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아이들이라고 다 순수한 것은 아니다

by 히키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베란다에 들어오던 따스한 햇빛만은 또렷하다. 한겨울의 차가운 햇빛도 아니었고, 한여름처럼 따갑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온도의 햇빛이었다. 그 안에서 빨래는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고, 공기에는 햇빛에 데워진 빨래 냄새가 은은하게 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냄새였다.


나는 거실의 햇빛 한가운데서 두 팔을 들고 벌을 서고 있었다.

엄마는 바로 앞에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마른 빨래를 개고 있었다.

엄마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를 향해 있는 공기는 묘하게 고요하고 긴장되어 있었다.


내가 벌을 서고 있었던 건 쌍둥이 동생과 장난감 쟁탈전을 벌이다가 결국 동생이 울면서 우리 집 최종 보스인 엄마에게 달려갔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혼이 났다. 반성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나에게 이 벌을 안겨준 동생을 원망의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동생은 어느 정도 울음을 멈춘 뒤 나를 힐끔 보다가 다시 엄마 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 작은 움직임이 나를 더 자극했다.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빼앗아야 속이 시원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울든 상관없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의감이 넘치거나 순진한 건 아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순진하다고 믿는 것 같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 믿음을 철저히 이용하는 쪽에 가까웠다.



쌍둥이 동생은 자연스럽게 내가 제일 먼저 시험해 보는 대상이었다.

남의 것을 뺏는 게 더 재미있었고, 동생을 울리는 것조차 나에게는 하나의 놀이였다.


두 팔을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은 저려온다. 서서히 팔이 뜨거워지고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조용히 타들어가는 느낌이 올라왔다.

무거워진 팔은 천천히 내려가고 싶어 했고, 나는 억지로 버티며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따스한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이 고통은 온전히 나 혼자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벌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 엄마.. 팔 아파요...제가 잘못했어요.."


울음이 살짝 섞인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엄마는 한숨을 쉬고 내 팔을 내려 주었다.


" 다음부턴 그러지 마. 동생이랑도 싸우지 말고 "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작전이 먹혔구나.


그때의 나는 반성 대신 계산을 택했다.

울음은 도구였다. 조금만 불쌍한 척 하면 벌은 금방 끝났고 상황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세상은 단순했고, 나는 그 단순함을 믿고 있었다.


중요한 건 울음소리와 타이밍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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