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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28. 2024

전환 : 회복의 시작(2/2)

동굴 속 이야기 열셋

가족이 죽음의 갈림길에 있거나 직장에서 동료가 죽는 일도 있었다. 대학병원 암센터를 드나들면서 죽음의 우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나 죽음을 가깝게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주무시면 할머니는 긴장하셨고 웅얼거리기라도 하면 한숨을 쉬면서 '숨 넘어간 줄 알았네'라며 간병 아주머님과 한바탕 웃으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광경은 반복되었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죽음의 모호한 경계로 입원실의 모두를 데려갔다. 할아버지의 고요한 모습은 인생의 종착점에 대해 생각해 보라며 매일 나를 재촉해 댔다.




할아버지가 입원실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보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내 입원생활의 평범한 일부가 되었다. 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까? 내가 원하는 인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서서히 평안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 걷다가 쓰러져서 쓸쓸하게 죽어도 '잘 살았네'란 생각이 든다면 그 또한 만족스러운 죽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평온한 죽음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죽음, 지쳐서 포기하는 죽음,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수술 후유증으로 곧 죽을 수도 있다. 어쨌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마등이 스쳐가는 순간 만족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하게 햇볕을 쬐고 있노라산책을 다니던 공원묘지 광경이 떠올랐다.

오전의 공원묘지는 고요하다. 나를 반겨주는건 묘지를 떠도는 흰둥이와 수많은 새들 뿐이다.


죽음을 기리는 여러 모습들이 기억났고 누군가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 보았다. 살면서 쌓아온 많은 것들이 무의미했다. 죽음을 기리는 모습도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세상에 유물과 유산을 남기고자 했던 꿈도 발버둥도 어쩌면 영원히 살 수 없는 미련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픈 욕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매일 얕은 생각을 반복할수록 타인은 나와 정말 무관하다는 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죽음의 형태를 하나씩 선명하게 떠올릴수록 '그렇다면, 난 어떻게 살아갈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난 어느샌가 자책과 수치심 대신 '앞으로'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보고 나를 봤다. 조금 주변을 둘러봤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삶이 내 맘대로 될 거란 자신감은 오만이구나, 어떻게 살건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 생명이 있는 동안 매일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겠다, 기분 좋게 살자, 모르는 것들을 더 공부하고 배우면 즐겁겠다, 민폐 끼치지 말고 살자, 대단한 업적을 쌓지 못해도 일생동안 마음의 여유로 주변의 작은 불운이나 불행을 걸러주는 정도면 만족할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하고 열심히 무리하면서 살았고 학생 때 이루고 싶었던 조그마한 꿈도 이루었고, 지금까지 잘도 살아남았는데, 넘어져서 10년을 주저앉아 있었다고 인생 전체를 비하하고 포기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울증 히키코모리 10년이란 시간은 필요했던 일이 아닐까? 끝난 인생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중년 권태기가 일찍 찾아왔던 걸지도.. 히키코모리 10년이 나에게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내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긍정했고, 히키코모리의 10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아.. 인생 2회차시작이다


그렇게 입원하고 한 달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1주일 사이에 임종하실 거란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계속 생명을 이어가셨다. 곧 요양병원으로 가신다고 했다. 


할머님께 작별을 고했다.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셨다. 난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내고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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