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간 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뒷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 건너편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은 입김을 하얗게 내뿜었다.누군가는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렸고, 누군가는 목도리를 코끝까지 끌어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을 마치 스크린 속 장면 보듯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렸다.
손가락 끝으로 4층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눌리는 순간 작게 ‘딸깍’ 하는 소리가 났고, 숫자 4가 붉게 점등했다. 엘리베이터는 잠깐의 정적 뒤에 몸을 들어 올렸다. 바닥이 미세하게 떨리고 귀가 먹먹해졌다.
유리 너머의 사람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금세 시야 아래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나를 4층까지 데려다 주었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오늘은 의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뒤죽박죽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문 옆 버튼을 누르자 ‘딸깍’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병원 안의 적정한 습도와 따뜻한 온기가 바깥으로 스며 나왔다.
“안녕하세요~”
한 걸음 들어서자 데스크의 실장님이 밝은 톤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대기석에 털썩 앉았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며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렸다.
병원에는 은은한 커피향이 감돌았다. 데스크 안쪽에서 다른 직원이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정확히 두 번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철제 손잡이의 서늘함이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반쯤 숙여 인사한 뒤 의자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스치며 작게 끼익 소리를 냈다.
“이번 주는 좀 어땠나요?”
의사가 물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머릿속에 정리해 둔 것들을 담담히 늘어놓았다.
“기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잔잔했어요. 약 덕분인지 크게 기복은 없었지만 잠드는 건 똑같이 힘들어요. 더 강한 수면제로 바꿔주셨지만 그대로예요.”
지금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우울이 아닌 불면이었다. 한 시간 넘게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어도, 5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건 나를 몹시 괴롭게 했다.
의사는 한 손으로 턱을 쓸어만지며 모니터에 무언가를 적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또렷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사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매일 같은 밤이 반복됐을 뿐이었다.
질문은 끊기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대답하려 노력했고, 질문과 답이 30분 동안 이어졌다.
저번 주에 다시 했던 뇌파검사 결과를 의사와 함께 들여다보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ADHD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뇌파 속 내 머릿속은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눈으로 확인하자 더 선명해졌다. 내 머리가 늘 쉬지 못한다는 걸 화면은 너무 간단하게 증명해 보였다.
의사는 내 뇌기능이 저하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가끔 현실을 잊어버린다. 모든 게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이름과 나이, 내가 사는 곳을 하나씩 떠올리며 나를 다시 찾아야 했다.
나는 그 증상을 의사에게 말했다.
“이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나요?”
의사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시간을 뒤적였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돼서였다. 그래서 그냥 내가 좀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생각이 많고, 의미 없는 것까지 자꾸 곱씹는 사람.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순간적으로 낯설어지는 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여기가 정말 ‘지금’이 맞는지. 세상이 종이처럼 얇아지는 느낌.
소리가 조금 늦게 들리고, 몸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멀쩡히 서 있는데도 정신은 멀리 떠 있는 것처럼.
해리증상이었다. 의사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오래 쌓이면 이렇게 현실감이 흐려지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이상하게 비어갔다. 설명이 끝나갈수록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괜찮았던 때가 언제였지?
그 질문이 머릿속에 박히자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고일 것 같아 숨을 조용히 삼켰다.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잠깐 잊어버렸다. 의사는 내 우울이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되어 우울한 상태가 기본이 됐다고 했다. 내가 괜찮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전부 우울한 상태였던 거다.
나는 우울이 없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게 돼버렸다.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약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약 봉투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떨림이 1월의 매섭고 차가운 바람 탓이 아님은 분명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수면제를 다른 걸로 바꿨어요. 예전보다는 깊게 잠드실 수 있을 거예요.”
왼손에 쥐고 있는 약 봉투는 두툼했다.
저번 주보다 더 많아진 알약들이 내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걸 증명하듯 묵직하게 눌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