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범을 규범답게 Nov 15. 2019

[책리뷰]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장하준」



책리뷰.

지금 우리를 위하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 김희정 역 / 부키 / 2014.07.17


장하준은 누구인가?


한국의 대표적인 비주류 경제학자이다. 경제사와 사회정치학적 요소들을 경제 상황의 진화에 있어 주된 요인으로 보는 경제학 이론인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을 구체화하여,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한국경제와 세계 경제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3년에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에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왜 생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한 나라가 감자칩을 생산하느냐 마이크로칩을 생산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1980년대 미국의 경쟁력에 관한 논쟁 중에 나온 이 말에는 경제 활동의 방식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빠져 있다. 한 나라가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느냐만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 그 나라의 생산 능력이 발전하는 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제조업이야말로 지난 2세기 동안 새로운 기술과 조직능력을 만들어 낸 주된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사회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산업화 후 사회에서도 이른바 새로운 경제의 동력이라고 여겨지는 서비스 산업은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의 뒷받침 없이는 융성할 수 없다. 




연구개발비는 부자 나라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지표이다.


세계 전체의 투자율은 20~22퍼센트 정도이다. 그러나 나라 간에 격차는 크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비율이 45퍼센트라는 엄청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일본의 투자율은 35퍼센트 이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기적'의 성장을 계속하는 동안 중국의 투자율은 국내총생산의 30퍼센트 이상이었고, 지난 10년간은 40퍼센트 이상으로 올라갔다. 

투자율이 높은 게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소비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미래에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생활수준을 희생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과한 투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가 ‘과한’ 수준인지는 현재의 소득과 미래의 소득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말이다. 




금융은 너무도 중요하다. 바로 그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자본주의는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금융 시스템을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개혁을 생각할 때 한 가지 분명한 원칙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금융 시스템을 더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 시스템은 너무 복잡해져서 누구도 제어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하는 규제 기관은 물론. 너무나 얽히고설킨 금융 상품이 확산되는 것을 제한해 단순화해야 한다. 특히 상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 상품의 폐해보다 혜택이 더 많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금융 시스템을 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해서 금융이 경제의 중요한 부분임을 부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금융이 갖는 위력과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거나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고작해야 말을 타고 달리는 게 가장 빨랐던 시대에는 교통 신호도, ABS 브레이크도,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없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고, 규제 등을 통해 사용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강력하고 빠르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잘못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가 금융에도 적용되지 않고서는 자동차 충돌사고, 뺑소니 사고, 심지어 고속도로 다중 추동 사고에 해당하는 금융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 시장 정책


자유 시장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천박한 본능 같은 것에 지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거나 금융계의 보너스 액수를 제한하려는 정치인들을 가리켜 ‘질투심의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또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 하향 평준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불평등은 사람마다 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형상이다. 부자들이 부유한 것은 부를 창출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결과를 거스르려 하면 모두가 다 같이 빈곤 속에 사는 평등을 만들 뿐이라고 그들은 경고한다. 2012년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가 불평등을 우려하는 것에 대해 한 발언은 이런 태도를 아주 잘 요약한다. “내 생각엔… 그냥 질투심 때문인 것 같아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유 시장 옹호자들은 국민 소득의 큰 부분을 최고 소득자들에게 몰아주는 것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이익이라는 논리를 널리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밀물이 들면 모든 배가 같이 떠오른다.”라는 경구는 자유 시장 옹호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슬로건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적 오류는 …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고, 한쪽이 파이를 더 가지면 다른 쪽에 돌아갈 파이의 크기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추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지난 30년간 다수의 정부가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믿고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효과를 진정으로 믿지 않더라도 이를 핑계로 정책을 정당화한 정부도 있었다. 그 결과 생산, 노동, 금융 시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부자가 돈 벌기 더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이 삭감되어 벌어들인 돈을 쥐고 있기도 더 쉬워졌다. 

하지만 불평등이 너무 심하면 경제에 좋지 않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 통합을 방해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해 왔다. 사회적 이동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가난한 계층들이 고급 직종에서 배제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개인적, 사회적 양쪽의 시각에서 모두 재능의 낭비를 초래한다. 이는 또 현재 고급 직종을 차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적 이동성이 높았다면 그 자리를 차지할 만큼 재능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장애물이 몇 세대 동안 유지되면 사회적 배경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은 고급 직종에 도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결국 엘리트 계층 안에서 문화적, 지적 근친 교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데 신선한 아이디어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가 필수적이라고 하면, ‘근친 교배적’ 엘리트 계층이  지배하는 사회는 혁신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경제는 역동성을 잃게 된다. 




나름 쉬고 간략하게 경제학 기본 지식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하였다. 읽고 이해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지만, 책 한 권에 너무 많은 정보와 스토리를 압축되어 있다 보니, 2번은 읽어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2번 읽었다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를 읽고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지식'보다 '지식에 대한 태도'인 거 같다.

1. 전문가란 새로운 것을 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 : 경제학자들에게 ‘사용’ 당하지 않는 법.

경제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에게 기꺼이 도전하는 자세가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 손으로 뽑지 않은 전문가 집단에게 우리 사회를 맡겨 두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경제학을 배워 전문 경제학자들에게 도전해야만 한다.

2. 다른 쪽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라 : 겸손과 열린 마음의 중요성.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견해를 가져야 하고, 그 견해가 강하면 좋다. 그러나 강한 견해를 갖는 것과 자신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자신의 견해를 과도하게 확신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쳤다. 

3. 지적으로는 비관주의의지로는 낙관주의 :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충분히 열심히, 충분히 오래 노력하면 큰 변화도 이룰 수 있다. 


2019년 11월 1일 완독.


작가의 이전글 [책리뷰]짐 로저스「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