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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27. 2024

전환 : 회복의 시작(1/2)

동굴 속 이야기 열둘

눈을 떴다. 수술 회복실의 밝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란 말을 들었다. 잠시 , 수술실 문이 열리고 침대는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옆으로 마스크를 쓰신 부모님이 다가오셨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신 어머니는 왜 혼자 수술실에 들어갔냐며 나무라셨다. 수술시간이 길어져 5-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몸 잘 챙기고 아픈 곳 있거나 필요한 것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는 말을 듣고 난 입원실로 이동되었다.


이번 수술도 길었다. 난 수술이 매번 오래 걸린다. 수술이 힘든 몸이다. 수술 중에 허무하게 끝났을 수도 있던 거 아닌가? 인생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는 거네. 그러고 보니 죽을 위기가 꽤 여러 번 있었지. 잘도 살아남았네.




새벽에 호출버튼을 눌러 차가운 물을 부탁했다. 4일 만에 제대로 마시는 물이다. 식도를 따라 흐르는 시원함과 갈증이 사그라드는 쾌감을 느꼈다. 고작 물 한잔으로도 이렇게나 감동할 수 있고 행복감에 젖을 수도 있나? 지금을 잊지 말자. 사진을 찍었다.

물 한 모금으로 감동할 수 있었다




침대를 조금 세울 정도가 되면서 입원실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앞엔 9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간병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래를 자주 뱉으셨고 죽음을 앞두고 계셨다. 코로나 기간이고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받고 계셨지만 임종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 수 없어서 할머니는 입원실에서 할아버지 옆을 지키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치매도 있으셨어쩌다가 할머니를 알아보고 가래 낀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씀하시면 할머니는 눈물을 짓곤 하셨다.


할머니는 병원 오래 계셨던 듯했다. 다른 입원실의 간병인 아주머님들이 곧잘 찾아오시곤 했고, 살갑게 얘기를 나누시면서 시름을 잊고 웃음을 짓곤 했다. 자식보다 다는 할머님의 한숨 섞인 넋두리는 간병인 아주머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고 한탄이기도 했다. 이젠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셨고 자식도 잘 키워내셨지만 말년에 자식관계는 순탄치 않았던 듯했다.




할머니는 개복 부위가 너무도 커서 몸을 잘 못 가누는 나를 곧잘 도와주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간병을 도와주시는 조무사분들이 계시는데도 식사시간에 아파서 꾸물대는 날 이리저리 살펴주셨다. 손주 보살피는 느낌이셨을까...


입원실에서 난 마음이 편했다. 환자라는 정당한 신분이 있던 것도 있고, 입원실에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대가 없는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매일 창가 침대에서 햇볕을 쬐면서 제때 제대로 된 밥을 먹고 간호사/간병인과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입원의 나날을 보내면서 과거와 자책의 그림자는 옅어졌고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다른 것이란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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