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들어온 단골손님

유난히 피곤한 하루

by 히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유리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퇴근 직전에 손님이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사이에, 방금까지 따뜻하던 실내로 바깥의 찬바람이 훅 밀려 들어왔다.

1월의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스치자 몸 여기저기에 닭살이 돋았다.


마감청소를 하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설마 주문인가? 싶어 불안했다.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자주 우리 가게에 들러 피자를 사 가는 외국인 단골손님이었다.

나는 자동으로 입꼬리를 올려 밝은 미소를 꺼냈지만, 속으로는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 몸은 태엽 풀린 목각인형처럼 그대로 굳어버린 채 손님을 향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왜 하필 이 시간에?” 라는 생각이 먼저 튀어나왔다.

단골손님이 반갑긴 했지만, 이 시간에 오는 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라스트 오더 시간이 5분 지난 때였다.


정확히 5초 정도 망설였다.

가게 매출을 생각해서 그냥 주문을 받을까? 아니면 그냥 마감 시간이라 주문이 어렵다고 할까?

머릿속에서 오늘의 매출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장사가 잘 되지 않은 날이었다.

게다가 이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온 소중한 단골손님을 차마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입장을 바꿔서, 좋아하는 피자를 먹고 싶어서 1월의 추위를 뚫고 찾아갔는데

“이미 마감했어요. 죄송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든 절망할 것이다.


가게 매출도 요즘 점점 떨어지던 터라, 결국 주문을 받기로 했다.

나참.. 사장도 아닌 내가 가게 매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닦던 손을 멈추고 손님의 피자를 만들기 위해 장갑을 다시 꼈다.

웃고는 있었지만, 이건 분명한 억지 웃음이었다.

손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메뉴를 고르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올라오는 짜증을 삼켰다.

인위적으로 올린 입꼬리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괜히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치며 속으로는 ‘빨리 골라라, 빨리 골라라, 빨리 골라라.’

마치 주문을 외우는 사람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조금만 버티면 퇴근인데’ 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게 진짜일 리가 없다고,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해. 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현실이었다.


“치즈 피자 라지 사이즈요.”


손님이 어눌한 한국말로 주문했다.

이 근처엔 외국인이 많아 가게에도 외국 손님이 자주 오는데, 한국어가 아예 안 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에 비하면 이 사람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한국어를 못했다면 얼마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영어를 동원해 겨우 소통하거나(아마 결국엔 휴대폰을 꺼내들어 번역기를 켤 것이다.)

번역기를 붙잡고 진땀을 흘리며 주문을 받아야 했을 테니까.


마감이 끝나가던 매장에 포스기 소리가 울렸다.

피곤이 다시 어깨 위로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겨우 만드는 데 5분도 안 걸리는 치즈 피자 하나 때문에 내 퇴근이 늦어진다니.

5분밖에 안 걸리는데 왜 그렇게 짜증을 내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오븐도, 도우 만드는 테이블도 먼지 한 톨 없게 다 닦아놨다.

그런데 저 마지막 손님의 치즈 피자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다시 청소를 해야 했다.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문득 최근 관심이 생긴 스토아 철학이 떠올랐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짜증을 내는 건 결국 나만 소모시키는 일이다.

나는 이미 주문을 받았고, 이 사실은 바꿀 수 없다.


몸을 날려 최대한 빨리 피자를 만들었다.

반짝반짝하게 닦아두었던 도우 테이블에 밀가루가 흩뿌려졌다.

3분 만에 피자를 만들어 오븐에 넣었다.

치즈 피자쯤이야. 나에겐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메뉴였다.


다시 가게 마감을 하고 결국 15분 늦게 퇴근하고야 말았다.

역시 밤 12시 퇴근은 몸에 너무 가혹했다.

집 가는 길은 낮의 번잡함과는 정반대였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닥에 붙여 놓았다.

피자가게 옆의 술집에서는 감미로운 발라드가 흘러나와 내 귀에 스며들었다.

묘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한숨을 크게 한 번 내뱉었다. 1월의 추위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딸랑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로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고독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꽤 빨리 무너질 것이다.


장시간 서서 일한 탓에 발끝은 자꾸 바닥에 끌렸고, 종아리는 묵직하게 땡겼다.

헬스장에서 스쿼트하고 다음 날 꼭 이랬던 것 같은데... 지옥같던 그 순간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지쳐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끌어가며 천천히 걸어갔다.

5분 거리의 가까운 집이 오늘따라 더 멀게 느껴졌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자 도어락이 해제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며칠 전 시켰던 택배가 와 있었지만, 그걸 확인할 기운조차 없었다.

설마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겠어? 에라 모르겠다.


택배를 그대로 바닥에 내버려두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머리로 문을 밀고 들어가 신발을 대충 현관에 던져두고 냅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바닥이 차가웠다.


밀가루 범벅에 피자 냄새까지 밴 유니폼을 입고 침대에 눕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딱딱한 바닥에 얼굴을 맡겼다.

바닥에 대고 있는 왼쪽 뺨에 찬 바닥의 냉기가 천천히 올라왔다.

턱뼈가 아팠다.


일어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 과정도 나에게는 노동이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자주 생각한다.


인간을 대신 씻겨주는 로봇은 없나?


설령 있다고 해도 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비싸겠지?

지금보다 몇십 년이 흐른 먼 미래에서는 그런 로봇이 실제로 상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젠장, 너무 일찍 태어나버렸다.


모든 게 귀찮다. 지금은 그냥 딱딱한 바닥이라도 좋으니 누워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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