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29. 2024
작별, 카푸치노 그리고 시절인연
황톳길에서 나뒹구는 기분은 최고였다
오늘은 산책 종점지던 카페의 영업종료일이다.
작별의식 오후엔 손님이 많을 것 같아 일찍 왔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늘로 이곳으로 산책 오던 일상과는 작별이다. 작별의 시간은 평범했던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일깨워준다.
1층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작별의식을 치렀다. 아. 좋은 시간들이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가 생각난다. 난 이곳에서 평안을 얻었다. 사장님과 가족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카푸치노다. 입술에 닿는 촉감이 떠돌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밀크폼의 단단한 긴장감도 좋아하지만 편안한 공간에선 역시나 부드러운 밀크폼이다.
카푸치노 한모금
카페로 걸어오는 중에 미끄러운 흙길을 걸으며 중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네 집 앞은 젖은 황톳길이었다. 처음 친구집에 놀러 갔던 날, 버스에서 내려 미끄덩거리는 길을 조심스레 걸었지만 결국 미끄러지고 넘어져 전신을 흙탕물에 담그고 말았다.
흙범벅인 상태로 '나 왔어!'라고 친구를 불러냈고 친구 녀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뒤 우린 둘 다 황톳길에서 뒹굴며 낄낄댔고 친구 어머님은 등짝에 스매시를 날리셨다. 철없던 시절이다. 어찌어찌해서 대학생 때 이후로 어찌 지내는지 모른다.
시절인연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 했었나? 그 친구도 그 추억도, 내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도 이 카페도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내일부턴 시절인연이다.
그래도 함께 했던 시간이 퇴색되진 않을 것 같다. 아. 작별입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