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드디어 상경했다.
일주일 간 서울에 살면서 대구와 자연스레 비교하게 됐다. 지역과 대도시의 차이, 그 감상들을 정리해봤다.
전체로 인식하기 vs. 점으로 인식하기
'서울'이라기보다 실은 '대도시'라 가지는 공간적 특성이 있다. 대도시 서울은 한 공간에도 다양한 레이어가 중첩되어 공존한다. 지역의 공간 구성이 단선적이고 평면적이라면, 서울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다. 단선적인 공간감각으로서 해석되지 않는 많은 요소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서울의 첫 감상은 '이해불가, 소화불량'이었다.
5년 전쯤 서울에 와 짧게 여행하면서 '서울 너무, 달다'라고 일기에 쓴 기억이 난다. 서울에는 가게가 너무 많다. 모든 사거리에 파리바게트나 이디야커피가 있는 것 같다. 이 정도의 밀도는 지역에서 전혀 상상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밀도를 감당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느끼는 '이쯤에서 좀 한적할 때가 되었는데' 하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지역은 공간의 구성이 질서 정연하고 평화롭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대구에는 시내라고 모두가 부르는 '동성로'가 상위 도심으로 맨 꼭대기에 위치한다. 그다음 '범어', '상인', '시지', '두류', '칠곡'등의 부도심들이 자리한다. 이 질서에 반하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상당한 외부 유입을 상정하지 않은 이상 필연적으로 다른 공간과의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과 놀러 갈 수 있는 놀이공원, 한복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랜드마크라 부를만한 특색 있는 곳은 하나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은 늘 이런 공간들이 복수로 존재한다. 그만큼 공간의 스케일이 크고 경쟁도 늘 존재한다. 도시 전체의 질서가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이러한 서울의 공간 구성은 도시를 '한눈에'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서울은 그 자체를 전체적인 조망이 아니라 어떤 세밀한 '점'에서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Katya Austin, Unslpash
제너럴리스트 vs. 스페셜리스트
대도시 서울과 지역 간의 공간적 차이는 서울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 전략에도 차이를 만든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를 요구받는다면, 지역에 사는 사람은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예를 들어 인구 백 명이 사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모든 필요한 상품은 '대구마트'에서 모두 취급한다. 대구 마트는 식자재뿐 아니라 수리에 필요한 공구, 잡동사니들도 같이 판매한다. 그러나 대구마트는 일 년에 한두 번 있을 주문 때문에 선단을 새로 만든다거나, 가게를 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지역의 행동전략도 그렇다.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하려면 간헐적이지만 작은 수요도 가끔 쳐낼 수 있는 소화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시장이 적은 만큼 가게의 숫자도 적기 때문에 그렇다.
백명 마을에 아파트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마을의 인구가 갑자기 1,000명으로 늘어났다. 인구 천명의 마을에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구마트가 좀 멀어서 힘들었던 사람들은 새로 생긴 대전마트나 부산마트를 이용하게 됐다. 그리고 상인들은 '가까운 마트' 전략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의 가게들이 이미 경쟁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 Will myers, Unsplash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특성화, 차별화 전략이다. 대구마트와 대전마트 사이에는 식자재만 별도로 파는 전주야채상도 들어섰다. 전주야채상은 마트에만 공급되는 식자재의 가짓수가 너무 적고 신선하지 않다는 고객들의 요구를 읽은 것이다. "전주 야채상 채소는 정말 싱싱해." "가까운 대구마트보다도 거기가 500원은 싸더라구, 양도 많고." 이 마을에 시장을 다 빨아들일 대형E마트가 들어서지 않는 이상, 기존에 존재하던 대구마트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은 '틈새'를 읽는 방법뿐이다. 시장에 따른 이런 전략적 차이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크고, 더 다양한, 그런 삶
이런 식의 분석은 더 크고 고도화된 시장이 있는 서울이 지역보다는 여러모로 더 나은 거 아니냐란 결론으로 귀결된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 물건과 서비스를 구하는 데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크고 세분화된 서울은 단연 매력적이다. 더구나 우리 세대는 공간의 차이를 뛰어넘은 정보통신의 영향으로, 거주 지역 관계없이 개인의 취향은 더욱더 세밀해지고 있다. 지역의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런 수요들은 대도시 서울로 흡수되고 있는 형편이다.
ⓒAndrew Seaman, Unsplash
그러나 소비가 아닌 '생산'을 고민한다면 대도시가 과연 나은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생산에는 원재료, 기술, 부지, 지가 등이 다양한 요소가 있다. 이 중에서 '트렌드'와 '인력'을 제외하고는 시장과 가까울 이유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맹점은 지역에서의 생산 역시, 서울이라는 대도시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거대한 성장이 거의 불가능하단 점이다. 풍요로운 소비지향적 삶을 원하다면 서울이, 부담 없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창출하고 싶다면 지역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 나는 왜 서울로 왔는가? 나는 내가 창출하고 싶은 가치에 필요한 '기술', '인력'이 이곳에 있을 거라 판단했다. 지식을 다루는 출판산업은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향성과 끈기도 필요한 반면, 또한 시장 트렌드에 민감해야 한다는 부분도 공존한다. 더구나 현재의 출판산업이 아닌 '미래'의 출판산업을 고민한다면, 기존 출판업계와 다른 전략과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콘텐츠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과 고민을 가진 스페셜리스트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을 만나는 가는.. 물론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고민이지만^^
글. 김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