진동에 더 안심이 되었다. 낮과 해가 주는 묘한 안도감이 있나 보다. 어차피 혼자 있는 집인데 내가 느끼는 이 안도감이 뭘까? 나는 누군가 휴대폰을 든 사람이 벽을 타고 우리 집을 훔쳐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도둑촬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화장실부터 살펴야지. 도둑촬영이 된다면 가장 위험한 곳은 화장실이 아닌가. 내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화장실도 아니었다. 소리는 역시나 거실과 부엌의 어느메쯤이었다. 냉장고에 귀를 가만히 대어 보았다. 공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진동이 냉장고 몸체와 가까이할수록 덜 느껴졌다. 나는 소리에 집중하면 할수록 소리를 잃어버렸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처럼 벽 어디엔가 휴대폰이 묻혀있을까? 이사 간 전 세입자 누군가 휴대폰을 두고 갔나?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여태껏 배터리가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휴대폰 진동이 시작될 때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머언 옛날, 주먹도끼로 짐승을 잡고 뗀석기로 채소를 자르던 그 시절 정체모를 자연현상에도 선조들은 두려움에 떨며 토템을 숭배하고 샤먼을 가까이했다더니 지금 나야말로 빗살무늬토기에 음식을 데워먹는 석기시대인이나 다름없었다.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나는 이제 지쳤다. 소리의 진원을 쫓는 것도 신경을 곧추 세우는 것도 무서운 상상을 하는 것도. 차라리 차승원 주연의 영화 <귀신이 산다>처럼 우리 집 어디엔가 길 잃은 착한 귀신이 살면서 장난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도둑촬영보다 검은 고양이보다는 맘이 훨씬 편했다.

 지이이이잉~~~~~지이이잉~~~~지이잉~~~지잉~~지ㅇ~

이 소리는 다행히 적당히 울리다 멈출 줄을 안다. 방금 울렸던 소리가 이제 잦아들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다만, 혼자 있는 까만 겨울밤에는 가끔 오싹하기도 한다. 오늘 같은 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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