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데와소피 Apr 12. 2019

보증금은 없지만 아이패드는 사고 싶어

보증금 확보와 아이패드 구매 사이의 딜레마

서울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 미루고 미뤄왔던 현실을 자각하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확보해야 하는 몇 천만 원의 보증금을 앞에 두고 나는 어이없는 고민에 빠졌다. 보증금은 없는데 아이패드가 사고 싶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집을 구할 자본이 없는 이의 사회에 대한 성토이기도 하면서, 보증금도 없는 내가 아이패드를 사도 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이기도 하다.



보증금 확보와 아이패드 구매 사이의 딜레마


구할 수 없는 몇 천만 원의 보증금과 구매할 수 있는 몇 십만 원의 아이패드 구매의 딜레마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낙담하고 있다. 마련해야 하는 건 보증금이고 집이지만 내가 지금 구매할 수 있는 건 아이패드다. 아이패드는 사실 '최소한의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필요한 것'이다. 50만 원에 해당하는 비용은 당연히 부담이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아이패드 비용이 한 달 월세랑 비슷하다는 점에 도달하면. 나 스스로에게 '서울에 가면 당장 월급도 없을 텐데... 아이패드 없어도 살 수 있잖아?'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보증금도 없이 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은 통장에 돈이 있으면서도 아이패드 사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아이패드 프로 3세대는 쳐다도 못 봤는데. 구매할 수 있는 범위의 아이패드 라인업이 생기니 사람이 이렇게 된다. 출시일은 추후 공개된다는 데 그냥 영영 안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 이 질문의 공격 방향을 바꾸면 이렇게 된다 '당장의 자본도 없는데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해?', '지금 직장을 꼭 그만둬야 해? 월세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아이패드를 사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굳이 서울에서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자본이 없어 무얼 할 수 없는 현실. 내가 벌어 둔 자본의 대부분을 보증금과 대출금, 그리고 월세로 계속 지출하게 될 현실. 갖고 있는 자본이 적어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현재에 만족해야만 한다면 나는 서울에 갈 수도, 아이패드를 살 수도 없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돈이 없으면 이런 집에 살아도 되는 걸까?


조금 더 화가 나는 건 이걸 고민하는 이유가 '집'이라는 것 때문이다. 비교적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하고 내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 대구를 떠나려는 이유는 내가 너무나도 대도시 취향이기 때문이다. 이유 모를 평안함과 경외감, 두려움을 주는 자연보다는 관찰할 곳이, 사람이 많고 변화가 있는 곳이 좋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몇 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감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 구매할 수는 없어도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곳에서 호기심이 일어나고, 그 호기심이 충족될 때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디서 살든 버티는 행위가 필요한 게 현실이라면, 나는 서울에서 버티고 싶다. '어디에 사는가'는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다.


여기저기 찔러보며 서울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었는데, 돈 없고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있다는 은평구의 '그곳'에 기웃거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입주 신청을 하는 동시에 집을 알아본다. 직방, 다방, 네이버 부동산.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는 만큼 돌아보고 나니 서울에 원룸 하나라도 구하려면 (보증금과 월세의 비율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보증금 1,000-3,000만 원에 월세+관리비 50만 원 전후 혹은 전세 1억 5,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서울의 중심도 아닌 곳의 원룸이. 원룸이 말이다. 너무 비싸서 서울에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슬프지만. 그 원룸의 사진들도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작아도 내 취향을 담아보기 위한 원룸 인테리어가 붐이다. 그러나 집을 구해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꾸미기 위해서는 일단 짐이 많지 않아야 하며, 정말 '기본'은 돼야 한다



'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인권이란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던 60, 70년대 지은 집이라면 그래. 뭐. 그래. 그런데 그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집을. 이렇게. 지어놓고. 여기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최악의 집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고시원뿐만이 아니다. 일반 원룸도 살펴보면, 현관 앞에 싱크대를 두질 않나, 싱크대 앞에서 잠을 자야 하고. 싱크대라는 것이 식기 건조대를 올려놓으면 쓸 수 있는 공간도 없을뿐더러, 화장실에 제대로 된 환기구나 창문이 안 달려있기도 하고, 창문을 열면 앞집이 들여다보이기도 하고, 수납공간이라는 건 있지도 않으며, 습기가 많거나 환기가 어렵거나 방한-방음이 안되거나, 말할 것도 없지. 네 발자국 정도 걸으면 방 앞에서 방 끝까지 갈 수 있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1들>에서 1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최소 방 크기가 법적으로 네 평이라 했다. 네 평. 말이 네 평이지. 물건이 잔뜩 들어가는 상가도 기본 네 평은 되겠다. 제일 무서운 건 내가 이렇게 분노해도 '그 정도 집이라도 들어갈 수 있음 다행이야.'라고 나의 분노를 가뿐히 넘겨버릴 수 있는 초월한 사람들이 널리고 널리고 널렸다는 거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19세까지 부모의 집에 함께 거주하다가 독립을 꿈꾸고, 스스로 서길 원하는 많은 이들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지방의 많은 학생들은 서울의 대학에 붙어도 부모가 초반에 보증금을 대고 월세를 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지방의 국립대를 선택하게 된다. 대체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그때 월세를 어떻게 내고 살았던 걸까. 이런 현실은 20살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3n살이 된 지금도 나는 이 고민을 한다. 보증금을 어떻게 구하지? 대출이란 대출은 다 알아보았으나. 6월 말로 4대 보험이 끝나는 나는 전-월세 대출받는 것도 쉽지 않고, LH 청년 주택대출은 한 번만 검색해보시라. 비판이 쏟아진다. '보증금을 대줄 수 있는 부모'가 없으면, 계속 부모 집에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기 싫은 일도 꾹꾹 참아가며 '보증금'을 벌기 위해 기숙사가 딸린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복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보증금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으로 다른 출발선이다. 그리고 보증금이 있다 해도 저렇게 지어놓은 집에 살아야만 한다. 애초에 '집'을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지을 수는 없는 걸까. 그리고 대체 부동산 값은 언제 자리 잡히는 걸까.




진짜 가난과 소비의 합당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


게다가 만일 가난하다는 현실 하에 어딘가에서 도움을 받고 싶다면 내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 부모가 얼마나 가난한지, 그 부모의 부모는 얼마나 가난했는지, 나는 왜 이 나이까지 통장에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없었는지, 소위 말하는 딴짓을 왜 그렇게 했었는지, 혹시 돈은 없지만 갖고 있는 물건 중에 조금이라도 '사치스러운' 물건은 없는지. 그 증명을 해야만 내가 진짜 가난하다는 걸 밝혀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증명의 굴레는 아이패드를 사도 되는지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또 다른 증명을 요구한다. 보증금도 없다면서 이게 꼭 필요한 물건인지, 이걸 살 경우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게 합리적인지, 나에게 '최소한'의 필요인지. 이런 증명은 시작부터 '사지 말아야 할 물건을 왜 사려고 하니'의 자책을 깔고 있다. 내가 이 시점에서 아이패드를 산다면, 나는 상황 인식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깔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나보다 더 열악한 이들의 상황과 비교해 내가 부끄러운 선택을 한 것만 같아진다. 보증금도 없는 내가 아이패드를 산다면, 그래 놓고 지인들한테 돈을 빌려 보증금을 마련하게 된다면 나는 경우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 비단 아이패드뿐만이 아니다. 모든 소비에 이 문제가 걸려든다. 결국 확보할 수 있는 자본의 범위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의 한계로 작동한다. 자본이 있는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집'에서부터 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 숨이 막힌다.


존경하는 선배와 술을 먹으며 이 얘기를 하는데, 선배가 옆에 있는 다른 선배에게 얘들 보증금에 돈 좀 보태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울부짖었나. "얘네들은 보증금을 내줄 부모가 없다고요!!!!!" 그 선배들 또한 누군가의 부모인 분들이다. 자식이 아닌 이에게 보증금을 내어주겠다는 이 말은 위로이자 마음의 빚이자, 나의 자본이다. 나에게는 함께 울부짖어주는 '사람'이라는 자본이 있다.


자, 그럼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나는 앞으로도 매 소비마다 동일한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억누르고 지금 자리에 눌러앉게 만드는 굴레에 매이지는 않겠다. 그래서 서울에 꼭 갈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긴가민가 하지만) 아이패드도 살 거다.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이들의 호의와 사회적 자본에 의지할지언정, 내 결정이 옳았는지 매 순간 성찰하면서 살지언정, 그 마음의 빚을 사회에 갚아 나가기 위해 노력할지언정, 해방감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보증금은 없지만 아이패드는 사고 싶을 나와 같은 그대들이여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말자. 출발선이 다른 이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국가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결정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글. 오힐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