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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May 15. 2024

끝 : 아르바이트를 했다 (2/3)

동굴 속 이야기 스물하나

10년 만에 일을 했다. 홀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에 기쁨이 넘쳤다.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기억해내지 못했고 떠올리지를 못했다. 끝 : 아르바이트를 했다 (1/3)을 쓰면서도 아르바이트 가는 날 얼마나 두려워하고 떨었는지를 깜빡 잊고 있었다. 세상에...




아르바이트 담당자의 전화를 받은 뒤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몸이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짓으로 타인의 적나라한 감정이 나에게로 향하면 어떻게 하지? 난 그 날것의 감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이번에 실패하면 난 한동안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전화를 받은 그 순간부터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중독자 마냥 계속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온전한 내 결심이기에 손을 내밀 곳이 없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했다.


그렇게나 큰 두려움이 기쁨으로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졌었다.


누군가가 '마음속의 진창은 다른 감정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의 참 뜻을 알겠다.




5월 10일. 공장에 1시간 일찍 출근했다.


두리번거리며 사무실을 찾아 들어가 인사를 하고 출근부에 사인을 했다. 물 마시는 곳,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왼쪽에 굳게 닫힌 셔터에서 물건을 조립해서 생산하는 것 같다. 깨끗해서 오늘 하루 일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의 황량함을 사랑한다


단, 40-50분이라도 어디선가 쪽잠을 자고 싶었지만 몸이 떨리고 긴장해서 불가능했다. 그렇게 1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자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분을 발견했다. 직원분의 호출로 둘이 장갑과 마스크를 받고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작업을 준비 중인 알바 경력자분들 두 분이 있었다. 그렇게 오늘의 공장 알바는 4명이서 시작하게 되었다.




조립하고 쌓고 박스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다. 공장에서 생산, 포장, 출고하는 마지막 라인이다 보니 물건들이 무거웠다.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것도 수십 개를 운반하다 보니 허리가 뻐근해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은 운반할 때마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알바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더듬더듬 조립도 했다. 실수를 바로 잡아주셨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쉬는 시간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힘들다. 잠이 쏟아질까 걱정했었는데 바짝 긴장해서 잠이 오진 않았다. 오히려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불안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오늘 하루 버텨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점심이 되었다. 밥이 나오는 공장이 아니다. 잠시라도 더 쉬고 싶어서 바깥 식당에 다녀오는 건 포기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 넷이 비치된 사발면을 먹고 믹스커피를 마셨다.

당뇨를 따질 겨를이 없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먹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휴학생, 코로나로 사업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서 일을 나오신 분 등의 사정을 듣고, 여기 공장의 업무 강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에 대한 정보도 들었다. 도움이 되는 얘기들도 많이 들었고 인생이 마냥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는 교훈도 얻었다.


오후에 일을 시작했다. 퇴근 시간을 1시간 남겨두고 잠깐 현기증이 났다. 위험하다. 아차 싶어서 잠시 양해를 구하고 믹스커피 2잔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일을 마쳤다. 출근부에 사인하고 퇴근했다.




퇴근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다.

열심히 용기를 내면서 살게요


오래오래 통화했다. 엄마는 기침에 콜록이시면서 이제 걱정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만감이 교차해서 울고 계시는 것을 목소리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불효자식은 아니다. 조금 일찍 용기를 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집에 도착해서 한 시름 놓자 허리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 사둔 간식이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눈치챘다. 오늘 하루 많이도 긴장했었다.

저혈당에 먹으려고 사뒀는데..




집에 도착해서 씻고 누웠다. 히키코모리 10년을 돌아보았다. 10년 전 히키코모리가 되기 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다시 지금의 인생을 선택할 있을까?


많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번 더 히키코모리 인생을 선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꽤 심각한 상태였다. 방탕했다. 탐욕과 교만에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생활을 몇 년 더 지속했다면 난 이상한 사고를 당하거나, 한탕 범죄를 저지르거나, 급사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이다


더 이상해지기 전에,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 전에 히키코모리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아르바이트 담당자에게 월요일에 출근하겠다고 연락하고 잠이 들었다.




- 오전에 공장에 출근하면서 카톡으로 전 직장 동료에게 오늘 일용직 공장 알바로 나간다는 소식을 알렸다. 축하를 받았다. 아마 1년 전이라면 말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을 것 같다. 회사이름과 직업, 연봉이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안다. 나 변했구나. 난 지금의 내가 부끄럽지 않다.


- 한 번에 회복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동안 버리고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버리질 못하고 놓지 못했었다. 한번, 또 한 번, 다시 한번, 비워낼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던 게 다행이다. 버리고 비워낼 때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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