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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22. 2024

그들은 왜 방문을 닫았을까?

동굴 속 이야기 열하나

나는 가족이 아니다

히키코모리와 가족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갈등소재는 아마도 '닫힌 방문'이 아닐까? 방문을 닫는 히키코모리의 생각과 감정상태를 전하고자 한다. 




다음은 히키코모리 집에선 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발췌 : SBS 스페셜, 은둔형 외톨이가 된 청년들, 그들은 왜 방문을 닫았을까?). 가족은 히키코모리와 대화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울증 히키코모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방문을 열지 않는 이유 같은 건 몇 년이 지나도 알 수가 없다. 그럼 가족 간의 단절기간은 늘어질 뿐이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이 심했을 느꼈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적어본다.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그대로다. 부끄럽고 못난 감정이지만 알아두면 히키코모리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히키코모리의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옳다는 게 아니다. 히키코모리의 사고를 파악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아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정도로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상황 1) 아빠의 생일 파티. 히키코모리는 방문을 닫는다.

난 가족이 아니다

Q. 방문은 왜 열려있을까?

A. 본인이 원해서 열어둔 게 아니다. 부모님들 요청에 의해서다. 부모님들은 히키코모리가 방문을 열어두길 원한다. 틈틈이 뭐하는지 살펴보고 듣기 위해서다. 서로 용건도 없는데 왜 방문을 열어둬야 하는 걸까?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거북하다.


Q. 깨어있는데 왜 불은 꺼두고 있었을까?

A. 가족에게 히키코모리는 수치다. 히키코모리는 죄인이다. 무슨 행동을 하던지 정당성이 없다. 문이 열린 상황에선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된다. 무슨 행동도 할 수가 없다. 내가 하는 행동이 가족들을 거슬리게 할 것이다. 무엇을 먹건, 게임을 하건,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장 적합한 행동은 불을 끄고 나를 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불을 덮고 책망의 시도나 소통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으면 내 불안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뒤에 기다리면 된다. 모두가 잠드는 밤까지 말이다. 잠들면 내가 좋아하는 행동 뭐든 해도 된다.


Q. 방문은 왜 닫는 걸까? 

A. 가족이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책망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태껏 수없이 나무라는 말들을 들어왔다. 난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방문을 열어두고 오가는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은 피곤하다. 바깥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 역시 불편하고 피곤하다. 나 없이 즐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짜증 나고 화가 난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뭐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 짜증 나는 감정을 치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행동을 하고 싶다. 다른 행동을 하려면 방문을 닫고 잠가야 한다.


Q. 밖에서 즐기는 가족의 소리가 들리면 무슨 생각을 할까?

A. 방문밖에서 가족들은 매번 그랬던 것처럼 나 없이도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왜 계속 문을 연 채로 들어줘야 하는 걸까? 난 관계없는 인간이다. 난 가족이 아니다. 방문을 닫자.


상황 2) 불이 꺼진 히키코모리의 방. 어머니는 들어가서 불을 켜둔다.

모두가 잘 때 까지 난 죽은 인간이다

Q. 생일파티가 끝나고 모두 들어갔다. 잠은 안 자는데 왜 불은 꺼두고 있었을까?

A. 나를 볼 수 없게, 나와 소통할 수 없게 불을 끈다. 모두가 잠드는 밤까지 기다렸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생각이다. 그런데 밖에서 어머니가 달그락 거리고 있다. 어머니가 방에 들어가서 주무실 때까지 불을 끄고 기다릴 생각이다.


Q.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데 어머니는 왜 불을 켜는 걸까?

A. 방상태를 확인하고 싶다. 히키코모리 자식이 뭐하는지 보고 싶다.


상황 3) 사람을 마주치는 건 두렵지 않다. 밖에 나가지 않는 건 편해서다.

사람을 마주치는건 두렵지 않다. 가족이 불편할 뿐이다.

Q. 사람을 마주치는 게 불편한가?

A. 괜찮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방문 밖의 가족들이 불편하고 눈치 보일 따름이다.


Q. 밖을 나가지 않는데 편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A.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을 벗어던지고 가족의 잘못, 타인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이 무기력한 상황이 달콤하기도 하고 조금은 편하다.


방문을 열어두라고 할 때 히키코모리가 느끼는 것들을 요약해 보자

열어두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감시에 대한 눈치도 보인다(자냐? 게임해? 누워있냐? 뭐 해? 누워 있지 말고 공부라도 하라고! 한숨)

틈틈이 감시하면서 하는 짓에 태클을 거는 듯한 상황에 화가 난다

내가 하는 행동엔 정당성이 없다. 바깥의 동태를 살피는데 온통 신경이 곤두선다

자기들끼리 즐기는 걸 들으라는 걸까? 어쩌라는 걸까? 약 올리는 걸까?

불을 끄고 이불을 덮고, 모두가 잠드는 시간까지 기다려야겠군


방문을 닫은 뒤 히키코모리가 느끼는 것들을 요약해 보자

감정적인 충돌이 없으니까 편하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할 수 있다

당신들의 세상은 당신들끼리 즐기길!

나는 나대로 편안히 있고 싶다

나는 교류를 원하지 않는다. 당신들도 감정적인 책망 외에는 교류를 원하지 않으니 이대로 좋다

닫힌 방이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책임을 벗어던지고 무기력한 상황을 즐기는 것도 나름 편하다


이걸로 '닫힌 방문'에 대한 히키코모리의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었을까? 과격한 자책과 피해망상증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이 중증 우울증 히키코모리들의 사고방식이니 어쩔 수 없다.

뇌가 부정적으로 돌아가는 거라서 어쩔 수 없다




히키코모리는 바깥 외출을 회피하거나, 방문을 닫고 가족과 단절한다. 이 둘은 독립적인 문제다. 3번 상황을 보면 타인을 마주치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가족이 불편해서 방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나도 초반엔 이와 같은 경험을 했었다. 


히키코모리가 다른 환경으로 떠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가족이 불편해서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다. 따라서 히키코모리가 다른 환경으로 떠나려는 시도를 할 때는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고 허락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히키코모리 치유를 위한 시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론으로 문을 열어두는 게 좋은지 닫아두는 게 좋은지는 딱히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상담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문을 닫아두는 게 서로가 충돌할 일이 없어서 편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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