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할수록 망가지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 사람만은 따뜻했으면 했다

by 히키

나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사랑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자주.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티가 나고, 사랑은 끝내 숨길 수 없기 마련이다. 내가 딱 그랬다.


SNS에서 우연히 그 사람의 프로필을 마주칠 때면, 세상이 잠깐 멈춘다.

아니, 세상이 아니라 나만 멈춘다.


이 사랑은 아프다.

일방적이고, 그녀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

첫인상에서 가장 먼저 내게 닿은 건 목소리였다. 듣기 좋게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 나는 목소리에 다정함이 배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녀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같이 일을 하며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다.


'빠져들었다'는 말은 과장 같지만 사실 사랑은 늘 그렇게 시작한다. 마음이 먼저 결정하고,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자각한 건 꽤 오래전이다. 1년도 더 지난 일.

지금처럼 친해지기 전, 그녀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 준 적이 있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눈 대화는 내게 너무 달콤했고, 집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은 점점 커져갔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 내가 이 언니를 좋아하는구나.

마음은 늘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순수한 사랑이란

"그 사람을 통해 행복해지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한 번씩 망설이게 된다. 내가 정말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럴듯한 말로 내 마음을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런데 동시에, 그 행복 속에 나도 함께였으면 좋겠다.

웃긴 건 그것이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욕심을 미워하지는 못한다는 거다. 누구나 사랑 앞에서는 조금씩 이기적이니까.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이 순수하다는 건 아마도 완벽하게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치더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겠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면서 자주 무너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무너짐 덕분에 내가 아직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가끔은 우울하게 다가온다.


내가 조금 망가질지라도, 그녀가 내 기억 속에서 다정한 사람으로 남아줬으면 한다. 그것만은 끝까지 지키고 싶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지금쯤 일하고 있겠지. 저녁은 먹었을까?


나는 책갈피를 꽂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금빵 세 개를 포장했다. 그녀가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예전에 소금빵을 사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그걸로 골랐다.

사장님은 식어 있던 빵을 친절히 오븐에 데워주셨다. 작은 온기가 종이봉투 안에서 천천히 번졌다.


나는 한 손에는 마시던 커피를, 한 손에는 그녀에게 줄 빵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1월 초의 바람은 내 코와 귀의 감각을 앗아갈 정도로 차갑고 공격적이었다.

나는 그 바람을 헤치며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사장님과 그녀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쉬는 날에 웬일이냐는 눈빛.


"카페 사장님이 주셨는데 어차피 저는 집 가서 밥 먹을 거라... 언니 드세요."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카페 사장님이 주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단골이고 사장님과 꽤 친하다.)

나는 빵을 내려놓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 길은 짧았는데도 이상하게 숨이 찼다. 물론 집에 가서 밥은 먹지 않았다. 나는 원래 밥 먹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굶더라도 그 사람은 굶지 않았으면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하고 쓰리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일상 속에서 문득 날 떠올릴 때면, 그저 다정함과 따뜻함만을 느꼈으면 한다. 물론 그녀에게 나는 그저 같이 일하는 친한 동생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밖에 없어서 이걸로라도 그녀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

그녀가 밥을 먹었을까 걱정하며 빵을 사다 주거나, 그녀가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거짓말을 보태 집에 보내고 남은 일을 혼자 마무리한다거나.

사소하고, 티도 나지 않는 것들. 가끔은 초라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늘 그런 모양이었다.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오늘도 기꺼이 조금씩 무너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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