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생긴 굳은살

나는 우울해질 때면 기타를 친다

by 히키

요즘 기타를 열심히 치고 있다. 퇴근 후 가게에 남아 새벽까지 연습하다가 집에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찍 출근해 문을 열기 전까지 기타를 잡고 있기도 한다. 문을 닫은 뒤의 가게는 낮과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된다. 배달 주문 알림도 울리지 않고, 오븐 돌아가는 소리도 멈춘다. 불을 몇 개만 남겨두면 매장은 생각보다 넓어 보이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발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때부터 그곳은 피자가게가 아니라 나만의 연습실이 되는 것이다.


아르페지오라는 연주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줄을 하나씩 뜯어 소리를 이어 붙이는 방식인데, 생각보다 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특히 왼손은 더 아프다. 줄을 누르는 손가락 끝이 계속 눌리고 긁히면서 처음 며칠은 컵을 잡을 때도 따끔거렸다. 피자를 토핑할 땐 더 심했다.


어느 날 손가락 끝이 단단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살이 두꺼워지고 감각이 둔해졌다.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전과 같은 종류의 통증은 아니었다. 반복해서 눌린 자리만 천천히 굳어 있었다.


2주에 한 번 만나는 정신과 선생님이 물었다.

"요즘 뭐 하면서 지내요? 저번주는 어땠나요?"


글을 쓰기도 하고, 책 읽는 시간이 늘었으며 기타를 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주 좋은 변화라고 좋아하셨다. 예전과는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하루가 전부 견디기 어려운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우울해지려고 하면 기타를 치러 간다. 정확히는 우울해질 시간이 오기 전에 기타를 잡는다. 감정이 밀려오기 전에 손을 먼저 움직인다. 생각은 멈추지 않지만, 적어도 한 곡을 끝낼 때까지는 다른 데로 가지 못한다. 퇴근 후 아무도 없는 피자가게에 혼자 남아 난로 옆에 앉아 연습을 하고 있노라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불 꺼진 매장, 밖은 새벽이고 안에는 나 혼자뿐인데, 내가 무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틀리지 않으려고 집중하다가 한 곡을 겨우 끝냈을 때, 나도 모르게 작게 말했다.

" 와.. 드디어 됐다! "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숨을 고르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잠깐 멈춘다. 피자가게가 내 연습실이 되고, 때로는 내 무대가 된다.


최근에는 ADHD약이 추가되면서 책을 읽는 데 집중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에는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한참 붙잡거나 책을 덮던 날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시간 이상 읽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책을 읽으면 엑셀에 후기를 적어두는 편이다. 날짜와 제목, 그리고 몇 줄의 감상을 남긴다. 누가 보지도 않을 파일인데, 한 줄씩 기록이 늘어날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는 증거가 남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책을 글자만 대충 읽은 게 아니라 생각하며 읽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어떤 날은 기타를 치고, 어떤 날은 책을 읽고, 남은 생각들은 글로 적는다. 특별해진 건 없는데 하루의 모양이 조금 또렷해졌다. 막연하게 버티던 시간이 요즘은 즐거움에 가까워졌다. 기타를 치고 집에 돌아오면 게임을 켠다.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오늘도 수고했다며 위로를 건네기도, 받기도 한다. 이상하게 서로 얼굴도 모르는데 대화는 더 가볍다. 온라인에서도 좋은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라는 걸 요즘에야 알게 됐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된다. 약을 먹고 누우면 금방 잠이 온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은 아니지만, 충분히 괜찮았던 하루였다고 느끼면서 잠든다. 가끔은 일을 하지 않고 기타만 띵가띵가 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버티고 있으니까.


손끝의 굳은 살을 만져보면 감각은 둔해졌지만 대신 덜 아프다. 내 마음도 비슷한 종류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가끔 생각한다. 갑자기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고, 반복해서 눌리다가 어느 순간 이전만큼 상처 나지 않고 단단해진 상태.

굳은살이 생긴 뒤로, 조금 덜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기타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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