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디거 프랑크 『북한 여행』, 기들릴 『평양』
내 삶은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이유를 찾고 이를 해결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불편함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밝혀내야만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우울함, 안타까움, 아쉬움, 분노와 같은 단어들이 비교적 이유가 명확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 감정이라면, 이 외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은 모두 '불편함'이 된다. 책을 읽을 때 이런 감정은 극대화된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거나, 어떤 문단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으면, 이 책이 이유 없이 불편하다는 의미이다.
뤼디거 프랑크(Ruediger Frank)가 쓴 <북한 여행: 유럽 최고 북한통의 30년 탐사리포트>가 그랬다. 이 책은 2019년 3월에 나온 책으로 내용도 흥미롭고 구성도 촘촘하다. 목차는 '입국', '숙소', '음식', '이동', '쇼핑'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북한을 여행하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한에 가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실제적인 고민에 대해 시원하게 답을 내려주기도 한다. 구체적인 여행 가이드북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가이드를 제공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갈 수 없는 북한의 구석구석을 잘 소개하고 있고, 외국 사람의 시각이다 보니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 해당되는 이야기도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뤼디거 프랑크는 동독 출신의 유망한 경제학자이며, 1991년에는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한 경험도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30년 가까이 매 해 북한을 방문하고 연구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따라서 북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한 이해도 갖추고 있다. 한 가지 시각에만 크게 치우쳐 있지도 않으니 크게 불편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을 하다가, 오래전에 읽은 기 들릴(Guy Delisle)의 책 『PYONGYANG: A JOURNEY IN NORTH KOREA(이하 평양)』이 떠올랐다. 기 들릴은 캐나다 퀘벡 출신인 그래픽 노블 작가다. 그의 다른 책인 <굿모닝 예루살렘>을 먼저 읽은 후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 이 외에도 버마, 중국 등 여러 이유로 거주해본 여러 국가에서의 경험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만일 내가 그와 동일한 문화권에서 살았다면 이 유머들이 더 와 닿았을 텐데 조금은 아쉬울 정도였다. 문학세계사에서 2004년에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했지만, 절판되어 영어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좌) GUY DELISLE, <PYONGYANG: A JOURNEY IN NORTH KOREA>, Drawn & Quarterly Pubns, 2004
(우) 2018년 10월에 표지를 바꾸어 개정판이 나왔다. 북한 특수를 노린 것인가!!
『평양』은 2001년에 기 들릴이 북한이 수행 중인 프랑스 회사의 애니메이션 아웃소싱 작업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근무를 했던 시기를 그리고 있다. 거주한 기간도 짧았으며, 머무른 지역도 제한적이었고, 북한에 대해 깊이 알고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눈에 비친 북한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객관적이거나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북한이 한창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2001년이지 않은가. 18년 전의 북한과 지금은 여전한 것도 있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여러모로 봐도 『북한 여행』이 좀 더 내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읽을 때 불편함도 덜 느끼고 흥미로웠다. 그래픽노블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수 있지만 완벽한 이유는 아니었다. 자, 이제 왜 그랬는지 밝힐 시간이다. 여러 근거가 후보에 올랐으나 모든 후보를 제치고 하나의 근거가 선정되었다. 이는 '북한에 여행을 가는 이들의 특수한 목적'의 문제였다.
먼저, 기 들릴은 2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북한에 일시적으로 '거주'했다. 그의 태도는 '여행자'라기보다는 '일시적 거주민'에 가까웠고, 억지로 적응하려 하거나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의 범위에서 겪은 일을 그대로 그렸다. 그가 한 가장 무모한 시도는 시간이 너무 급해서 통역사 없이 가본 적 있는 상점에 혼자 다녀온 정도였다.(그것이 통역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림 안의 그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북한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여기서도 누릴 수 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을 여기서도 먹을 수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을 얼마큼 표현할 수 있는지-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 일상을 지내면서 깨닫게 되는 북한의 현실을 표현해내고, 자신의 일상과 너무나도 다른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추측과 우려를 표현했다. 북한에 거주해 본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반면 『북한 여행』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으로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북한으로 여행 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행자에게는 대개 그 여행을 하는 훌륭한 이유들이 있게 마련이다. 1주일 동안 1,500유로 이상이 필요하고, 추가로 들어가고 나오는 데 여러 날이나 걸리는 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보상을 기대한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독재국가이면서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북한에서 대체 그 보상이란 무엇인가?
(중략)
이 여행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사회가 어떻게 그리 오래 존속할 수 있는지,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중략)
지나가는 말투로 "그렇군, 난 지난달에 북한에 갔었는데"라는 말로 즉석에서 대번에 좌중의 주목을 끄는 것은 몹시 기분 좋은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음증도 한몫 거든다. 많은 방문객은 가볍게 말해 괴짜 쇼가 보고 싶은 것이다.
- 뤼디거 프랑크, 『북한 여행』 1-2쪽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 예상치 못한 '발견'과 기대감에 가득 찬 '확인'을 목적으로 한다면, 북한으로의 여행은 부정적인 의미의 '확인'에 가깝다.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의 '확인'은 자칫 잘못하면 '구경'이 된다. 북한 주민들은 그런 상황에 놓여있고, 북한은 그런 점을 이용해 외화를 벌어들인다. 그렇다. 나는 이 지점이 불편했던 것이다. 물론 뤼디거 프랑크는 그런 시각은 지양해야 할 점인 것에서도 몇 번씩 지적한다. 나는 그저 이런 시각으로 북한에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확인을 시켜주는 내용들이 조금은 슬프고 불편했던 것 같다.
최근 굉장히 히트 친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 책이 있다. PHAIDON에서 나온 『Made in North Korea: Graphics from Everyday Life in the DPRK』이다. 이 컬렉션이야말로 북한에 대한 '발견'에 가깝다. 북한에 이런 디자인이 있었어?라고 느끼게 된다. 정해진 여행 루트 안에서 구할 수 있는 각종 물건들 속에서 그들의 디자인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촌스러웠다고 평가되는 디자인일 수 있지만 스타일은 돌고 도니까.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이 파스텔톤, 핑크톤이 돈다는 건 놀랄만한 일이었다.
씁쓸한 건, 이 정도의 발견이라 하더라도. 오 북한'에도' 이런 면이 있었어? 이 정도일 뿐. 북한의 '부정적인 면'을 '확인' 하려 드는 우리의 본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 보지 못한 국가와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새로움과 익숙함 혹은 낯섬을 찾아보는 자세는, 우리의 일상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태도이다. '발견'이라고 해서 긍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짝반짝함'이든 '어두움'이든 그 발견은 타인에 대한 사유와 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의 초입이다. 많은 이들이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여행이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북한 여행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확인'에 대한 본능이 쉽사리 깨질 수 있을지. 조금은 막막하다. 북한뿐이 아니다. 한 번 돌아보자. 나는 살아보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무엇을 '발견'하기로 혹은 무엇을 '확인'하기로 작정하는지. 그 간극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여행: 유럽 최고 북한통의 30년 탐사리포트』, 뤼디거 프랑크, 한겨레출판 (2019)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