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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May 06. 2019

독립과 이주를 경험할 사람들에게 - 2편

서울내기의 지방살이


이번 글은 독립과 이주를 경험할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3부작입니다. 혹시 지난 편지를 읽지 못한 분이시라면 읽고 오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1편 보러 가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구에 살면서 발견한 것들을 적어보려해요. 대구라는 도시를 익혀가는 동안 설레기도 했지만, 다들 아는 걸 나만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외롭기도 했던 것 같아요. 같은 국가 내 이동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이주란 같은 국가 내의 이동보다는 자신의 커뮤니티를 완전히 벗어나는 초국경적인 현상을 이르는 개념에 가깝구요. 그런 의미에서 지방으로 이주한다는 건 국가적 혹은 민족적 커뮤니티를 벗어나는 만큼의 외로움이나 두려움은 없겠죠. 특히나 요즘처럼 통신의 발달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동시간대를 보낼 수 있는 시대에는 말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다른 도시로의 이동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곳에서는 사람들과 만나고, 거리를 다닌다 해도 내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죠. 여기는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곳이고, 내 흔적을 한 군데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이 공간에서 사회적인 관계망이 생기고, 도시의 여러 면을 발견하고 나서야 저는 정말 이 곳에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주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일 수 있겠네요. 3년이 지난 지금 대구는 저와 굉장히 상관있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구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살다 보면 본인에게는 익숙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첫 번째 경험이라는 걸 쉽게 잊는 것 같아요. 대구에 오래 거주했던 분들의 소통방식은 제게는 조금 낯설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대구 분들은 본인들이 굉장히 직설적이라고 생각하고 '대구 사람들 말 너무 세게 하지?'라고 많이들 물어오셨어요. 사투리나 어투, 특히 'ㅋ'소리나 된소리를 많이 쓰다 보니 말이 세게 들리긴 합니다. 뿐만 아니고 느낀 그대로 감정도 표현하는 편이었죠. 사실 저는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도 만만치 않게 직설적인 편이거든요. 그래, 같이 직설적이면 좋지!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했으나. 실수였습니다. 제 직설적인 표현은 대구 분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몇 달이 지나서야 직설적인 표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직설적으로 말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살던 환경에서는 '세게' 혹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비판하고 제안하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나 대구 분들의 직설적인 표현은 무언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직설적인 표현은 마치 이 조직에 제가 섞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 있었고, 대구 분들의 직설적인 표현은 타지인인 저에게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것처럼 들렸어요. 물론, 제가 조금은 달라져야 했죠. 직설적인 표현을 쓰되 조직을 보호하면서 살리기 위한 '언어'들을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비단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조직과 환경에 가면 배워야 하는 소통방식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는 어느 조직을 만나든 위의 소통방식을 조금은 유념하고 있어야 했어요.



"디다"가 뭐예요?


다른 지방으로 갔을 때 사투리를 배우는 건 늘 재밌으면서도 지난한 과정입니다. 처음 출근한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표현은 "아~ 디다."였습니다. 의자에 앉으면서 "디다", 걸으면서도 "디다", 밥 먹으러 가면서도 "디다", 회의를 하면서도 "디다 디!!"라고 외치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역시나 '디다'는 '힘들다'를 뜻했죠. '고되다'가 '되다', '디다', 이렇게 변한 건가-라고 유추하면서. 재밌네 라고 생각했으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생각보다 다른 표현과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시더라고요. 업무를 할 때는 서류가 오고 가니 사투리가 큰 문제가 안됐지만, 오히려 일상에 대화에서는 물어볼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사투리를 설명해주시는 분들은 늘 재밌어하시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보고 웃었네요. 전부 대구 와서 배운 말이거든요 ㅎㅎ 아! 단술은 원래 알고 있었으니 빼구요. 자, 답은 몇 번일까요?

비단 사투리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대구 아저씨들은 입술을 잘 안 벌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발음이 부정확한 데다가, 목소리도 작게 들리죠. 대부분의 분들은 막 소리를 질러대는 경상도 아저씨를 상상하시겠지만 생각보다 대구 아저씨들은 그런 편은 아니에요. 소리를 지르더라도 입술을 잘 안 벌리고, 발음이 부정확하다 보니 재차 물어봐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역시 어딜 가든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방법인가 봅니다. 3년째 되니 이제 요령이 생겨서 조금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래도 왜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얘기하시는지는 아직까지도 궁금합니다. 상대가 말을 잘 못 알아들을 텐데 말이죠.




대구는 보수적인가요?


이 질문은 대구 사람, 대구 사람이 아닌 사람 모두에게 받아본 질문이었어요. 대구 분들은 "어때? 와보니 대구가 확실히 보수적이라고 느껴져?"라고 물었고, 대구 사람이 아닌 분들은 "어때? 가보니 대구가 확실히 보수적이라고 느껴져?"라고 물었죠. 사실 눈으로 보게 되는 정치적 보수화 경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죠. 실제로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분들, 동대구역 앞에서 박근혜 석방 추진 서명 운동을 진행하시는 분들 등. 서울보다 많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통 연령대가 꽤나 높으신 편이기에 그 점에서는 서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청년, 중년층은 어떨까요? 


막상 지방선거 때 그런 고민이 들더라구요. 지역민의 눈으로 봤을 때 보수 정당에서 출마한 후보가 진보 정당에서 출마한 사람보다 훨씬 해당 직위에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결국은 국회의 의석 수를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민 입장에서는 우리 지역의 이익과 살림에 관련된 문제죠. 시장이나 교육감 등 지방선거의 경우는 더욱 직결된 사안입니다. 이주자인 저조차도 '정당'만 보고 뽑을 수는 없었습니다. 구의원 선거의 경우 진보 정당 후보가 없기도 했죠. 정치니까, 결국 선거비용과 관련된 문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보수 정당에 대한 표심이 많으니 적합한 후보가 그 정당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대구에서도 거리의 보수 성향 시위를 보고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표를 던질만한 적합한 후보를 찾다 보면 보수 정당에 눈을 돌리게 되더라구요. 장기적으로 볼 때 대구의 보수화는 과연 누구의 탓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해당 도시민들이 도시를 만들어가지만, 그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굳어진 시선은 반드시 이 도시가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2017년 대선 때에도 대구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현 문재인 대통령을 꺾었지만, 50%에 달하는 득표율은 얻지 못했습니다. 제가 덧붙이는 해석에 깊이는 없겠지만, 적어도 대구의 청년, 중년들은 정당을 넘어서, 한반도라는 거시적인 문제를 넘어서. 자신의 삶과 직결된 이 지역에 필요한 적합한 정치인을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구는 보수적이라는 건가요?


그런 정치인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살아내고 살아갈 젊은이들이 원대한 꿈을 품고 성장할 수 있는 도시가 대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대구의 '정치적 보수화'에 대해 말하는 건 주저함이 있지만, '일상의 보수화'를 인정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네요. 사실 대구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자원이 제한되어있는 지방의 특징일 수도 있고요. 대구(시청)의 기조는 '변화'보다는 '답습'에, '창의, 창조'보다는 '모방'에 가깝습니다. '무모한 도전'을 추구하기보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는 일에 움직이는 편입니다. 소통방식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대구 분들은 지키는 것에 가치를 느끼며 큰 변화를 주저합니다. 진보적인 영역을 택하고 활동하시는 분들의 경우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활동 영역은 대담하게 선택하지만 운영하고 진행하는 방식은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참고로 대구광역시가 말하는 대구는 이런 곳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그렇지만 이는 비단 대구만의 지역 특성은 아닙니다. 지방은 기존의 젊은 거주자들을 붙잡지 못하며, 새로 유입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새로 유입됐다 하더라도 저처럼 다시 이주할 생각을 갖곤 하죠. 지역 내 청년들이 새로운 걸 시도한다 해도 도시는 큰 반응이 없습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모든 것이 경쟁적인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새로움'이란 환영받는 일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우려'가 가득한 일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다는 건, 없어질 산업이 있다는 뜻과도 같으니까요.



대구의 다른 면은 다음 편지에서 전할게요.


글을 쓰다 보니 서울이 아닌 지방은 점점 비슷해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분은 편지를 보시고 '역시 서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도시가 어떻다는 걸 그저 보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이런 아쉬움을 풀어내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정착하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틈이 조금만 만들어진다면 분명 다른 실험이 가능한 도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다음 편지는 3년간 정착한 대구를 왜 다시 떠나려 하는지 적어보려 합니다.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오힐데 드림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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