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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Apr 10. 2019

돈 안 되는 생각과 사회적기업

기업의 정의와 공공의 가치를 대한 질문


돈 안 되는 생각


그런 사람들이 꼭 있다. 돈 안 되는 일을 인생에서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돈은 다른 데서 벌더라도 돈 안 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 꼭 한 명씩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으로 유명한 마이크 센델이 쓴 재밌는 책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책을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흥미로운 사례들로 밝혀낸다. 요약하자면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의 영역에 있는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오히려 돈으로 사려 할수록 가치가 떨어진단 이야기다. 도덕 시간에도 배운 내용임에도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돈'의 힘에 사로잡혀 등한시했던 것들이 하나 둘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돈 안 되는 생각들은 이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과 맞닿아 있단 생각과 함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센델, 안기순 역, 와이즈 베리, 2013


돈 중요하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중요하다. 돈 안 되는 생각과 행동은 돈으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지탱한다.




돈 안 되는 생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이 와중에 '돈 안 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애매한 조직이 있다. 사회적기업이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명시된 사회적기업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 사회적기업 개념


앞에 정의도 쉽게 이해할 수 없거니와, 사회적기업의 영역이 영리와 비영리의 중간 형태란 것이 그럴듯하면서도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전통적 기업의 정의가 과연 확실한 건지 의문이 든다. 내가 더 공감하는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의 기업(조직) 정의를 보자.


어떤 조직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며, 또한 스스로 목적이 되지도 못한다. 모든 조직은 사회의 한 기관이고 또한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기업(free enterprise)은 사업을 잘하는 것만으로 그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자유기업은 오직 사회에 유익한 존재임이 증명되었을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업은 근로자와 경영자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혹은 주주에게 배당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고객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완치되기를 소망하는 환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심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조직은 지역 사회의 한 부분이다.

-피터 드러커, 『미래경영』, 34쪽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상충하지 않는다. 경제적 가치가 창출되면, 더불어 사회적 가치도 창출된다. 그 반대도 성립될 것이다. 기업은 재화와 용역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만든다. 어찌 보면 모든 기업이 '사회적기업'인 셈이다. 물론 개중에는 법과 도덕을 지키는 착한 기업이 있고,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나쁜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효용의 구매자가 취약계층이라서, 또는 그것을 생산하는 이들이 취약계층이라서 사회적기업이라 정의하는 것은 엄밀하지 않다. 실은 모든 기업들이 그런 요소를 갖고 있으나 정도의 차이만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의 정의는 오히려 비영리단체의 수익활동이 더 적절하다. 비영리단체의 정관과 목적은 확실하게 이 사업의 목적이 비영리적 가치, 사회적 목적에 우선하여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왜 굳이 사회적기업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사려는 정부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사회적기업'의 의미는 정부지원 가능 기업에 가깝다. 정부가 만들어 낸, 정부의 재원으로 돌아가는 시장을 '공공시장'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공공구매의 영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일반기업이 소화하던 많은 일들을 사회적기업이 실행하게끔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위탁형 사업을 주로 하는 사회적기업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정부지원금으로 고용을 하고 정부사업이 가장 큰 수익창출원으로 사실상 관변단체라 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시장은 원청인 '정부', 하청인 '업체'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한다. 그리고 더 문제는 위탁사업의 목적과 성과 그리고 실행 단계까지 세세한 부분이 원청인 정부에 의해서 결정되고 하달된다는 점이다. 민관의 상생 사례도 있겠지만 정부가 추구하려는 공공의 가치는 오히려 애매한 시장 요소가 끼어들면서 유명무실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역의 문화와 콘텐츠 개발에 중점을 두어야 할 지역축제가 누가 더 낮은 단가를 내놓는가에 달린 가격경쟁이 되고,  콘텐츠 개발은 도외시된 채 일회성  쳐내 바빠진. 공공사업 집행자들은 이런 사업들이 어쩔 수 없이 '효율'을 근거로 집행다고 다. 공공의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효율을 앞에 두는 모순이 벌어지는 셈이다.




돈이 돈이 아니지만 돈인 것


그리하여 돈 안 되는 생각으로 어찌 돈을 벌 것인가란 질문을 다시 묻게 된다. 질문을 바꾸어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 얻다. '돈으로 사고픈, 돈 안 되는 어떤 것'은 뭐냐는 물음이다.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나의 시간을 윤택하게 해 줄 '문화콘텐츠', 다른 하나는 나를 표현하고, 나의 생각이 외부로 발현하게끔 하는 '후원'.


책이란 콘텐츠는 의식주와는 관계없는 인생의 가치를 상징한다. 물론 출판 시장에도 시장논리는 작동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공성을 논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의제를 이해하고 싶어서, 마음에 들었던 소설책을 사기 위해서, 돈을 사용한다.


누군가 "작가는 구걸하는 사람"이라 했다. 구걸, 즉 후원. 공공의 영역에서 돈이 돈이 아닌 가치로 작동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이 것이다. 우리는 후원으로써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다. 자신이 원하는 변화에 필요한 행동을 누군나 대리해주기를 기대하며 돈을 내놓는다.  그때 돈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치'를 의미한다.


'돈이 돈만이 아닌 가치'를 제대로 대변하려면, '돈이 아니지만 돈인 것'을 건네는 이의 과감한 신뢰와 후원이 필요하다. 정부도, 개인도.





글.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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