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는 김연수의 소설로, 우리에게 낯선 시대와 장소, 사건, 이상, 인물 등을 배경으로 한다. 김연수의 글은 스토리의 힘만큼 한 문장, 한 문장에 묵직함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간도와 김연수의 문체가 만났으니, 책을 마치는 순간까지 밀려오는 혼란을 추스를 새가 없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밤은 노래한다>를 다섯 번째로 읽었다. 딱히 '인생의 책이어서'라기보다는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쾌감 때문이다. 지식을 조금 더 확장하고 삶을 조금 더 살아낸 뒤에 이 책을 읽으면 책 안의 세계가 담고 있는 혼란을 좀 더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만큼 책을 읽은 뒤에 오는 일종의 우울도 조금 더 깊어진다. 이 책은 내게 반드시 감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무언가를 건넨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경술년(1910년)에 태어난 '김해연'. 그는 통영 출생이나 어떤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직업을 구하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으로 갔다. 그는 대련에서 용정으로 이동하며, 일본 회사인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측량기사로 일한다.
다른 조선인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때, 김해연은 친분을 갖게 된 일본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나간다. 대련에서 만난 만철 조사부의 전향한 공산주의자인 니시무라 히데아치와 용정에서 만난 측량반과 함께 움직였던 경호중대 중대장인 나카지마 다스키 중위는 김해연에게 '사람은 죽여봤는지' 묻고, '사랑을 해보라' 권한다. 김해연은 별생각 없이 그러마. 대답했고 그 뒤의 이야기는 이 두 가지를 실행해가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나카지마는 김해연을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생각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라고 평가한다. 이 평가는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김해연을 이해하는 데 큰 힌트가 된다.
김해연은 용정에서 '이정희'와 사랑에 빠진다. 이정희는 경상도 안동 지방의 유생 집안 출신이나 한국이 병합된 뒤 집안 전체가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정희의 할아버지는 북간도 일대에 이름을 떨친 독립지사였고, 아버지도 조선인 단체에서 요직을 맡은 용정의 신흥 유지였다. 이정희는 경성에서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뒤 용정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열어 유명한 음악 선생이었고, 우연히 찾아간 문예의 밤 행사장에서 김해연과 만난다. 처음에는 말벗이나 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예배가 끝나면 명신여학교 느티나무 아래나 영국더기라 불리는 언덕배기에 앉아서 하염없이 얘기하곤 했다. 그는 2주 간 대련 본사에 다녀온 뒤, 정희에게 청혼을 했고 정희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희는 미처 끝맺지 못한 편지 한 장만 전한 채, 자살한다. 정확히 자살인지 아닌지, 왜 죽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다만 '박타이'라는 정희의 애인이라는 자가 개입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물론 김해연은 박타이가 아니었다. 김해연은 죽고자 했으나 죽지도 못했고, 이후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경성 사진관에서 일하며 연락원을 맡고 있는 '여옥'이라는 여인과 다시 사랑에 빠졌다. 둘은 함께 경성으로 떠나려 했으나, 여옥이 언니의 결혼식에서 일제 토벌군에 의해 자신과 여옥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게 된다. 이후 그는 그들을 구하러 온 '박도만'이 이끄는 별동대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이 결집한 유격대에 들어간다. 한반도도 아닌 만주에서 일제의 토벌대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유격대는 어랑촌에 갇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
1930년대 만주와 간도 지역에서 공산주의 이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해서 활동한 경우가 많았다. 국제공산당이 외국인이라도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공산당에 가입해야 한다는 '일국일당'원칙을 집행하면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도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선혁명'과 '중국혁명'을 함께 진행하리라 생각했지만,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이후 '조선혁명'보다는 '중국혁명'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설명하는 공산주의는 어쩌면 그들을 결집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수 있으나, 그 자체가 그들의 목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1932년 2월, 친일 조선인들이 간도 자치를 표방하며 결성했던 '민생단'이라는 조직은 유격대 내부에 분열을 일으킨다. 정작 민생단은 금방 해산했음에도 중국공산당은 일제가 이들을 스파이로 잠입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조선인 스파이'에 대한 두려움은 유격대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유격대의 정보가 새어나가거나 토벌대에 쫓길 때면 이 모든 것을 민생단의 탓으로 돌렸다. 때로는 민족주의자도 민생단으로, 중국공산당의 힘에 의존하는 자들도 민생단으로. 민생단이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유격대는 의심과 불신으로 무너져갔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김해연은 어랑촌에서 박타이인 박길룡을 만나게 된다. 박길룡은 유격대원들을 민생단으로 몰아가고 사살한다. 이 과정에서 김해연은 함께 성장한 박도만, 이정희, 최도식, 안세훈의 이야기를 듣고 이정희가 경성에서 만난 박길룡에 대해 알아간다. 서로를 죽임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하려던 이들은 결국 자멸하고 만다. '중국혁명'을 우선해야 했던 공산주의자인 박도만도, '조선혁명'이 우선되어야 했던 민족주의적인 공산주의자인 박길룡도. 각 파벌이 가진 이념을 좇았던 공산주의자들도. 그 모든 이들이 닿고 싶었던 미래는 조선 독립. 더 정확히는 조선 독립으로 인한 그들의 자유, 그들의 열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열망과 혁명을 이뤄내 나 자신이 진정한 '나'라는 존재로 설 수 있는 삶을 위해 지금의 '나'는 무너져갔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열망은 그 열망이 이뤄지는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리라. 열망으로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열망은 결코 원인이 아니다. 열망은 그 자체로 결과이리라. 열망은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뿐이다.
다시 김해연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소설의 초반에 그에게 '손에 피를 묻혀봤는지' '사랑을 해봤는지' 물었던 이들의 질문에 이제 김해연은 모두 '해봤다'라고 답변할 수 있게 됐다. 김해연은 여옥이와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정희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을 풀어나간다. 김해연이 사랑했던 이정희는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쓴다. 아니 쓰려고 했다.
십자가를 향해 구불구불 이어지던 영국더기 언덕길. 사진 속에 찍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더없이 아끼던 보물들이었고, 내게 필요한 건 오직 그게 보물이라는 걸 알아보는 단 한 사람뿐이었어요. 내가 원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함께 그 보물들을 봐줄 사람이었죠. 한때는 이 세상 전부를 원했지만, 이젠, 겨우 그 정도. 이제 내가 아는 세계의, 그러니까 거의 전부.
2017년 김해연과 이정희가 만났다던 영국더기를 방문했었다. 허리까지 닿는 긴 풀들 사이로 구비 구비한 길이 나있고, 마치 영국처럼 낮은 구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선교사들은 그래서 여기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세상에 복잡한 것들이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정희 또한 혁명을 좇았다. 나는 이정희의 편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명확히 알 수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전부를 함께 알아봐 줄 이가 있다면, 그런 사랑이 있다면. 혁명을 통해 나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존재를 먼저 확인한 후에야,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은 그제서야 진정한, 순수한 '이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혁명은, 열망은 도달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확인한 이후에야 완전해지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혁명으로 이루고자 한 그곳에 진짜로 도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써의 혁명이 아닌,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제쳐 둔. 목표가 뚜렷한 혁명 말이다.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동네, 2016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