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이야기 열넷
전환점은 수술과 입원생활이었다. 퇴원한 뒤 히키코모리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난 극복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퇴원했다. 마음은 밝아졌고 몸에 쌓아둔 질병들도 입원기간에 대부분 치료했다. 2회 차 인생은 기쁜 맘으로 살아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퇴원하자마자 이발소에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집에서 가위로 대충 잘라내던 곱슬머리의 모습은 사라졌다. 새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질병들은 단기에 완치되지 않는다. 당뇨병으로 수술자리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렸다. 퇴원한 뒤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상처를 소독하고 수술 자리를 확인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새로운 마음으로 빨리 밖에 나가고 싶어서 서둘러 퇴원했던 것을 후회했다.
의사 선생님이 회복을 위해서는 걸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집에서 조금씩 움직이다가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 일과를 시작했다. 천천히 편의점을 다녀오면 10분이 지나있었다. 곧 자그마한 트랙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동트기 직전의 푸른빛은 언제나 상쾌했고 '새로 시작할 수 있어'란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운동시간을 새벽에서 오전으로 바꿨다. 병원을 계속 오가면서 퇴원할 당시의 안정적인 심리상태가 유지되는 듯했다. 여전히 출근시간대는 껄끄러워서 피했지만 이전에 비해 수치심과 두려움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오전 운동을 끝내면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마음에 평화가 스며들었다.
오전 운동이 편해지면서 카페에 가보고 싶어졌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견딜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견딜 수 있다면 매일 카페에 들러 가만히 앉아서 익숙해지고 마음을 단련하자는 생각을 했다. 책 한 권을 들고 투썸플레이스를 갔다. 메뉴가 너무 많다. 오랜만에 찾아간 카페에서 주문하고 결재하는 일은 너무도 어색했다. 주문하면서 주고받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우유를 주문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느껴졌다. 전동벨을 받고 창가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는 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네'.
전동벨이 울리자 어디서 음료를 받아야 하는지 당황해서 두리번거렸고 허둥지둥 우유를 받아왔다. 자리에 앉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휴.. 성공이네. 힘들었다'.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아냈다. 기쁜 마음에 인증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보냈다. 전화가 왔다. 훈련 삼아서 카페에 1시간씩 앉았다 갈 생각이라고 말씀드리자 기뻐하셨다. 카페에 가만히 앉는 일상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차 편해졌다. 책도 필요 없어졌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입원했을 때 비만인데 알부민 수치가 너무 낮아서 의사 선생님이 당황하셨다. 그래서 입원했을 때 단백질을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건강한 식단을 지속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추모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추모 공원은 산을 깎아 만든 묘지라서 체력이 좋을 때만 갔었는데 어느새 공원묘지를 걸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고 있었다. 공원묘지를 떠도는 흰둥이는 오랜만인데도 반갑게 맞아줬다. 그리고 여전히 나 보다 앞서서 길을 안내했다. 흰둥이가 나를 산책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고 간병을 했다. 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에 걸리면서 다이어트와 운동,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카페에서 멍하니 단련하던 일상은 무너졌다.
다시 익숙한 방구석 생활을 시작해 버렸다. 그래도 예전과는 모든 게 달라졌다. 난 두 걸음 전진했고 한 걸음 후퇴했다.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