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덜 힘들었으면 해서 한 선택에 대하여
나는 가끔 일부러 내가 손해 보는 선택을 한다.
누군가 덜 힘들었으면 해서. 며칠 전에도 그랬다.
며칠 전, 일하는 곳의 사장님이 전화로 말했다.
"00이(같이 일하는 언니)한테 10시 반에 퇴근하라고 전해줘"
하지만 나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해 집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10시에 퇴근하래요" 라고 전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웃으며 일찍 퇴근했고, 나는 혼자 일을 마무리했다.
별일 아닌 하루였다. 다만 내가 조금 더 남아 일을 마무리했을 뿐이다.
어느 날, 나는 요즘 자주 가는 카페에 갔다.
최근 새로 생긴 곳으로, 젊은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다. 조명의 온도는 책 읽기에 적당히 따뜻하고, 선곡도 잔잔해 귀를 방해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꺼내고 있노라면, 잘 구워진 빵의 고소한 버터향과 커피향이 공기에 스며들어 공간을 채운다.
그날 내가 들고 온 책은 철학 입문서였다. 딱히 철학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구입한 책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다. 갓 나온 커피와 함께 한 페이지씩 넘기며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 질문이 나를 멈추게 햇다.
'좋다는 건 무슨 뜻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를 묻는 건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더 애매하게 느껴졌다.
생각이 깊어지던 중, 며칠 전에 있엇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한 선택.
그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조금 어이없는 질문 같기도 했다. 답은 단순했으니까.
거짓말을 해야 그 사람이 쉴 수 있었다. 나는 그 언니를 30분 더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선택한 '좋음' 이었다.
그럼 이 선택을 앞으로도 계속 '좋다'고 부를 수 있을까?
피해보는 사람은 없다. 나는 조금 더 일했고. 그 사람은 조금 더 쉬었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편하면, 나도 괜찮았다.
그렇다면 '좋다'는 건 꼭 설명될 필요가 있는 걸까?
누군가의 하루를 덜 힘들게 만드는 선택이라면, 그거로 충분한 건 아닐까.
카페 안은 여전히 따뜻했고, 커피는 천천히 시간과 함께 식어갔다.
책이 던진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멀리까지 나를 데려갔다.
'좋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 조금 더 편해졌다면 그날의 선택은 나에게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