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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n 12. 2019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법률가들』 2

검찰개혁 왜 필요한가.


<법률가들>의 서평을 찾아보면 대부분 1편의 주제였던 '누가 판검사가 되었는가?'에 집중한다. 일제시대에 판검사 자격을 지니지 못했던 이들이 시대의 조류에 의해 기회를 갖게 되었음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검사의 '자격'에만 집중한다면, 친일 경력을 지닌 일제시대의 판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싶다. 당시에 누가 그 기준을 세울 수 있었으며, 무엇이 자격의 기준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해방 정국에 판검사 자격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자격 없는 이들을 무리하게 임용했다는 사실보다도. 김두식 교수의 말처럼 누구에게는 그 문이 열렸고, 누구에게는 그 문이 닫혔다는 점을 좀 더 살펴보고 싶다. 이 사실은 이후 법조계 내 '불멸의 신성가족'이 만들어지는 데도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해방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벼락처럼 찾아왔다.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에게는 대규모 판검사 임용이라는 엄청난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좌익이나 중도성향의 변호사들에게 그 문은 유난히 빨리 닫혔다. 문이 열렸다는 기억을 간직하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p. 176)



친일 경력을 반성했으나, 아- 반성의 방향을 잘못 정했다.


몇몇 법조계 인사들은 해방과 동시에 과거의 친일 경력을 반성하며,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힘을 쏟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에게 노동자의 해방을 주장하고 모두의 평등을 꿈꾸는 공산주의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느낌이 올 테지만, 이 몇몇의 인물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들뿐 아니라, 일제시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던 이들은 금방 기회를 잃었다. 


당시 미군정은 '김계조 사건'이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을 통해 조선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에 이 사건들을 검색해보면, 명백하게 조선공산당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기에 판결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는 검사 측의 공소 제기 문건이나 판결의 모순점들을 지적하며,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하기 위해 개입하여 조작한 사건임을 드러낸다. 판검사들 중 한반도 이남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기로 결심한 법조인들은 적극적으로 본 사건을 담당하였고, 반대 편에 선 법조인들은 이를 변호하거나 사건에 피고인으로 얽혀 들어갔다. 


1953년 경향신문사(이전 조선정판사 위치);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706100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자, 정치세력과 법조계 내 공산주의 세력과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이들은 그 위치를 보전하기 어려워진다. 1947년 말부터 시작된 2차에 걸친 법조프락치 사건 등을 통해 많은 판검사 및 변호사들이 법정에 앉는다. 공안검사라 불리는 오제도 검사를 필두로 일종의 남로당(남조선로동당)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목적 하에 법조인들을 공소한 것이다. 그러나 판사들은 정부 수립 이전의 활동에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들어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검사들은 바로 항소했으나 2심을 진행하던 중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한국전쟁이 힘을 불어넣어 준 우익 법조계 인사들의 반공 프레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사흘 만에 북한은 서울을 점령한다. 인공 치하에 들어서자, 북한군에 잡히는 즉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우익 법조계 인사들은 모두 숨고, 중도 혹은 좌익 성향이 있던 이들은 생존을 위해 북한에 협력하기 시작한다. 보도연맹을 통해 전향 아닌 전향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도,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던 이들에게도, 형무소에 갇혀 있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엊그제까지만 해도 법정에 서야만 했던 법조계 인사들에게도 북한의 서울 점령은 또 다른 해방이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어도 여러 이유로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에게는 생존할 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미군이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북한 측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이남에서는 인공 치하 시기 북한에 협조했던 이들을 색출하고,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월북을 감행했고, 북한이 후퇴하면서 필요한 법조인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법조계 내 좌익 법조인들 중 프락치가 있다는 보수 법조계 인사들의 증거를 뒷받침해주었다. 이들은 일부 판검사들의 월북 현상을 강조하면서 반공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한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위키백과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반공 프레임이 얼마나 무섭게 작용했는지 알고 있다. 그저 생각으로 공산주의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넘어서 실제로 국가의 위협과 폭력이 내 신체에, 가족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였다. 정치권에서 '교육적' 방법으로 반공 이념을 강조해왔다면, 위협과 폭력을 가하며 이를 뒷받침해준 건 법조계였다. 무자비한 폭력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 사회 내에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실례로 작년, 몇 명의 대학생들과 북한에 대해 공부하면서 공산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화면에 Karl Heinrich Marx라는 이름을 띄웠다. 영어로 보니 갸우뚱하길래, "마르크스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하니 학생들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면서 "쌤! 문 닫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너무 당황한 내가 "2018년인데..." 하자 학생들은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그 후에도 계속 떠올랐다. 공산주의를 공부하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얻어맞으며 끌려가고, '검사'의 기소를 받아 재판에 회부되어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는. 운이 좋으면 실력 있는 변호사가 붙고 운이 나쁘면 국가의 심판에 따라야만 하는 그런 상황을, 자세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떠올리며 하는 말이었을 거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1992년-1998년 사이에 출생한 친구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린 대체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자란 것일까. 



법조계는 왜,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쉽게 얘기할 수 있다. 청와대든 국회든 사법부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최근 공무원들의 방만한 태도를 비판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라고 말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판검사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프레임은, 판검사가 권력과 돈을 주는 이를 위해 일해야 한다라는 잘못된 논리를 뒷받침한다. 선출되지 않은 '불멸의 신성가족'의 권력과 재력은 국민이 유지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사회 내 기업, 정치 세력과 얽히고설켜 살아남았다. 


특히 자본주의적 원리로 얘기한다면. 변호사는 이에 해당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인권변호사'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변호사는 본래 인권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지 않은가. 왜 별도로 인권변호사라고 부르는 걸까. 심지어 인권변호사를 생각하면 가난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변호사법]을 찾아보니.


    제1장 변호사의 사명과 직무    

        제1조(변호사의 사명)

            ①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②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다. 모든 변호사들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건 돈의 문제와 상관없다. 변호사든 판검사든 법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권한은 법에 근거를 둔다. 이전에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에서 독립하지 못해 문제가 됐다면, 이제는 그들이 견고하게 쌓아온 권력, 검찰 혹은 법원 내부에서 권력이 분산되지 못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법을 기준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법에 의해 제재받기 위해서는, 김두식 교수의 말처럼 법관 개인의 독립이 필요할 것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지만 한 인간의 행위의 옳고 그름을 좌우할 수 있는 신성한 권력이 주어진만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사실 그들은 진짜 '신'은 아니니까. 



존경할만한 판사, 검사,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두식 교수는 묻는다. "당시에 존경할만한 판사, 검사,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훌륭하다 믿는 법조인들도 사실은 그 시대를 그저 살아오고,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들이 있기에. 그 시대의 풍경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은 선한 법조인과 악한 법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 시대가 그랬다고, 어떤 이는 그때 그런 선택을 했고, 옳은 선택을 했던 이들도 시대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했고, 그랬다고. 그들의 선택과 시대가 켜켜이 쌓여 지금이 되었다고.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들은 이런 일들이라고. 그렇게 무덤덤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한다. 


긴 시대에 걸친 방대한 자료의 활용, 성실함의 끝을 보이는 조사와 분석은 김두식 교수에 대한 신뢰를 더 해줬다. 이전에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친절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마치 온몸의 가시를 잔뜩 세운 날카롭고 예리한 고슴도치를 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가들> 역시 친절한 책이다. 그저 웬만큼 난해한 소설을 가볍게 뛰어넘는 등장인물의 수와,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와 사건의 난해함을 맞닥뜨리기 위한 각오, 정치와 법 그리고 근현대사에 대한 배경지식, 다양한 이념의 각축장이자 전쟁터였던 한반도에 대한 이해 정도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참고로 나는 그런 것들을 갖추지 못해 이해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하.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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