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느린 사람의 고백
첫째는 아빠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아빠도 늘 말 대신 등을 보였다. 아빠를 닮아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동그란 코, 짙은 쌍커풀, 말투도 닮았다. 그리고 결국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점까지 닮아버렸다.
감정표현을 안 하는 이유라면 굳이 말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탓도 분명히 있다.
입 안까지 올라온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서 턱 막혀버린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그 순간만 되면 나는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멈춰 버린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넌 속을 모르겠어."
"사람이 단순해."
"감정이 없는 것 같아."
"너무 무뚝뚝해."
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여기라면 말할 수 있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다.
남들보다 감정이 풍부하고 생각도 많은 사람이다.
나는 생각과 감정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까지 받는 사람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며칠을 곱씹고, 지나간 장면을 다시 불러와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수십 번 흔들린다.
단순해 보이지만 지나치게 복잡해서 머릿속은 늘 시끄럽고, 그래서 오히려 생각하는 것을 차단하고 침묵하게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미안, 방금 못 들었어" 라며 대화를 흘려보내고, "아무 생각 없어" 라며 감정을 숨기고 대화를 끝내버린다.
사실 다 듣고 있었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은 탓도 없잖아 있다.
나는 대충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가볍게 툭 던져놓고 뒤돌아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입술 앞까지 와 있던 말들을 내가 다시 붙잡고 집어넣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느새 무뚝뚝한 사람이 되고, 단순한 사람이 되고, 결국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이건 확실하다. 표현이 느려도 거짓말은 안 한다.
괜히 쉽게 말하지 않을 뿐, 한 번 말하면 그건 진짜 솔직한 내 마음이다.
마음이 좀 늦게 도착할 뿐이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말 한마디 꺼내기 전에 오래 고민한다.
나는 요즘도 연습한다.
말이 너무 늦게 나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조금 서툴러도, 조금 어색해도 괜찮으니까 그때 느낀 마음 그대로 전할 수 있기를.
머릿속에서는 늘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나를 가로막고, 입은 그 생각에 순순히 굳게 닫혀 버린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언젠가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말이 조금 느려도, 마음이 늦게 도착해도, 그게 결국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아봐 줄 사람.
내가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속 시끄럽게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조용히 읽어줄 수 있는 사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오늘도 천천히 살아간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