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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02. 2024

10년 차 히키코모리의 서울 나들이

동굴 속 이야기 하나

광역버스에서 내리고 당황했다. 친숙했던 사당역은 너무도 생소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긴장하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핸드폰을 쳐다보는 척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긴장하지 않은 사람은 느긋하게 행동한다는 걸 떠올리고 느릿느릿 걷는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모두들 바쁘게 걸어서 스쳐 내려간다. 나도 걸어야 할까 순간 고민하지만 지금 걸으면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가만히 서 있는 게 정답이다.


지하상가로 내려가자마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가게가 보인다. 가격표 1000원에 빵을 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낯선 점원과 대화하는 상황을 떠올리자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두렵고 무섭다. 무력함에 답답하고 화가 난다. 외출엔 성공했지만 빵을 사는 간단한 일조차 여전히 나에겐 높은 장벽이란 생각에 슬픔이 밀려온다. 하지만, 발을 멈출 순 없다. 이상해 보이면 안 되니까, 약속이 있는 날이니까, 어쨌든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순간순간 체험하면서 몇 년 만의 서울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10년 경력의 히키코모리이자 우울증 환자다.




난 속칭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다. 때때로 환청을 듣고 자살을 고민하던 우울증 환자이기도 하다. 누구도 처음부터 히키코모리로 태어나질 않는다. 누구도 본인이나 가족이 히키코모리가 될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하진 못했을 테다. 하지만 되어버리고 만다. 나도, 우리 부모님도 내가 히키코모리가 될 줄은 몰랐다. 


난 괜찮아 보였다. 가족도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을 망각이란 이름의 쓰레기통에 던져두고 잊고자 했던 것뿐이다. 안정된 시간이 지나고 현실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 임계치를 넘어서자 잊고자 했던 것들이 물밀듯 밀려오고 순식간에 부정적인 감정들에 잠식되었다. 의미 없는 일을 위해 그 멀리까지도 출근해야 하는 걸까? 약간의 돈을 번다고 인생이 달라지나? 10년 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미 인생은 끝난 건데.. 그런 생각이 들자 밖에 나가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졌다. 즉시 퇴사했다.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자 스스로에 대한 실망,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분노, 가족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돌이킬 수 없다는 후회, 미래에 대한 절망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내 삶과 인생이 하찮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난 어느 날 되어있었다. 히키코모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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